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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와 환유의 개념쌍은 고전적이지 않다. 전통적으로 은유는 직유와 대조적인 한 쌍으로 취급되었고, 환유는 제유와 짝을 이루곤 했다. 그런데 ‘언어학적 전회’ 이후로는 은유와 환유가 개념쌍이 되어 새로운 용법으로 쓰이고 있다. 이 둘은 단순히 수사학의 여러 단위 중의 하나가 아니라 언어의 본질적인 속성을 반영하고 있는 핵심적인 맞짝 개념이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용법에 따르면, 은유와 직유는 두 대상(비유 대상과 비유의 매체) 사이의 유사성에 입각해서 작동한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직유는 ‘처럼’이나 ‘같이’를 동반하여 직접적으로 비유하는 것을 뜻하고(내 마음은 호수처럼 잔잔하다), 은유는 간접적인 경우를 말한다(내 마음은 호수다). 한편, 환유와 제유는 부분으로 전체를 대표하는 비유법이다. 부분과 전체의 관계와 결합 양상의 차이에 따라 제유와 환유가 구분된다. 예를 들어, 사각모로 대학생을 비유할 때는 환유이고(그가 드디어 사각모를 썼다), 소주로 술을 대신할 때는 제유다(어제 소주 한잔 하셨나요). 환유는 하나로 이어져 있는 전체와 부분의 관계에서 발생하고(사각모는 대학생의 일부이다), 제유는 집합과 거기에 속하는 낱낱의 원소의 관계에서 생겨난다(소주는 술이라는 집합의 원소이다).
최근에 자주 쓰이는 은유/환유의 개념쌍은 이와 같은 고전적 쓰임과는 조금 다르다. 은유는 구심력을 지닌 중심화된 사유, 체계 지향적인 힘을 일컫고, 환유는 그와 반대로 원심력을 지닌 탈중심화된 사유, 탈체계적인 힘을 지칭한다. 이런 용법은 소쉬르와 야콥슨(R. Jakobson, 1896~1982) 같은 언어학자들의 언어의 근본적 원리에 대한 통찰에 기반하고 있다.
야콥슨에 의하면, 우리가 쓰는 말은 선택(selection)과 결합(combination)이라는 두 축에 의해 만들어진다. 우리에게 내장되어 있는 어휘 사전에서 단어를 끄집어내는 것이 선택 기능이고, 선택된 단어를 배열하는 것이 결합 기능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을 한다는 것은 머릿속에서 단어를 고르고 조리에 맞게 그 단어들을 늘어놓는 무의식적인 과정인 셈이다.
야콥슨의 이런 설명은 언어에 대한 소쉬르의 통찰에 기반하고 있거니와, 야콥슨은 이런 원리를, 실어증이 지니고 있는 두 유형을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했다. 다양한 양태의 실어증은 크게 두 가지의 유형적인 극단성을 보여준다. 하나는 단어들을 이어서 나열하기는 하지만 정작 정확한 단어를 짚어내지 못하는 증상으로, 이를테면 책상이라는 단어를 지칭하지 못한 채 의자나 연필 같은 그 주변의 단어를 맴도는 것과 같은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단어를 정확하게 짚어내기는 하지만 그 단어들을 문맥과 어순에 맞게 배열하지 못하는 증상으로, 어순이 뒤틀려 문장이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이다.
전자는 언어의 선택 기능에 장애가 생긴 것으로서 유사성 장애(similarity disorder)라 불렸고, 후자는 언어의 결합 기능에 이상이 생긴 것으로서 인접성 장애(contiguity disorder)라 지칭되었다. 유사성 장애는 자기 뜻을 나타내는 단어를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해 뜻과 말 사이에서 형성되어야 할 유사성의 관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고, 인접성 장애는 선택된 단어들이 규칙에 따라 배열되지 않아서 단어와 단어가 지녀야 할 인접성의 사슬 관계에 이상이 초래된 경우이다.
은유와 환유는 언어가 지닌 이와 같은 두 축의 특성과 직결되어 있다. 은유(이때 은유는 직유를 포함한다)는 선택 기능과 유사성의 원리(이는 뜻과 말 사이에 유사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유사성의 궁극적인 형태는 동일성이다)를 축으로 하여 작동되고, 환유(이때 환유는 제유를 포함한다)는 결합 기능과 인접성의 원리(이는 인접한 단어들이 규칙에 맞게 배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를 축으로 이루어진다. 유사성을 동력으로 하는 은유적인 힘은 의미의 중심을 향해 나아간다. 여기에서는 어떤 단어가 의미의 핵심을 포착해내는지가 문제가 된다.
환유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라 끝없는 연쇄를 만들며 이어진다. 여기에서 의미는 징검다리를 건너듯 단어에서 단어로 이어진다. 예를 들자면,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하는 방식으로. 그래서 마침내는 원숭이가 그와는 아무 상관없는 백두산이나 태극기로까지 이어진다. 이것이 흔히 사슬로 비유되는 환유의 원리다.
사물의 핵심을 지향하는 서정시에서는 은유적 표현이, 디테일의 풍부함을 추구하는 산문 예술에서는 환유적 표현이 지배적이다. 낭만주의와 상징주의에서는 은유가 압도적이고, 사실주의에서는 환유가 주도적이다. 초현실주의 미술은 은유적 태도가 우세하고, 피카소의 입체파는 명백한 환유 지향성을 지니고 있다. 은유는 하나의 대상을 향해 집중하는 힘이고 환유는 자유롭게 유동하는 충동이다. 시에서는 대상이나 정서를 정확하고 간결하게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다. 얼마나 깊은 핵심에 도달하는지가 여기에서는 관건이다. 이와 반대로 소설에서는 대상의 특성을 풍부하게 잡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단도직입적으로 결론에 도달해버리면 이야기도 끝나버린다. ‘서사적 우회’라는 말이 있듯이 이야기 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결말이 아니라 그 결말에 이르는 길이 단락에서 단락으로 이어지며 풍부하게 만들어지는 흐름이다.
이런 식의 대조는 사고 일반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 은유는 중심을 향해 박두해들어가는 것이고, 반대로 환유는 정해진 중심이나 지향점 없이 자유롭게 유동하는 상상력의 형식이 된다. 해체주의나 탈구조주의는 이념적 양극성이 사라지면서 등장한 사유 형태이다. 여기에는 정해진 중심이 있기 어렵고, 이런 세계에서는 환유적 상상력이 좀더 우세한 사유의 형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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