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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
언어의 질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개념정원의 첫머리를 언어의 문제로 시작한다. 언어가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지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물론 새삼스러운 일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제는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으로, 언어가 어째서 어떻게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인문학과 이론의 영역에서 언어가 매우 확실하게 중요한 대상으로 부각된 것은 20세기 중엽의 일이다. 1967년 로티(Richard M. Rorty, 1931~2007)가 편집한 책 제목이기도 한 ‘언어학적 전회(the linguistic turn)’라는 말은 그런 사정을 상징적으로 지칭하고 있다. 로티가 이 말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영미권의 철학적 관심이 언어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는 현상이지만, 이것은 단지 영미권의 철학이나 분석철학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프랑스와 독일에서도 언어의 문제는 20세기 이론적 흐름의 한복판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영국에 러셀과 비트겐슈타인으로 대표되는 생각의 집이 있다면, 프랑스에는 소쉬르의 저서 『일반언어학 강의』로 인해 촉발되어 푸코와 데리다 등의 탈구조주의로 귀결되는 거대한 지적 흐름이 있고, 또한 독일에는 가다머의 해석학에서 하버마스의 『의사소통행위이론』으로 이어지는 언어와 사회에 대한 성찰이 있다. 이들은 서로 교차하고 영향과 비판을 주고받으며 20세기 인문학 이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또 한편, 언어에 관한 관심이 압도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부각된 것은 무엇보다도 프로이트에서 라캉으로 이어져온 정신분석학에서였다. 오스트리아에서 독일어를 쓰며 활동했던 프로이트는 스위스에서 프랑스어를 썼던 소쉬르(F. Saussure, 1857~1913)보다 한 살이 많다. 프로이트는 꿈에 대한 분석을 통해, 소쉬르가 일반언어학을 통해 발견해낸 원리들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해놓았다. 물론 상대의 이론을 알지 못한 채로 그렇게 했다(프로이트가 비엔나에서 『꿈의 해석』을 출간했던 것은 1900년이고 소쉬르가 제네바에서 일반언어학에 관한 강의를 시작한 것은 1906년부터이다).
서로를 의식하지 못한 채 형성된 둘 사이의 관계를 발본적으로 통찰하여 새롭게 논리화한 것이 라캉의 공적이었다. 프로이트와 라캉에 의해 이론적 토대가 닦인 정신분석학은 정신의학의 한정된 차원을 넘어 인문학의 여러 분야에서 분석과 성찰의 틀로서, 때로는 명시적이고 때로는 암시적으로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우리 시대에 작동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적 기제들을 비판함과 동시에 고전적 이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로를 보여주고 있는 현재의 지젝의 작업은 이런 흐름의 한 첨단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도 정신분석학과 언어에 대한 성찰이 이론적 핵심을 이루고 있음은 물론이다.
언어에 대한 성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와 같은 이론의 구도는 그 자체로 20세기 지성사의 거대한 성좌를 이룬다. 개념정원의 첫머리를 언어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이런 때문이다. 전통적 수사학의 틀과 언어학적 전회 이후의 언어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교차하고 있는 두 개념, 은유와 환유로터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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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언어의 질서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 – 인문학 개념정원, 서영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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