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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타유는 자연이 누리는 세 가지 사치가 있다고 했다. 먹기와 죽음과 유성생식. 먹는 일이 사치라는 것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고도로 세련된 식탁의 형식과 내용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식재료들을 선별하고 먹을 수 있는 부분을 골라내고 다양한 형태의 열과 양념으로 조미해내는 과정을 상상해보자. 생명의 유지를 위한 양분의 섭취라는 점에서 보자면 전혀 불필요한 부분들이며 어찌 보면 해롭기까지 한 것이기도 하다. 백미보다는 현미가, 사과도 껍질째 먹는 쪽이 건강에 좋다는 것은 상식이다.
먹기가 생명 유지를 위해 에너지를 흡수하는 일이라면, 조리된 음식을 도구를 사용해 먹는 인간적인 먹기의 절차는 물론이고, 그것을 씹어서 삼키고 소화시키는 짐승 차원의 동작과 절차들도 또한 낭비이자 사치이다. 먹이를 잡아 맛있는 곳만 파먹고 버리는 호랑이보다는, 먹잇감을 통째로 삼켜서 녹여버리는 뱀 쪽이 훨씬 낭비 없는 생명체에 가까울 것이고, 광합성을 통해 태양에너지를 직접 흡수하는 식물들은 이들보다 훨씬 더 유지 비용이 적게 드는 경제적 생명체일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유성생식이 사치라는 것은 당연한 말이다. 단세포 동물처럼 스스로 분열해가며 번식하는 것이 기본이라면, 암수로 나뉜 상태에서 온갖 매개와 절차를 거쳐 쉽지 않게 대상을 선택하고 번식에 이르게 되는 사람이나 호랑이의 경우는 물론이고, 잠자리나 장미의 경우도 사치나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죽음이 어떻게 사치라는 것인가. 기계의 시선으로 보자. 이를테면 인간이나 호랑이나 거북이 같은 존재들은 얼마나 정교한 기계들인가. 그런 정교한 기계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 자연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사용했는가. 그런 기계가 갑자기 작동을 정지하고 파괴되는 것이 죽음이다. 그러니 정밀한 기계로서의 유기체가 소멸되는 것으로서의 죽음이란, 부속만 갈면 더 쓸 수 있는 자동차나 노트북을 폐기하는 것에 비할 수 없는 굉장한 사치이자 낭비가 아닐 수 없겠다.
바타유가 이런 식의 개념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들은 결국 태양이 행한 사치와 낭비의 산물이라는 것, 생명체들의 역사도 어떤 정교한 의도나 목적의 산물이기보다는 자연 속에 존재하는 에너지의 어떤 광적인 분출의 결과라는 것, 그래서 인간이라는 것도 그 존재 자체가 어떤 거대한 힘의 낭비와 잉여의 자식이라는 것,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니 하면서 잘난 척하는 논리는 이런 자리에 끼어들 여지가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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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먹기・죽음・유성생식 – 인문학 개념정원, 서영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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