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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은 일반명사로는 '습관적 반복, 상투적인 모방, 진부한 기교' 등을 일컫는 말로 새로운 창조력이 상실되었다는 부정적 의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고유명사가 되면 달라진다. 건축에서 매너리즘은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유행했던 양식을 지칭한다.
고전 법칙을 거부하며 일탈과 변형을 추구한 사조였다. 16세기는 성기 르네상스의 시대였는데 그 옆에 이와 반대되는 또 하나의 사조가 함께 있었던 것이다. 페루치와 줄리오 로마노가 대표 건축가였다. 미켈란젤로는 성기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반반씩 구사했으며 팔라디오는 부분적으로 매너리즘 기법을 사용했다.
매너리즘의 특징은 심한 '탈법칙'으로 요약할 수 있다. 사용 어휘는 고전주의였지만 문법은 철저히 파괴했다. 고전 어휘만 사용한다고 고전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며 부재의 크기와 위치, 부재들 사이의 비례와 배열 등 지켜야 할 구문 법칙이 많았는데 이것들을 깨트린 것이다(도 6-39).
이 때문에 20세기 초까지 매너리즘에 대한 평가는 "잔 기교에 기댄 르네상스 고전주의의 변질 양식"이라는 부정적인 것이었다. 20세기를 거치면서 당시 시대 상황을 반영한 창조적 예술 기록으로서 또 하나의 새로운 양식이라는 긍정적 평가로 바뀌었다.
매너리즘은 시대 상황의 산물인 측면이 많다. 유럽 역사에서 16세기는 가장 힘든 시기 가운데 하나였다.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유럽 사회는 분열되었다. 유럽의 정신적, 종교적 뿌리였던 기독교를 둘러싼 내부 분열이었기 때문에 충격과 부작용은 컸다.
일부 사학자들은 '대분열'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분열은 물리적 충돌로 이어지며 종교전쟁을 낳았다. 그 과정에서 개인들은 심한 '소외'를 느끼며 고통을 받았다. 일부 예민한 건축가들은 이런 어려운 시대 상황을 작품에 반영해서 일탈과 반항을 추구했다.
기독교를 둘러싼 충돌은 대표적 현상이었다. 종교개혁은 천 년 이상 이어온 가톨릭의 권력을 무너트렸다. 신교는 가톨릭의 권위적 권력에서 벗어나 해방을 내걸었지만 종교개혁의 과정에서 벌어진 물리적 충돌은 또 다른 전쟁에 다름 아니었다(도 6-40).
반종교개혁으로 다시 권력을 잡은 가톨릭은 사상, 학문, 예술에 대해 감독과 탄압을 강화했다. 사상, 학문, 예술 활동이 후퇴했으며 건축가들은 부정적 상황에 대해 반발했고 이것을 냉소와 풍자로 표현했다. 가톨릭과 한 몸으로 밀착되어 있던 고전주의의 규범을 어기는 일탈은 곧 가톨릭에 대한 건축적 도전이자 반항이었다. 이것을 예술 양식으로 집단화한 것이 매너리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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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매너리즘 –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임석재,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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