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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욕주의・회의주의・불행한 의식

이토록 하찮은 인생을

헤겔은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을 바탕으로 세 가지 형태의 자기의식을 구분한다. 금욕주의와 회의주의, 불행한 의식이 그것이다.

금욕주의는 일체의 현실 세계로부터 물러나와 사유의 영역 속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확인하는 의식이다. 여기에서 금욕주의란 일차적으로 그리스와 로마의 스토이시즘(Stoicism)을 뜻하는 것이지만 이런 특정한 철학이나 사조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며, 현실과의 교섭을 차단한 채 자기 내부의 덕성을 도야하고자 하는 모든 사유 형태를 뜻한다. 무엇보다 금욕주의자는 자기의 자립성이 노예의 존재에 의지하고 있음을 깨달아버린 주인의 마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를 단절함으로써 이런 의존성으로부터 벗어나려 한다.

이를 통해 금욕주의자는 추상적인 덕성의 세계로 들어감으로써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으로부터 한발 물러나 정신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로부터 유리된 진리와 지혜, 덕성의 세계가 갖는 한계는 자명하다. 무엇이 지혜로운 것이고 선한 것인가에 대해 금욕주의가 제시할 수 있는 대답은 지극히 추상적인 것, 구체적 현실과 맞닥뜨리게 되면 쉽게 무너져버릴 연약한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회의주의는 구체적인 삶과 마주하여 대상의 자립성을 부정하고 그 안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킴으로써 자신의 주인됨을 확인하는 정신이다. 이것은 쉴새없이 노동하는 노예의 마음과 흡사하다. 노예는 나무를 향해 다가가 도끼를 휘둘러 나무를 베고 그 나무를 장작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서 나무는 자립적인 나무가 아니라 자기에게 유용한 나무(장작)가 된다. 그러나 노예는 자기가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일의 목적을 설정하고 이유를 마련하는 것은 노예가 아니라 주인의 몫이다. 자기 앞에 주어져 있는 임무를 완수하는 것, 대상을 부정하고(나무를 자르고) 그 속에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장작을 만드는 것)만이 회의주의자의 일이다.

이처럼 회의주의자는 모든 안정적인 것을 동요케 하고 눈앞의 타자들을 부정함으로써 자기의 존재를 확인한다. 그러나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에서 그랬듯이, 회의주의자는 대상을 부정함으로써 스스로의 자유를 확인하지만 그의 자유는 거꾸로 부정의 대상들에 속박되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며, 부정을 통해서만 삶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회의주의자는 결국 부정의 대상들로 이루어진 삶 속에 철저하게 속박된 존재에 다름아니게 된다. 금욕주의자가 추상적 사유 속에 갇혀 있는 존재라면 회의주의자는 이유도 모르는 채 끝없이 일감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순수한 불안의 형태를 지니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회의주의의 끝은 모든 것이 헛될 뿐이라는 허무주의로 귀결된다.

불행한 의식은 금욕주의와 회의주의가 결합된 것으로서, 주인과 노예의 대극성 속에서 분열되어 있는 의식이다. 금욕주의가 세계를 좁히고 그 속으로 들어감으로써 순간적 평정을 찾는 의식이고 회의주의가 무한한 세계 속에서 방황하는 의식이라면, 불행한 의식은 금욕주의와 회의주의 사이에서 끝없이 부동하는 의식이다. 그 의식의 주체는 주인이면서 또한 노예이고 노예였는데 어느덧 주인이 된다. 끝없이 일에 몰두함으로써 자신의 처지를 잊는 회의주의도, 좁은 단절의 공간 속에 칩거함으로써 마음의 평정을 찾는 금욕주의도 궁극적인 정주처가 될 수는 없다. 불행한 의식의 주체는 행위를 통해 자기 자신을 실현하고 스스로를 확인하지만 또한 동시에 그러한 행위의 덧없음과 허망함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끝없이 노동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노예가 자신의 행위를 주인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런 시선으로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 자기가 무슨 굉장한 행동을 하건 간에 그것은 노예의 일에 다름아니며, 그 허망함을 자각하는 순간 그 자신은 가장 하잘것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린다. 그래서 그는 좁은 칩거의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고 추상적 미덕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 하지만 그것의 한계 역시 자명하다. 그는 도망자이자 겁쟁이 노예에 불과하다. 다른 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는 결국 이 공간에서도 온전한 자기의식을 확보하지 못한다. 불행한 의식의 주체 앞에 있는 것은 양 극단을 오가며 어디에서도 제 마음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있는 한심한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비천함을 자각하는 바로 그 순간이 불행한 의식의 주체에게는 새로운 고양의 순간이기도 하다. 완전한 자기부정에 도달할 수 있는 의식이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눈이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삶을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불쌍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초월자의 눈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기 비하를 실천하고 있는 그는 이미 신의 눈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불행한 의식은 이처럼 완전한 자기부정에 이르러, 누구나 한번쯤은 도달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 처했다는 점에서 하나의 보편성을 지니고 있지만, 아직 불행한 의식은 이 사실을 자각하고 있지는 못하다. 이것이 자각되는 것은 그다음 단계인 이성에 이르러서라고 헤겔은 덧붙이고 있다.

그러니까 온전한 자기의식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면서 자기도취와 좌절을 왕복하는 사춘기 소년의 마음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들과 세상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자기 자리를 찾고 자기 모습을 확인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시선의 이동과 의식의 전환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으로, 바로 그 순간 자기의식은 불행한 상태를 빠져나와 세상과 다른 사람들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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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 집필자 소개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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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개념정원 | 저자서영채 | cp명문학동네 도서 소개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개념어는 많은데 그 개념의 어원이나 구체적 쓰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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