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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건축

페이르와 드베일리의 파트너십

종합화와 급진적 고전주의

가브리엘(Jacques-Ange Gabriel, 1698~1782)은 바로크를 이끌었던 17세기 거장들의 계보를 이으며 18세기 신고전주의를 완성했다. 가브리엘 때까지는 루이 15세의 왕실이 굳건했고 왕실이 건축을 주도하던 전통도 남아 있었다. 가브리엘 사후 1760년대 들어서는 왕실의 힘이 급격히 약해지면서 건축사조의 흐름도 붕괴되었다. 건축가의 수가 늘고 유형도 다양했지만 대가는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건축 경향에서는 가브리엘 활동 당시까지 지켰던 고전 원형의 순도와 규범이 붕괴하는 변화가 나타났다.

실제 결과는 의욕에 못 미쳐서 창작성 높은 작품은 없었으나 관습을 거부하는 실험 정신은 의미가 커서 혁명기 건축을 낳는 토대가 되었다. 1760년대 이후 프랑스 신고전주의 건축가는 나이에 따라 1720~30년대 세대와 1740년대 세대로 나눌 수 있으며 이들은 가브리엘의 프랑스다운 신고전주의의 뒤를 이어 급진적 신고전주의를 이끌었다. 1740년대 세대 가운데 블레와 르두는 신고전주의에 머물지 않고 급진적 실험을 더 발전시켜 혁명기 신고전주의를 이끌었다.

1720~30년대 세대를 대표한 것은 마리조제프 페이르(Marie-Joseph Peyre, 1730~85)와 샤를 드베일리(Charles de Wailly, 1730~98)의 파트너십이었다. 페이르는 왕립 건축 아카데미에서 자크 프랑수아 블롱델에게 프랑스 고전주의를 배우며 표준 국가 양식에 대한 인식을 형성했으나 로마 수학 때 피라네시를 만나 영향을 받고 고대 바로크에 속하는 유적들을 측량하면서 고전주의도 변형을 통한 창작적 각색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건축 경향에도 이런 양면적 배경이 나타났다. 축, 대칭, 거대 콜로네이드 등을 선호한 기념비적 고전주의와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방이 상호 관입하는 개별 분화 현상을 동시에 나타냈다.

교육 배경과 작품 경향이 페이르와 비슷한 드베일리에게서는 종합화가 두드러졌다. 세르반도니에게 열주 효과를, 르게이에게 폐허 수채화 운동을, 블롱델에게 고전주의 이론을, 피라네시에게 낭만적 고전주의를, 고대 바로크에서 고전주의의 자유로운 각색을 각각 배웠다. 간접적으로는 가브리엘에게 로마 고전주의에 대한 고고학적 정확성과 합리적 절제를 배웠다. 이들 파트너십은 이런 공통점을 매개로 고전 규범을 붕괴하는 실험을 시작했다.

대표작은 오데옹 극장(Theatre de l'Odeon, 파리, 1767~82)각주1) 이다. 예산 부족으로 여러 차례 설계가 변경되고 시공이 중단됐으며 완공 이후에도 많이 개축돼 본래 모습을 상실했지만 원안의 도판과 현재 남아 있는 건물 상태를 통해 설계 의도 및 건축적 의미를 판단할 수 있다. 외관의 특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세르반도니의 열주와 가브리엘의 추상적 절제를 합한 처리다. 선례 종합화를 보여주는 특징으로 프랑스다운 신고전주의의 맥을 잇는 의미가 있다(도 8-6).

도 8-6 오데옹 극장

마리조제프 페이르 & 샤를 드베일리, 파리, 1767-82.

ⓒ 임석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다른 하나는 신전 구성을 이용한 개별 부재의 분리로, 고전 규범의 붕괴를 보여주는 처리다. 현재 건물을 기준으로 보면, 박공을 분리하고 열주만 남은 신전 몸통을 열주 출입구로 사용했다. 세르반도니의 열주 구성을 좇은 것으로 볼 수 있으나 그보다는 신전 구성에서 부재를 분리한 쪽에 가깝다. 초안은 이보다 더 과격해서 열주 출입구 위에 작은 블록 셋을 더해서 장식을 겸한 지붕으로 사용했다. 중앙의 높고 큰 블록을 양옆에서 작은 블록이 호위하는 형국이다(도 8-7).

도 8-7 오데옹 극장, 초안

샤를 드베일리, 파리, 1767-82.

ⓒ 임석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중앙 블록은 건물 전체의 큰 박공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이것을 또 하나의 작은 신전 파사드로 메웠다. 신전 구성을 소품으로 만든 것이며 그 속에 소품화된 개별 어휘들을 한 번 더 넣었다. 세를리안 모티브가 받치는 아치가 중앙을 차지하며 양옆에 벽감을 판 뒤 그 위에 미켈란젤로의 매너리즘 상인방을 따와 얹었다.

셋을 합해서 전체로 보면 로마 개선 아치의 구성을 이룬다. 중앙 블록 양옆의 작은 블록은 박공을 반원 조각 아치로 변형해 얹은 아주 작은 신전 파사드로 처리했다. 이 건물에서는 이처럼 여러 선례 모티브를 사용하되 각각의 기본 규범을 따르지 않고 어휘별로 변형 분리하거나 소품으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개별 어휘는 어떠한 절대 규범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건축가 개인의 조형적 상상력에만 의존하여 조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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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재 집필자 소개

서울공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미시간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펜실베이니아대학교에서 프랑스 계몽주의 건축에 관한 연구로 건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건축을 소재로 동서고금을 넘나드는..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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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 저자임석재 도서 소개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책으로 만나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강의”총 724장의 컬러 도판으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압축적인 한 권의 서양건축 통사 이 책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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