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읽는 임석재
의 서... 바로크 건축
르보와 왕실 고전주의의 완성
루이 르보(Louis Le Vau, 1612~1670)는 루이 14세 통치 전반기의 수석 건축가로서 왕실 고전주의를 정착시킨 인물이다. 왕실 고전주의란 거창한 이름과 달리 은유적이며 아기자기한 구석이 많은 기법이었다. 그랜드 매너도 예상보다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이전까지 개별 건축가들이 순수 창작의 관점에서 시도해오던 내용들을 루이 14세의 절대왕정이 자리 잡으면서 왕실에서 종합한 것에 가까웠다. 이런 점에서 루이 14세 양식이나 국가 양식과 일정 부분 동의어이기도 했다.
'프랑스 왕실에 적합한 혹은 프랑스를 대표할 고전주의'가 핵심이었으며 다음 세 요소를 합해서 창출했다. 첫째, 프랑스의 민족정신으로, 망사르가 고민했던 프랑스 전통의 재현과 비대칭 구성 및 자신의 '대칭 속 자유 구성'을 또 하나의 규칙으로 정착시켰다(도 7-65). 둘째, 오더 체계를 중심으로 한 정통 고전주의로, 앞의 프랑스다운 내용에 보편적 권위를 부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셋째, 그랜드 매너로, 절대 왕정의 권위에 필요한 과시적 경향을 더했다(도 7-66).
르보는 파리의 건축가 집안에서 태어나서 일찍부터 프랑스 바로크 건축가들의 고민과 성향 등을 접하며 자랐다. 뛰어난 소질은 없었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왕실에 진출해서 안정적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건축 활동은 둘로 나뉜다.
1654년까지는 주로 망사르와 함께 호텔과 성채 건축을 이끌었다. 이때까지는 건축주도 귀족, 관료, 부르주아 등이었다. 랑베르 호텔(Hotel Lambert, 파리, 1640~44)과 랭시 성채(Chateau de Raincy, 1640년경~45년경)가 대표작이며 왕실 고전주의의 기초를 다졌다.
1653년에 마자랭은 프롱드당이 정치적 승리를 거두자 르보는 그 후광으로 1654년에 왕실 수석 건축가가 되었고 뒤이어 왕실 건축 총감독관이 되는 등 전성기를 보냈다. 이 시기에는 왕궁을 중심으로 루이 14세 양식의 기틀을 닦아 아르두앙 망사르에게 넘겼다.
하지만 르보의 왕궁 작품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베르사유궁전의 앙벨로프(enveloppe)를 설계하면서 골격을 잡았지만 루이 14세의 마음에 들지 않아 아르두앙 망사르가 증 ・ 개축했기 때문에 르보의 작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도 7-67).
루브르 궁전의 동익랑도 담당했지만 콜베르의 견제를 받으며 페로와 르브룅과 공동 작품이 되면서 르보의 저작권은 거의 없어졌다. 1663년에 콜베르가 집권하면서 스스로 왕실 건축 총감독관이 되자 르보는 쇠퇴의 길을 걸으며 말년을 보냈다.
왕궁 이외의 작품은 괜찮은 편이어서 보르비콩트 성채(Vaux le vicomte, 1656~61)를 중심으로 왕실 고전주의를 완성했으며 4개국 대학(College des Quatre Nations, 마자랭 대학, 파리, 1662~74)각주1) 같은 공공건물도 맡아서 그랜드 매너를 시도해보기도 했다.
랑베르 호텔과 보르비콩트 성채
르보의 호텔은 망사르가 지은 것들과 달랐다. 랑베르 호텔을 보면, 건물 윤곽에서는 가급적 대칭과 축의 고전 질서를 지키면서 실내 공간을 자유롭게 구성했다. 대지가 비정형이지만 최소한의 대칭 구성이 가능하도록 다듬어 분할해서 건물에 배당하고 나머지 비정형 조각을 정원으로 활용했다. 실내에서는 대칭과 축을 이루는 중앙의 주 공간을 중심으로 각 실들을 자유롭게 배치했다(도 7-68). 완전 좌우대칭을 피하고 약간의 파격을 주었다.
각 실들은 팔각형, 타원, 긴 직사각형, 적당한 직사각형, 정사각형, 비대칭 사다리꼴 등 다양한 기하 형태로 짰다. 실 하나가 건물 폭 전체를 담당하기도 하고 편 복도를 갖기도 하고 건물 폭을 방 두 칸이 나누어 담당하기도 했다.
동선은 복도를 지나다 방을 통과하고 계단을 오르는 등 변화를 보였다. 각 실들의 천장 높이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 크고 중요한 방은 2층 높이에 볼트로 천장을 마감한 소위 '이탈리아식 방'으로 처리했다. 나머지 방들은 프랑스의 다세대 주거에 흔히 쓰이는 평천장으로 처리했다.
외관도 실내의 자유 구성을 잘 보여준다. 외피를 일반적인 고전주의 개념인 영역별 입체로 구성하지 않고 실내를 감싸는 껍질 개념으로 정의했다(도 7-69). 각 실의 크기, 형태, 배치가 먼저 자유롭게 결정되고 외피는 이것을 싸는 기능적 역할만 했다. 장식도 건물 골격 위에 2차 요소로 더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둘의 일치를 추구했는데 중세식의 완전 일치가 아니라 자신만의 기법을 창출했다.
장식을 선과 면 단위의 중간 상태로 단순화한 뒤 이것들의 미묘한 들고 남을 통한 기하학적 효과를 노렸다. 건축 부재도 여기에 맞췄다. 창틀, 벽체, 코니스, 아키트레이브, 벽기둥 등을 선형 어휘와 패널을 합한 기하학적 구성으로 처리해서 장식과 구별을 없앴다. 이상의 내용은 루이 14세 양식의 근간이 되었으며 이후 유럽 각국의 왕궁 설계에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보르비콩트 성채는 랑베르 호텔의 구성기법을 이어받은 위에 정통 고전주의와 프랑스 전통의 양면을 강조한 기념비적 처리를 더해 왕실 고전주의를 정착시킨 작품이다. 타원형 그랜드 살롱, 계단 전실과 그랜드 살롱을 합한 웅장한 중심 공간, 십자축 구성, 좌우대칭, 동일한 방 등이 평면에서 정통 고전주의를 강조한 내용이다(도 7-70). 파사드에서는 오더와 신전 박공을 사용했다. 프랑스 전통을 강조한 내용은 평면에서는 중앙 출입구와 측동을 갖는 5분법, 파사드에서는 기하학적 돔과 경사 지붕 등이었다.
랑베르 호텔을 이어받은 르보만의 독창성도 평면과 파사드 모두에 나타났다. 평면에서는 두 겹을 이루는 방들이 서로 어긋났으며 좌우에 약간의 불일치를 주는 방식으로 완전 대칭까지 가지 않고 최소한의 다양성을 지켰다. 측동의 작은 공간과 몸통의 큰 공간 사이에 대비가 일어났고 동선은 한 번에 명쾌하게 건물을 돌지 않고 여러 번 꺾인 뒤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런 구성은 초창기 호텔에서 나타났던 자유구성을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파사드에서는 스케일에 변화를 준 여러 종류의 고전 부재를 이용해서 3차원 덩어리 느낌을 완화하는 방식으로 표피 개념을 변형, 강화했다. 중앙 출입구는 랑베르 호텔과 동일하게 처리한 표피 위에 오더를 층 쌓기한 2층 신전 파사드를 더해서 만들었다.
이 부분은 뒤쪽의 기하학적 돔에 덧붙인 소품처럼 느껴지면서 3차원 입체감이나 축조성을 상실했다. 측랑과 측동은 랑베르 호텔의 기법에 좀 더 가까웠다. 두 층을 가로지르는 거대 기둥으로 1차 골격을 짠 다음 그 사이에 오더를 변형한 작은 벽기둥이나 판재로 처리한 창틀을 끼워 넣었다(도 7-71). 얇은 판재를 길고 잘게 썰어 층층이 겹친 구성으로 보이면서 3차원 입체감이나 축조성 대신 실내 공간을 감싸는 표피처럼 느껴졌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책으로 만나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강의”총 724장의 컬러 도판으로 현장감이 살아 있는, 압축적인 한 권의 서양건축 통사 이 책은..펼쳐보기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르보와 왕실 고전주의의 완성 – 한 권으로 읽는 임석재의 서양건축사, 임석재, 북하우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