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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딕건축

브리스틀 웰스 엘리

Bristol Cathedral

장식 양식을 이끈 것은 요크가 아닌 엑서터 성당(Exeter Cathedral, 영국, 1280년경-1342년)이었다. 14세기로 접어들면서 엑서터의 경향을 이어받은 곡선 양식이 영국 고딕건축의 주류를 이루었는데 주로 남서 지방에 몰려 지었다. 시작은 브리스틀 성당(Bristol Cathedral, 1298년~1332년경)이었는데 영국에서는 드문 홀 교회였다. 장식 양식과 관련해서 네 가지가 중요했다.

첫째, 네이브 아치와 기둥을 하나로 합쳤다(도 5-93). 홀 교회여서 네이브 월은 큰 뾰족아치 하나만으로 이루어졌다. 아키볼트의 윤곽은 비교적 단순했지만 실 같은 가는 다발을 2차 요소로 새겼다. 기둥에 주두가 없었기 때문에 아키볼트가 그대로 내려와 기둥과 한 몸으로 이어졌다. 아키볼트와 기둥을 구별하는 구조적 논리보다는 굵고 부드러운 곡선의 장식적 논리가 우선했다.

도 5-93 브리스틀 성당

영국, 1298-1332년경.

ⓒ 임석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둘째는 리브에서 리어른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리어른은 볼트의 종마루선 근처에 만들었다. 다섯 개의 리브 가운데 두 번째 것과 네 번째 것에서 각각 두 개씩의 리어른이 갈라져 나왔다. 네 개의 리어른은 주 리브와 만나 종마루선 주위로 다이아몬드 장식을 형성했다.

셋째 장식의 핵심 어휘가 리브에서 보조 부재로 넘어갔다. 다이아몬드의 네 변 안쪽에 오지 아치의 끝을 잘라 만든 뾰쪽한 선형 어휘를 추가했다. 창을 분할하던 트레이서리가 천장 장식으로 옮겨온 것이다. 리어른과 주 리브가 만나는 지점에는 꽃 장식을 더해서 결절점을 형성했다(도 5-94).

도 5-94 브리스틀 성당

영국, 1298-1332년경.

ⓒ 임석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이런 변화는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이전까지 리브가 장식의 중심일 때에는 리브의 개수를 촘촘하게 늘리는 방식으로 장식 어휘를 만들었다. 장식은 급박했고 역동적이었다. 리브가 구조적 논리에서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직 대륙의 구조 유기성에 머문 것이었다. 브리스틀은 여기에서 벗어나 최초로 순수 장식 부재가 등장하면서 장식 경향을 이끌게 되었다.

이것은 프랑스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국의 지역 전통이 주역으로 등장했음을 뜻했다. 리브 개수가 줄어들고 순수 장식 부재를 더하면서 실내 분위기에 긴장감이 사라지고 여유가 생겼는데 이 또한 영국다운 특징이었다. 이런 점에서 브리스틀은 영국 고딕건축의 전개 과정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이루었다.

넷째, 아일에 실내 버트레스를 사용했다. 아일 천장 높이의 절반에서 3분의 2 정도 되는 지점에 걸쳐 횡 방향 아치를 더했는데 이 부재는 일차적으로 구조를 보강하는 목적이었다. 홀 교회라는 생소한 구성에 의해 아일 천장이 높아지자 구조 보강을 위해 실내 버트레스 개념을 더한 것이다.

실내 버트레스는 동시대 프랑스 건물이었던 생트샤펠의 아래층 예배당에 사용된 적이 있었다. 브리스틀에서는 이 부재가 단순한 구조적 역할을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아치의 양쪽 스판드렐(spandrel) 부분에 손가락 형태의 진공부를 뚫으면서 그 윤곽을 굵고 부드러운 곡선으로 감쌌다(도 5-95).

도 5-95 브리스틀 성당

영국. 1298-1332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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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틀의 뒤를 이은 것은 14세기 초반의 웰스였다. 웰스는 초기 영국 양식에서 주요 골격을 갖춘 뒤 장식 양식 때 챕터 하우스(1290년대 후반~1307년경), 성모마리아 예배당(Lady Chapel, 1323~26), 성가대석 동쪽 부분(1333~)의 세 곳을 증축하였다.

챕터 하우스는 팔각형 윤곽으로 이루어졌는데 초기 영국 양식이던 웨스트민스터나 솔즈베리의 챕터 하우스와 비교했을 때 리브의 가닥수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다. 리어른을 사용하지 않은 대신 리브의 개수를 극단적으로 늘려 엑서터 이후 장식 양식의 전개 과정에서 브리스틀 이외의 또 하나의 경향이 생겨난 것을 뜻한다. 반면 창 분할에서는 선형 어휘의 개수가 줄어든 대신 굵고 부드러운 곡선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점에서 브리스틀의 경향을 좇은 것으로 볼 수 있다(도 5-96).

도 5-96 웰스 성당

영국, 챕터 하우스 1290년대 후반-1307년경/성모마리아 예배당 1323-26년/성가대석 동쪽 부분 13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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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모마리아 예배당과 성가대석의 동쪽 부분에는 오지 아치에서 한 단계 더 발전한 장식 어휘를 사용했다. 트레이서리가 그물 형식으로 아치를 분할했는데 그 윤곽을 곡선으로 처리하면서 불꽃이 너울거리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앞에 본 엑서터의 창 분할을 격자로 정리한 뒤 곡선을 더해 부드러운 규칙성을 만든 것이다(도 5-81, 5-82, 5-97). 레요낭양식의 '물 흐르는 듯한, 혹은 머리카락이 늘어진 것과 같은(flowing)' 장식 어휘와 비슷한 것으로 '흔들거리는(nodding)' 오지 아치라고 불렀다.

    • 1도 5-97 웰스 성당

      영국, 챕터 하우스 1290년대 후반-1307년경/성모마리아 예배당 1323-26년/성가대석 동쪽 부분 1333년-.

    • 2도 5-81 엑서터 성당

      영국, 1280년경-1342년.

    • 3도 5-82 리치필드 성당(Lichefield Cathedral)

      영국, 1265년경-1300년경.

성가대석 동쪽 부분의 천장에서는 주 리브가 사라지고 리어른만으로 장식 어휘를 만들었다. 주 리브는 마주 보는 두 기둥을 연결하는 횡 방향 아치 한 종류만 남았고 나머지는 리어른 몫이었다. 리어른은 큰 육각형과 마름모꼴과 별 모양 장식 등을 그렸다. 천장은 성근 그물을 덮은 것 같았고 리브는 자수를 놓는 실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도 5-98). 브리스틀에서 리브의 구조 유기성이 완전히 사라졌다면 이곳에서는 리브의 건축적 성격이 완전히 사라졌다. 천장을 결정한 것은 건축이 아니라 장식이었다.

도 5-98 웰스 성당

영국, 챕터 하우스 1290년대 후반-1307년경/성모마리아 예배당 1323-26년/성가대석 동쪽 부분 133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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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식 양식의 마지막을 장식한 대표작은 엘리 성당이었다. 화재와 붕괴 등의 재난을 겪으면서 증개축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성모마리아 예배당(1321~45년경), 크로싱 타워(1322~40), 성가대석 옆 베이(1336~37) 등을 장식 양식으로 지었다. 성모마리아 예배당에서는 벽체에 장식이 집중되었다. 오지형의 블라인드 아치가 두세 겹씩 겹치면서 바탕을 이루었고 그 위에 조각, 돋을새김, 성화, 금세공 등의 장식 처리를 더했다(도 5-99).

도 5-99 엘리 성당

영국, 성모마리아 예배당 1321-45년경/크로싱 타워 1322-40년/성가대석 옆 베이 1336-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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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와 금세공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장식물은 건물의 명칭에 맞게 성모마리아의 생애와 기독교적 의미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그렸다. 바탕 면이 몇 겹으로 겹치면서 그 위에 새긴 조각상과 회화 속 주인공들도 숨어 있다가 갑자기 나타나고 감춰졌다 드러나는 등 변화가 심했다.

엘리를 대표하는 것은 크로싱 타워였다. 실내 면은 지름이 각각 45미터와 22미터인 크고 작은 두 개의 동심 팔각형 윤곽으로 이루어졌다. 큰 팔각형은 꼭짓점마다 기둥을 세웠고 여기에서 작은 팔각형을 받치는 볼트와 리브가 갈라져 나왔다. 리브는 기둥 하나당 열한 개였다.

작은 팔각형은 크로싱 옥타곤이라고 하는데 안쪽 면을 네 열로 분할한 뒤 블라인드 아치와 창으로 장식했다. 블라인드 아치 위에는 성화를 그렸다. 뚜껑의 안쪽 볼트는 별 모양으로 장식했다. 꼭짓점 하나에서 일곱 개의 볼트가 갈라져 나와 교차하면서 별 윤곽을 형성했다(도 5-100).

도 5-100 엘리 성당

영국, 성모마리아 예배당 1321-45년경/크로싱 타워 1322-40년/성가대석 옆 베이 1336-3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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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집필자 소개

서울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프랑스 계몽주의 건축에 관한 연구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건축을 소재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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