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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카치는 소설의 본질을 파악함에 있어 내적 형식이라는 말을 썼다. 보통 형식이라는 말은 내용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마치 음식을 담는 그릇 정도로 취급되곤 한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쳐 다져진 틀로서의 형식은 그 자체가 내용이라 할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시조와 같은 정형시의 형태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듯이, 하나의 형식에는 그것을 만들어낸 시대의 정신이 압축되고 요약된 모습으로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형식은 수정처럼 단단하게 다져진 내용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이런 의미의 형식이라 할 만한 것을 찾기가 어렵다.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근대에 들어 형성된 것이면서 또한 다양한 산문 장르들을 포괄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정해진 형식이 없을뿐더러 현재에도 여전히 변화하고 있는 살아 있는 장르이다. 소설의 형식은 사람의 삶에 관한 이야기라는 뜻에서 전기(傳記) 정도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루카치는 소설의 본질에 대해 언급하면서 내적 형식이라는 말을 썼다.
루카치는 소설의 내적 형식에 대해, “문제적 개인이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여행”이라고 했다. 여기에서 문제적 개인이란 자기의 영혼과 세계의 질서 사이에서 부조화를 발견하고 그로 인해 갈등하는 주인공을 뜻한다. 문제적 개인과 쌍을 이루는 개념이 우연적 세계이다. 우연적 세계란 필연적 세계, 곧 신의 뜻에 의해 충만해 있는 세계와 반대되는 것으로서, 한 개인에게는 무의미하고 불합리하여 극복해야만 할 대상으로 나타나는 세계가 곧 우연적 세계인 것이다. 자기 자신이 그런 세계 한복판에 내던져져 있음을 발견하는 순간 그 사람은 문제적 개인이 된다. 자신의 현실과 당위적 이상 사이에 가로놓여 있는 간극 속에서 자기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고자 하는 사람,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자 하는 사람이 곧 문제적 개인이다.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몰라서 어쩔 줄 몰라할 때, 그는 문제적 인물이다. 루카치는 소설의 형식에 대해 언급하면서 “길이 시작되자 여행이 끝났다”라는 표현을 썼다. 이는 곧 그 여행이 길을 찾기 위한 것이었음을 뜻하는 것으로, 소설이 아직도 변화중인 살아 있는 장르임을 지칭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말은 또한 문제적 개인이 우연적 세계 속에서 자기 인식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 곧 소설의 내적 형식을 지칭하는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헤겔은 근대적 서사 양식으로서의 소설을 일컬어 “부르주아 시대의 서사시”라는 표현을 썼다. 이를 변용하여 루카치는 소설을 “신에게 버림받은 세계의 서사시”라고 불렀다. 소설은 장편 서사의 양식이라는 점에서 서사시의 후예이지만, 그리스 서사시가 지니고 있던 총체성과 완결성을 더이상 지니지 못하고 있는 세계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서사시와 구분된다. 우연적 세계와 문제적 개인은 소설의 그런 속성을 지칭하는 개념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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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문제적 개인과 우연적 세계 – 인문학 개념정원, 서영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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