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1730년대에 들어 켄트의 작품에서 팔라디오 양식의 변질과 쇠퇴가 나타나기 시작할 즈음 영국 건축에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팔라디오 양식에 대한 비판이 먼저 시작되었다. 영국 사회에 맞지 않는 정치적 상황의 산물일 뿐이며 순수 예술적 차원에서도 가벼운 표피양식이라는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

비판은 자연스럽게 18세기에 맞는 영국의 새로운 양식을 찾는 시도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당시 대륙에서 나타난 국제적 신고전주의를 받아들여 국제적 보조를 맞추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으며 이후 영국다운 신고전주의로 발전했다.

문을 연 것은 제임스 기브스(James Gibbs, 1682~1754)였다. 출생 연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바로크, 팔라디오 양식, 신고전주의의 혼재를 보여주는 전환기적 건축가였다. 로마에 유학해서 폰타나에게 배우고 렌의 영향을 받는 등 초창기 경력은 바로크로 시작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1715년경부터는 팔라디오 양식으로 전환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팔라디오 양식을 구사하지 않았고 대표작도 남기지 못하고 5년의 탐색기를 보냈다. 대륙에서 고전주의 원본을 익히고 돌아온 기브스는 팔라디오 양식의 표피 양식이 지닌 한계를 꿰뚫어 보았을 것이다.

탐색기를 보낸 뒤 설계한 광야의 성 마르티노(St. Martin-in-the Fields, 런던, 1720~26)에서 새로운 경향을 선보였다. 여섯 개의 오더를 사용한 유사 원형 열주식 신전 파사드로 전면을 처리한 것으로 바로크와 팔라디오 양식 모두를 벗어난 것이다(도 8-21).

생쉴피스보다도 10여 년 앞선 것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생쉴피스에서는 신전 파사드가 아닌 열주만 사용해 그리스 고전주의 나아가 고전 정신의 순도와 원형을 표현했다. 반면 이 건물에서는 박공을 갖는 신전 파사드를 통째로 사용해 열주 효과 면에서는 생쉴피스에 뒤졌다. 특히 그 뒤로 높은 첨탑을 더한 처리는 열주 효과를 더욱 반감했을 뿐 아니라 바로크의 잔재에 해당하는 결정적 한계였다.

신고전주의와 바로크의 혼재는 실내에도 나타났다. 실내의 기본 구성은 코린트식 독립 원형 기둥 열주가 배럴 볼트 천장을 받치는 방식이었다. 벽체 구조에서 완전히 해방된 경쾌하고 합리적인 신고전주의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이런 구성은 비트루비우스의 바실리카 원형 및 이것에 대한 페로의 해석을 차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디테일을 보면 엔타블러처를 두지 않았을 뿐 아니라 볼트 천장의 밑변을 반원 아치가 파고들어가 잘라내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그 결과 루넷형의 아케이드가 만들어졌는데 이런 처리는 영국 바로크의 천장에서 자주 사용하던 방식이었다(도 8-22).

이런 이유로 이 건물은 열주 출입구를 가장 먼저 사용한 건물인데도 온전히 신고전주의의 문을 연 건물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이 건물의 위치는 매우 애매했다. 바로크의 잔재도 양면적 해석이 가능했다. 시대적 한계로 볼 수도 있었지만 영국 전통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럴 경우 국제적 신고전주의는 되지 못하지만 영국다운 신고전주의의 문을 연 것으로 평가할 수 있었다. 이 건물의 혼용 처리는 이후 기브스의 모든 작품에서 반복되며 이 유형을 차용한 영국과 미국의 예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만큼 영미권의 국민 정서와 잘 맞았다는 뜻이며, 따라서 기브스의 혼용은 영국의 국가 양식을 찾으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