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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건축

로마제국의 성립 아우구스투스의 건축

로마제국은 흔히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황제와 동일시되면서 부정적 이미지로 많이 그리지만 여기에는 주의를 요한다. 이런 판단이 어느 정도 사실일 수 있으나 반대로 로마 문명의 찬란한 업적은 대부분 제정기 때 이루어졌다. 로마 황제는 의외로 견제도 많이 받아서 지금 알고 있는 서양식 정치제도의 권력 분점과 견제 장치가 로마 시대에도 비교적 활발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시작부터 그랬다. 공화정 말기 때 사회가 문란해지고 독재정치의 횡포가 심해지면서 이를 바로잡기 위해 새로운 정치체제가 등장하게 되는데 이것이 제국 체제였다. 콘술을 선출하는 등 대중주의 정치가 오히려 혼란을 가중한 측면이 많기 때문에 강력한 1인 중앙집중 체제를 구축한 것이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 기원전 63~서기 14)는 이런 기대에 잘 부응했다. 그는 공화정 말기의 혼란을 잘 수습하면서 기원전 27년에 황제로 등극해서 로마제국의 문을 열었다. 그 후 무려 41년을 통치하면서 제국의 기틀을 닦았다. 그는 강력한 보수정치를 펴며 자신이 근검절약하는 모범을 보여 사회 기강을 바로 잡았다.

건축도 중요한 통치 수단이었다. 아우구스투스의 주택이라고 불리는 그의 황궁을 보면 웬만한 귀족의 주택보다도 소박하고 규모도 작았다(도 2-14). 이 주택은 팔라틴(Palatine)이라는 로마 황궁 단지의 시작을 알리는 건물이지만 이후 황제들의 화려한 황궁들과 견주면 너무 검소하고 소박해서 그의 생활이 얼마나 극기적이었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도 2-14 아우구스투스의 주택(Home of Augustus) 실내 전경

도무스 아우구스타나(Domus Augustana=House of Augustus)의 일부, 팔라틴 내, 로마, 기원전 1세기 말.

ⓒ 임석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포럼 로마눔을 대거 정비하고 확장했다(도 2-15). 일상 시민 활동을 위한 면적 확장에 더해 여러 신전을 세워 로마 시민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었다. 현재 이곳에 남아 있는 콩코르디아 신전(Temple of Concordia) 등 주요 대형 신전들은 대부분 아우구스투스 때 세운 것이다(도 2-16).

여기에 더해 임페리얼 포럼에 아우구스투수의 포럼을 더해 확장했다. 이탈리아반도를 넘어선 속주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그였다. 서유럽 남부, 북아프리카, 오리엔트 등 여러 곳이었는데 가장 두드러진 곳이 프랑스 남부와 스페인 남동부 등 서유럽 남부였다. 유럽 내에서도 손꼽히는 곡창지대인데, 이곳에 다리와 수로를 놓아 농업을 일으켜 로마의 식량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아를 지방은 대표적인 예이다. 님(Nimes)에는 가르강을 가로지르는 가르 교(Pont du Gard)라는 다리를 세워 교통망을 닦음과 동시에 상부에는 수로를 넣어 용수도 확보했다(도 2-17). 3단의 아치 구조로 길이 275미터, 높이 49미터의 규모를 자랑한다.

님의 시내에는 메종 카레(Maison Carree)라는 신전도 세웠는데 로마 신전 전체를 통틀어 가장 아름다운 신전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토마스 제퍼슨이 특히 좋아했던 신전으로, 에트루스칸 신전을 기본 구성으로 삼아 수려한 그리스 코린트식 오더로 열주를 세웠다. 이외에도 아를의 원형극장은 폼페이우스의 원형극장을 대규모로 발전시켜 로마 원형극장의 완성을 이루었다(도2-18).

아우구스투스의 건축 활동을 보좌한 것은 비트루비우스(Vitruvius)라는 건축 이론가였다. 그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축 이론서인 『건축십서』를 쓴 것으로 유명한데 아우구스투스 때 사람이었다. 그는 황제의 보수주의 경향에 맞춰 그리스 헬레니즘의 오더 양식을 적극 추천해서 유행시킨 장본인이었다.

여기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포럼과 속주 개발과 다리와 수로의 축조 등 각종 실용주의 건축을 수행한 것도 그였다(도 2-19). 공화정 말기 때 첫 번째 큰 위기를 맞았던 로마 사회는 아우구스투스의 치적에 힘입어 이를 극복하고 제국의 튼실한 기초를 잘 닦는 데 성공했는데 이것을 건축적으로 뒷받침한 이론가가 비트루비우스였다.

사진목록
  • 도 2-15 포럼 로마눔 도 2-15 포럼 로마눔
  • 도 2-16 콩코르디아 신전, 포럼 로마눔 내 도 2-16 콩코르디아 신전, 포럼 로마눔 내
  • 도 2-17 가르 교 도 2-17 가르 교
  • 도 2-18 아를의 원형극장(Amphitheater of Arles) 도 2-18 아를의 원형극장(Amphitheater of Arles)
  • 도 2-19 아우구스투스교(Bridge of Augustus)에서 한층 성숙한 모습. 도 2-19 아우구스투스교(Bridge of Augustus)각주1) 에서 한층 성숙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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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미지1/5 도 2-15 포럼 로마눔
도 2-15 포럼 로마눔

로마, 기원전 1세기에서 서기 4세기에 걸쳐서 연차적으로 지어진 이 포럼은 아우구스투스 때 1차 골격이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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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투스의 치적을 건축의 관점에서 보면 의미 있는 경향을 한 가지 발견할 수 있다. 작품성이 뛰어난 창작품은 아니나 제국의 공익을 위한 건물을 많이 지었으며 개인을 위한 건물은 자제했다는 점이다. '공공성 대 개인사'의 쌍 개념으로 공화정 대중주의 시절에 나타났던 현상인데 이것을 성공한 치적 혹은 성공한 건축의 기준으로 완전히 정착시켰다. 황제의 권력을 사적 욕심과 쾌락을 위해서 사용한 황제는 망했고 공공의 안녕과 번영을 위해 사용한 황제는 흥했다는 정치의 상식이 건축에서도 똑같이 통용되는 기준을 세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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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집필자 소개

서울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프랑스 계몽주의 건축에 관한 연구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건축을 소재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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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 저자임석재 도서 소개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책으로 만나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강의”총 724장의 컬러 도판으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압축적인 한 권의 서양건축 통사 이 책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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