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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문학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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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스・죽음 충동

몸과 마음의 경계에서 발생하는 삶의 에너지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를 바라보는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두 개의 핵심어는 굶주림과 사랑이다. 이 두 개의 요소가 인간의 정신활동을 추동해내는 두 개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프로이트의 책 전체에 두루 펼쳐져 있다. 신경증을 성 충동과 자기보존 충동 사이의 긴장이 만들어낸 것으로 보았던 것이 대표적인 예이며, 에로스와 죽음 충동이라는 두 요소의 상호작용으로 인간의 정신활동을 설명하고자 했던 만년의 프로이트의 생각도 그 연장에 있다.

충동이라는 말은 독일어 Trieb의 번역어이다. 표준판 영어 전집 번역자는 이것을 instinct로 옮겼고,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초기에는 본능이라는 단어가 그 번역어로 쓰였다. 하지만 Trieb는 인간의 마음이 지니고 있는 힘으로서 동물적 차원의 Instinkt와는 구분되어야 한다고 했던 라캉의 지적 이후 영어 drive가 instinct를 대신하여 Trieb의 번역어가 되었고, 한국에서도 본능 대신 충동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기 시작했으며, 욕동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다.

충동의 개념은 프로이트 자신이 말한 바 있듯이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그는 충동을 일컬어 몸과 마음의 경계에 놓여 있는 것, 몸이 지니고 있는 힘이 마음으로 표현된 것이라는 식으로 언급했다. 완전히 육체에만 속한 것도 아니고, 또한 완전히 마음에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다양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근원적 힘으로서의 충동이란, 실핏줄이나 내장처럼 해부학적으로 확인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실체가 이것이라고 단도직입적으로 가르쳐줄 누군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다양한 심리적 현상들을 바탕으로 추론을 통해 가설적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는 것, 그것이 곧 인간의 마음을 만들어내는 근원적 힘으로서의 충동인 것이다.

프로이트의 충동의 개념은 당초부터 인간의 성욕과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었다. 충동이 단순한 자극과 다른 것은, 그 자극의 원천이 몸과 마음의 내부에 있다는 점 때문이다. 성욕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에게 인간의 성욕이란 온전히 신체적인 것도 심리적인 것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어떤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리비도적 힘의 반대편에는 이 힘을 통제하는 또다른 힘이 있어, 프로이트는 이를 자기보존 충동 혹은 자아 충동이라고 불렀다. 이 두 힘의 대립은, 프로이트의 다른 용어로 말하자면 쾌락원칙과 현실원칙의 대립으로도 표상될 수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맹목적인 힘과, 그 충족의 현실성을 고려하여 그 힘을 통제하는, 그와는 반대되는 힘의 대립인 것이다.

성 충동과 자아 충동의 이원론은 프로이트의 이론이 전개됨에 따라 약간의 변화를 거쳐, 1920년의 논문 「쾌락원칙을 넘어서(Beyond the Pleasure Principle)」에서는 에로스와 죽음 충동이라는 이원론으로 확립된다. 여기에서 에로스란 프로이트가 삶 충동과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말로서, 이전의 성 충동이 지니고 있던 리비도적 의미의 외연이 좀더 확장되어, 삶의 연장(목숨을 늘리는 일)을 위해 사용되는 힘 일반을 뜻하게 된다. 죽음 충동은 비(非)리비도적인 힘으로서, 삶 충동과는 반대로 생명의 연장과 확대에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힘을 지칭한다.

삶 충동으로서의 에로스를 이해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살고자 하는 힘, 생명을 연장하고 자기 영역을 확장하는 일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체로부터 자기를 끊어내고 스스로를 위축시키려 하는 힘으로서의 죽음 충동을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프로이트는 인간을 움직이는 근본적인 힘으로서의 충동이 기본적으로 보수적인 것임을 지적한다. 이는 그가 쾌락원칙을 설명하는 방식과도 유사하다. 유기체가 느끼는 쾌락은 불필요한 긴장과 흥분(예를 들면 방광에 오줌이 가득차 있는 상태)이 없는 상태이고, 그 상태를 회복하고자 하는 것, 곧 애초의 평형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이 모든 유기체의 운동 방향이라는 것이다.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을 두고 보수적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향성의 끝은 어디인가. 유기체 내부에 어떤 긴장과 흥분이 없는 상태라면 그것은 곧 죽음의 상태가 아닌가. 프로이트의 생각 속에서 이런 논리는 모든 유기체가 무기물에서부터 진화해왔다는 진화론적인 가설과 결합되어 좀더 큰 힘을 얻었다. 모든 유기체가 무기물의 결합으로부터 생겨나서 결국 유기체의 해체인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라면, 곧 모든 유기체의 목표가 궁극적으로는 죽음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그 죽음을 향해 가는 유기체 내부의 힘을 무엇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프로이트의 대답이 곧 죽음 충동이다.

프로이트가 삶 충동을 에로스로 불렀던 것과 짝을 맞추어, 마르쿠제는 죽음 충동을 죽음의 신 이름을 따서 타나토스라 불렀고, 이후 이 둘은 에로스와 타나토스로 불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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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채 집필자 소개

1961년 목포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문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문학과 이론을 가르치고, 계간 『문학동네』 편집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소설의 운..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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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개념정원
인문학 개념정원 | 저자서영채 | cp명문학동네 도서 소개

모르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고 아는 사람에게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그게 바로 인문학이다. 한번쯤 들어보거나 읽어본 개념어는 많은데 그 개념의 어원이나 구체적 쓰임..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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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20. 극작가 플라톤의 희미한 유머 극작가 플라톤 플라톤의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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