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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물건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두 측면이다. 사용가치는 한 물건이 지니고 있는 쓰임새나 유용성을 뜻하는 것으로, 이것은 쓰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똑같은 햄버거가 어떤 사람에게는 먹어서는 안 될 정크푸드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배고픔을 해결할 유용한 수단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사람에게는 천상의 음식일 수도 있다. 이에 비해 교환가치는 그 물건이 지니고 있는 가치의 양적 측면으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천원짜리 햄버거는 아이에게도 어른에게도,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천원짜리여야 한다. 좀 단순화시켜 이해하자면, 사용가치는 한 물건이 사람들에게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는 의미와 유사하고, 교환가치는 그 물건의 가격과도 비슷한 것이다. 내게 길든 베개처럼 사용가치는 크지만 교환가치는 거의 없는 물건도 있고, 반대로 비싼 값을 주고 샀는데 환불도 안 되고 쓸모도 없는 엉터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 같은 물건도 있다.
사용가치와 교환가치의 구분이 문제가 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가치 있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물질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것을 뜻하기가 쉽다. 가치 있는 사람, 가치 있는 행동, 가치 있는 생각 등등에서처럼. 그리고 물질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어떤 특별한 정신적 자질을 뜻하기가 쉽다. 30년 동안 쓴 일기, 가족 사진첩, 어머니의 유품 같은 것들이 그렇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며 내게 남긴 손수건 한 장은, 뒤에 남은 내게는 사랑 그 자체의 상징일 수 있고, 또 내가 그 사랑을 위해 남은 생을 살겠다고 작정한다면 손수건은 내 삶이나 우주 전체와 맞먹는 질량을 지닐 수도 있다.
하지만 상품의 세계에서는 그런 가치는 발언권이 없다. 그것은 상품화되기 힘든 낡은 손수건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상품이란 그것을 생산한 사람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구매할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 즉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를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타인을 위한 사용가치라는 말은 ‘사회적 사용가치’라는 말로 바꿀 수 있다. 상품의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사회적 관계이다. 그것이 빠져버린다면 사용가치의 생산은 있을 수 있어도, 즉 뭔가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 수 있어도, 교환가치의 생산은 있을 수 없다. 살 사람이 없으니 팔 수가 없는 것이다. 상품 생산의 기초가 되는 사회란 곧 사고파는 일이 벌어지는 공간을 뜻한다.
상품이란 다른 사람에게 팔기 위해 생산된 물건이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가 쓰고 남아서 파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팔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상품인 것이다. 상품에 구현되는 두 가지 가치는 그 속에 들어가 있는 두 가지 형태의 노동과 연관되어 있다. 마르크스는 이 둘을 ‘구체적 유용 노동’과 ‘추상적 인간 노동’으로 구분했다. ‘구체적 유용 노동’은 사용가치를 생산하고 ‘추상적 인간 노동’은 교환가치를 생산한다. 재봉질을 하여 저고리를 만드는 것, 면직기를 돌려 옷감을 만드는 것, 나무를 다듬고 못질을 하여 의자를 만드는 것 등등은 모두 ‘구체적 유용 노동’이다. 이들의 노동은 무언가 쓸모 있는 것들을 만든다는 점에서 유용하고, 또 특정한 쓸모를 만든다는 점에서 구체적이다.
그런데 교환가치를 만드는 ‘추상적 인간 노동’이란 무엇인가. 이것은 말 그대로 추상적인 개념이다. 교환가치에서 중요한 것은 거기에 포함되어 있는 노동의 양이다. 재봉사인가 면직공인가 목수인가의 구분은 문제되지 않는다. 숙련공인가 비숙련공인가도 중요하지 않다. 이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의 노동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썼는지만이, 즉 노동의 양만이 문제가 된다. 모든 개인적 특성이나 직업적 속성이 무시되고 오로지 자기 몸과 두뇌를 움직여 뭔가 일을 하는 추상적 존재로서의 인간만이 문제가 된다.
이런 노동, 즉 추상적 인간 노동이라는 개념을 포착해내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그 바깥에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몸을 땅으로부터 떠올려 사람들이 사는 세계 전체를 신의 눈으로 내려다보듯 그려보자. 그 안에서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성에 따라 이런저런 것을 배우고 일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바느질을 하고 어떤 사람은 곡식을 재배하고 어떤 사람은 집을 짓는다. 누가 시켜서 한 일일 수도 있고 자기가 좋아서 선택한 일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 결과로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서로를 위해 뭔가 일을 하고 그럼으로써 결과적으로 세계가 그럭저럭 꾸려진다. 이런 것을 일컬어 ‘사회적 분업’이라고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다. 이처럼 ‘사회적 분업’에 참여하게 되는 노동이 ‘사회적 노동’이고, 그것이 곧 ‘추상적 인간 노동’이다. 그것이 교환가치와 상품을 만든다.
그런데 문제는 한 사람의 노동이 ‘사회적 노동’이라는 것, 자기 자신만이 아니라 동시에 타인을 위한 것임을 누가 어떻게 보장해주느냐 하는 것이다. 그것을 보장해줄 수 있는 사람은 물론 나를 제외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다. 그들은 나의 노동이 포함된 상품을 구매함으로써 내 노동의 사회적 가치를 증거한다. 그것이 팔리는 순간 나의 노동은 개인적 노동에서 ‘사회적 노동’이 되고, 즉 ‘구체적 유용 노동’에서 ‘추상적 인간 노동’이 되고, 내가 생산한 가치는 교환가치의 영역에 등재된다. 거꾸로 내가 아무리 심혈을 기울였어도 그것이 팔리지 않았다면 거기 포함되어 있는 내 노동은 사회적이지 않은 것, 곧 교환가치가 없는 것, 곧 무가치한 것이 된다.
하지만 오해하지는 말자. 이런 가치의 논리는 어디까지나 팔기 위해 생산된 상품의 영역에서만 유효하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상품이 아닌 것을 놓고 사용가치나 교환가치를 논할 수는 없다. 팔 수 없는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마저 상품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는 하다. 그러니 거꾸로 갈 수도 있다. 교환가치의 대상을 사용가치로 만들어버리는 것, 상품이라는 형식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것, 이것은 사회 구성원 전체를 무시해버리는 것이기도 하다. 오백원짜리 동전으로는 물수제비를 뜨고, 만원짜리 지폐로는 불쏘시개를 하고, 십만원짜리 수표는 일회용 메모지나 좀 불편하지만 화장지로 쓸 수 있겠다. 상상해보자. 화폐라는 순수한 교환가치의 화신을 사용가치의 대상으로 만드는 순간 튀겨나올 반사회성의 불꽃들. 그것은 자본제의 냉소주의를 태울 수 있는 키니시즘의 불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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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 인문학 개념정원, 서영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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