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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문학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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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메시스와 디에게시스

그리스비극에서 솟아나온 개념들

이야기를 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상황을 재현해서 보여주는 것, 다른 하나는 있었던 일을 말로 설명해주는 것. 모방을 뜻하는 미메시스와 서술이라는 의미의 디에게시스가 각각 이 둘에 해당된다. 미메시스는 연극이나 그림처럼 대상을 묘사하고 재현하는 방식이고, 디에게시스는 이야기의 대상을 작중인물의 대사나 해설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다.

이 두 개의 그리스 단어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에 등장함으로써 유명해졌다. 플라톤이 자기가 구상한 이상적인 공화국에서 시인(이 경우 시인이란 넓은 의미에서 예술가를 뜻한다)을 추방하겠다고 한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감각으로 인식하는 세상은 그 뒤편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진짜 세계(그는 이를 이데아의 세계라고 부른다)를 흉내낸 것(미메시스한 것)에 불과하다. 진짜 세계를 모르고 눈에 보이는 세계만 전부인 줄 알고 사는 것도 한심한 일인데, 예술 작품이랍시고 그런 세계와 삶을 모방하면서 사는 시인(예술가)들이란 이중으로 하찮은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런 논리 속에서 미메시스란 ‘광대짓’이라는 말과 어감이 비슷한 수준 낮은 것이 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사정은 정반대로 바뀐다. 그는 미메시스에 입각한 허구로서의 시(예술)가 사실에 입각한 역사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했다. 사실로서의 역사는 개별적인 것, 이미 발생한 어떤 특정한 사안에 대해 말할 수 있을 뿐이지만, 허구로서의 시(예술)는 발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에 대해 언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메시스라는 개념의 위상도 달라진다. 미메시스는 인간 본성에 내재한 것으로서 실제로는 불쾌하거나 흉한 대상도 미메시스의 대상이 되면 쾌감을 산출하게 되는, 말하자면 고상하고 교육적인 의미의 예술적 창조력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논리 이후로 미메시스라는 개념은 예술이 지니고 있는 창조적 재현력의 의미로 구사되었고, 20세기에 들어선 이후로 독일의 비평가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에 의해서는 예술의 본질이라는 의미로까지 격상된다. 합리성과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근대사회 속에서 예술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해 아도르노는 예술작품이 현실적 위력인 합리성과 함께, 그에 맞서는 미메시스적 힘을 보유함으로써만 의미 있는 것일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미메시스적 힘이란 근대적 가치 질서에 의해 추방당한 것(자연이나 비합리성 등)들을 포착하고 품어 안는 힘, 즉 근대성의 타자와 동화되는 힘을 뜻한다. 미메시스란 단지 어떤 대상을 모방하고 흉내내는 힘일 뿐 아니라 그 모방의 행위를 통해서, 마치 공수를 받는 무당처럼 모방의 대상과 일체화되는 힘인 것이다. 예술이란 이런 미메시스적 계기를 자기 안에 간직하고 있을 때에만, 자본주의와 합리성의 전일적 지배로부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논리이다.

플라톤이 미메시스와 맞짝 개념으로 썼던 디에게시스라는 말도 20세기 후반에 들어 새로운 방식으로 부활했다. 소설이나 극영화 등을 포괄하여 이야기문학을 대상으로 하는 서사학에서, 디에게시스는 단순히 서술이라는 좁은 의미에서 벗어나 이야기를 전달하는 기법들을 포함하여 서술된 이야기 자체를 뜻하는 것으로 새롭게 정의된다. 이런 개념에 따르면, 디에게시스는 미메시스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던 묘사나 재현까지도 포괄할 수 있다. 이를테면, 객관적인 삼인칭으로 묘사된 것(즉, 미메시스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국 그 묘사를 하고 있는 사람(누군지 알 수 없는 중립적인 인격이든 작가 자신이든 간에)은 있기 마련이고, 그 입의 주인이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묘사든 서술이든 모두 디에게시스에 해당되는 것이다.

이런 논리는 언어학과 기호학에서 개발된 논리에 힘입은 것으로서 서사문학에 대한 좀더 심도 있는 분석과 사유를 가능케 해준다. 삼인칭의 객관적 시점으로 포착된 장면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미메시스가 아니라 디에게시스로 간주된다면 거기에 존재하는 추상적이고 객관적이며 투명한 모습은 단지 외관에 불과할 뿐이고, 그 시선의 진짜 주인은 그 겉모습 뒤의 어딘가에, 작가 자신도 모르는 영역에 숨겨져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한 여자가 혼자 길을 가는 장면이 화면에 잡힌다. 여기까지는 삼인칭의 투명한 시점이다.

그런데 화면이 슬쩍 움직이거나 거친 숨소리가 들림으로써 카메라 뒤에 누군가가 있음이 드러난다면, 미메시스였던 것이 디에게시스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는 그 시선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되고, 이런 질문으로 인해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다양한 시선의 몽타주가 드러날 수 있으며, 그로 인해 독자는 이야기로부터 훨씬 더 풍부한 의미를 건져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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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 집필자 소개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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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개념정원
인문학 개념정원 | 저자서영채 | cp명문학동네 도서 소개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개념어는 많은데 그 개념의 어원이나 구체적 쓰임..펼쳐보기

전체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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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8. 사디즘의 아이러니, 마조히즘의 유머 사디즘과 마조히즘 마조히즘의 유머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
chapter 9. 승화될 수 없는 것들의 섬뜩함 억압적 탈승화 과잉억압과 실행원칙 억압된 것의 회귀와 섬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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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9. 냉소적인, 너무나 냉소적인 냉소주의와 키니시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chapter 20. 극작가 플라톤의 희미한 유머 극작가 플라톤 플라톤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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