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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손(John Soane, 1753~1837)은 벽돌 시공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건축가에 오른 입지전적의 인물이다. 타고난 천재성을 바탕으로 창조력 넘치는 작품을 남겼는데 규범을 반복하는 대륙 고전주의는 이런 기질과 맞지 않았다.

고전주의를 기본 매개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급진적 고전주의 이상의 자유로운 규범 분해 경향을 추구했으며 낭만주의 미학으로 고전을 해석하는 경향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런 점에서 댄스 2세의 뒤를 이어 낭만적 고전주의로 영국다운 신고전주의를 완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손은 영국적 신고전주의의 기초를 닦은 체임버스와 댄스 2세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이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창작적 작품성을 더해 손 스타일을 창출했다. 일찍이 손의 재능을 알아본 체임버스는 손을 적극적으로 후원하며 영국적 신고전주의의 이론적 배경을 가르쳤다.

댄스 2세는 자신의 설계 사무소에서 4년 동안 손을 데리고 있으면서 낭만주의 정신을 가르쳤다. 이를 바탕으로 우물 광정, 부유하는 돔, 픽처레스크 구성, 중세주의, 원시주의 등을 특징으로 하는 손 스타일을 창출했다. 대표작은 영국 은행(Bank of England, 1788~1833)^각주1) 과 링컨스 인 필즈(Lincoln's Inn Fields, 1812~13)다.

영국 은행의 평면은 픽처레스크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유기적 평면 구성으로 풀었는데, 동일성과 정형적 질서를 배격하고 다양한 이질 요소를 상호간 쌍방향 작용에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했다. 축이나 대칭 같은 중심 질서가 없었으며 각 방의 크기, 형상, 방향이 달랐다. 유형학적 다양성도 있었다(도 8-53).

주요 방들은 유형학적 기준에 따라 변화를 주며 다양하게 처리했다. 사각형의 전체 윤곽을 유지하는 가운데 그리크 크로스, 사엽형, 반원형, 타원형, 열주 홀, 이집트식 홀 등으로 기하 형태와 실내 골격을 다양화했다. 이것을 3차원 공간으로 만드는 구조 골격도 펜덴티브 돔, 접시형 돔, 배럴 볼트, 그로인 볼트, 평천장, 2분의 1 반구, 우산형 돔 등으로 다양하게 구사했다(도 8-54).

링컨스 인 필즈는 손 개인의 작품 가운데서, 그리고 낭만적 고전주의, 영국다운 신고전주의 작품 가운데서 최고의 걸작이었다. 부지를 4회에 걸쳐서 분할, 구입했으며 매번 집을 한 채씩 지어 네 채의 집을 묶은 복합건물이 되었다. 네 채는 갤러리, 손 하우스, 미술실, 수도사실로 각각 이루어졌다. 각 집은 서로 층이 어긋나며 상호 관입하는 공간을 만들어냈다. 수직 방향으로 픽처레스크 구성을 만들어내는 손만의 독특한 공간 구성이 완성되었다. 고전 어휘, 골동품, 빛의 세 매개를 사용했다.

엇갈린 공간 골격에 콜로네이드, 아치, 볼트, 돔, 다양한 오더 양식 등 고전 부재들을 더하면서 실내는 고전 어휘의 파노라마를 이루었다. 부재들 사이에는 더 이상 선험적 위치 관계나 위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공간 골격의 풍부함과 가변성을 돕는 방향만이 유일한 위치 기준이었다. 이런 공간 골격에 골동품을 더했다.

손은 당대에 유명한 골동품 수집가로 골동품은 그의 건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였다.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건축적으로 의미와 기능을 갖는 요소였다. 실내 전체에 유적 파편이 꽉 차면서 골동품은 그 자체가 역사 양식의 역할을 했는데 배열 방식에서 역사 양식 사이에 차별과 구별을 없애 실내의 픽처레스크 분위기를 도왔다(도 8-55).

이렇게 만들어진 복합 공간 사이를 빛이 흘러 다니면서 중세의 빛 개념을 낭만주의 미학으로 재해석해낸 장면을 연출했다. 명암 대비가 중요한 매개였는데 매우 분산적이어서 중세다운 신비주의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서로 마주치는 네 건물들의 각 층이 어긋나면서 공간의 골격 자체가 흐트러졌다.

공간의 크기는 분수(分數)의 조각 단위로 잘게 나뉘었다. 광원도 분산되었다. 햇빛의 상태도 가변적이었다. 런던은 하루 중에도 흐린 날씨와 맑은 날씨가 수시로 바뀌며 일 년을 기준으로 보면 날씨가 극적인 대조를 보이는 것이 특징이다. 분산적 건물 골격에 가변적 햇빛이 작용하면서 실내에서 빛 작용은 한시도 고정되지 않는 부유하는 분위기로 나타났다(도 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