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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임석재
의 서... 바로크 건축
피에몬테 공화국과 주바라
필리포 주바라(Filippo Juvarra, 1678~1736)는 시칠리아의 은세공 집안에서 태어나 은세공, 성직 준비, 판화, 건축 등 다양한 교육을 받은 뒤 로마의 산루카 아카데미에 유학했다. 폰타나는 앞 시대 로마 거장들의 도면을 정리하고 작품을 도면으로 제작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이 일을 주바라에게 맡겼다.
주바라는 이 기회를 통해 거장들의 고전주의를 체험할 수 있었다. 1705년 졸업 후 많은 계획안을 남기며 동분서주했지만 실제 일거리를 찾지 못하다가 1714년 피에몬테의 왕이었던 비토리오 아메데오 2세(Vittorio Amedeo II)의 수석 건축가로 발탁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토리노를 왕국의 수도로 정한 왕은 정치적 권위에 걸맞은 건축을 원하였고 주바라를 발탁했다(도 7-38). 주바라는 거장들이 남긴 선례들의 장점을 취합하여 18세기 초반에 새롭게 부상한 권력의 취향에 맞는 장식 양식을 선보일 기교와 재주가 있었다. 이것이 새 왕의 야망에 부합한 덕분에 주바라는 이후 20년 동안 왕실 건축가로 활동하면서 토리노를 중심으로 피에몬테 지방에 여러 채의 주요 작품들을 남길 수 있었다.
성 필리포 네리(Santo Filippo Neri, 토리노, 1717)와 산타크로체(Santa Croce, 토리노, 1718) 등 교회도 많이 남겼지만 팔라초와 왕궁 등 왕실과 권력층의 대저택에서 주요 작품이 나왔다. 토리노 근교의 수페르가(Superga, 1716~31)와 스투피니지 팔라치나(Palazzina di Stupinigi, 1729~35)와 시내의 마다마 팔라초(Palazzo Madama, 1718~21)가 대표작이다.
주바라 건축의 특징은 장식 아카데미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 르네상스에서 바로크에 이르는 초기 근대 고전주의를 종합한 뒤 장식으로 각색했다는 의미다. 주바라의 대표작은 18세기를 넘긴 것들인데 이 시기 프랑스와 영국에서는 계몽주의라는 새로운 문명이 시작되고 있었다. 문명의 중심은 이탈리아에서 두 나라로 넘어가고 있었다.
주바라는 여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대신 당시까지의 고전주의를 종합한 뒤 장식으로 치장하는 경향을 구사했다. 후기 양식의 전형적 태도인데 이것이 무의미한 장식주의로 흐르지 않은 것은 주바라 개인의 절제된 조형 능력 덕분이었다. 크게는 피에몬테 공화국의 위상을 표현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와 맞물린 덕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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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책으로 만나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강의”총 724장의 컬러 도판으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압축적인 한 권의 서양건축 통사 이 책은..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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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피에몬테 공화국과 주바라 –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임석재, 북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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