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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작용이란 의미의 형성이나 의미화, 의미의 만들어짐 등을 뜻하는 말이다. 말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과정을 통해 형성되고 만들어진다는 뜻이 의미작용이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다. 한 단어나 구절의 의미는 문장의 움직임에 따라 부단히 움직이고 있으며, 그런 작동과 작용을 통해 조금씩 변하기도 하고 아예 새롭게 태어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태껏 우리가 써온 말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았다는 것인가. 언어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 도구인데 그 의미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는 그런 언어를 소통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어 문제가 생겨난다. 이를테면 이런 장면을 떠올려보면 어떨까. 여자가 울면서 “다 필요 없어, 가버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남자는 정말 가버렸다. 그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 일들이 대략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벌어질 것이다. 어떻든 이 상황에서 정말로 가버린 남자는 어떤 경우였을까. 언어의 의미작용을 몰랐거나(순진해서), 묵살했거나(여자가 싫어서), 거꾸로 이용한(네가 가라고 해서 간 거니까 난 책임 없다) 경우 등이 있을 수 있겠다.
일반적으로 언어는 생각을 담거나 사물을 가리키기 위해 사용되는 투명한 매체나 도구쯤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거나 ‘혀 밑에 도끼 들었다’는 속담들은 언어가 얼마나 다루기 힘든 도구인지를 상징한다. 또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말하기의 어려움을 실감할 때가 많다. 내 진심은 여기 이렇게 뜨거운데, 그 마음을 전할 사람 앞에만 서면 왜 나의 혀는 내 마음을 배반하고 마는 것일까. 그런 장면이 지나가고 나면 우리는 차라리 침묵이 훨씬 더 나은 언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래서 잠시 고막을 진동시키는 공기의 파동 속에 있다 사라지는 말보다 글이 좀더 믿음직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느 정도는 그렇지만 그러나 글도 그 진심을 해독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는 말 못지않다. 쉼표 하나로 의미가 정반대가 되기도 하는 것이 글이다.
언어는 소리와 뜻이라는 두 가지 요소의 결합으로 만들어진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처럼 보이지만 이치를 따져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만은 아니다. 어떤 단어를 떠올리면 그 단어가 가리키는 대상이 자연스럽게 뒤따라 나온다. 이를테면 ‘나무’라는 소리가 있다. 한국어를 아는 사람들에게 이 ‘나무’라는 소리는 어떤 영상이나 관념을 만들어낸다. 그럴 때, ‘나무’라는 발음은 단어가 지닌 소리의 측면이고 우리에게 떠오른 영상은 뜻의 측면이다. 이 둘이 결합하여 단어(말, 언어)가 만들어진다.
이때 소리의 측면을 일컬어 기표라 하고, 뜻의 측면을 일컬어 기의라 한다. 프랑스어 발음을 따라 그냥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로 부르기도 한다. 여기에서 조심해야 할 것은 기의가 실제 대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표와 기의는 모두 언어(즉, 기호)의 두 가지 측면이다. 이 둘의 결합으로 말이 만들어지고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 둘의 결합체 바깥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의미작용에서 문제가 되는 의미는 언어 바깥에 있는 실제 대상이 아니라 언어의 일부인 기의를 뜻한다. 나무라는 말이 있다고 해보자. 그 말이 가리키는 대상으로서의 실제 나무는 지구상에 무수히 많다. 그런데 기의로서의 나무는, 나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이자 관념을 뜻한다. 그것이 나무의 의미(기의)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누가 어떤 상황에서 쓰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는 나무 같은 사람이다”라는 문장이 있을 때 나무는 어떤 뜻일까. 언제나 변함없고 믿음직한 존재라는 좋은 뜻(상록수, 교목, 거목 등)에서부터 뻣뻣하고 거칠며 유연하지 못하다는 나쁜 뜻(장작개비, 톱도 안 먹는 단단한 목재 등)까지 폭넓은 의미의 스펙트럼이 생긴다.
그 문장을 쓰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또 뒤에 어떤 문장이 뒤따라 나오는지에 따라 그 뜻은 천양지판으로 달라질 수 있다. 또 “나는 물고기를 너무너무 사랑해”라는 문장의 예를 들어보자. 연못 속의 비단잉어들을 바라보며 어린 소녀가 하는 말일 수도, 회를 좋아하는 먹성 좋은 어른이 횟집 수조에 담긴 감성돔을 바라보며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이 두 경우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물고기의 입장에서 보자면 정반대가 된다.
이처럼 말의 의미, 즉 기의는 뒤에 어떤 말이 따라 나오는지에 따라 소급적으로 규정된다. 말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기표들과의 만남과 흐름 속에서 새롭게 규정된다. 위의 예에서, 횟집에 들어가며 물고기를 사랑한다고 말한 사람이 쓴 사랑이라는 말은 당연히 아이러니적 거리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걸로 끝이 아닐 수도 있다.
이를테면 그 뒤에, “내가 사랑하는 것은 물고기의 생살의 맛 같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은 사랑하는 대상의 생살을 씹어 내 몸 안에 저장하는 순간 완성된다는 것을 너희는 아느냐? 사랑하는 존재의 생살을 씹을 때의 고통과 또한 그 쾌감을 너희는 아느냐?”라는 문장이 이어지면 어떨까. 이 경우 사랑이라는 말은 두번째의 의미로부터도 분리되어 또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처음의 단순한 사랑에서, 회를 좋아하는 남자의 아이러니적 사랑으로, 그리고 다시 엽기적이고 기이해서 오히려 진짜 같은 사랑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물론 아직도 끝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문장을 그 뒤에 이어붙이는지에 따라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또 변할 수 있다.
이처럼 문장이 이어지면 앞에 나왔던 말들은 들썩거리며 새로운 의미로 변해간다. 문장의 진행 방향과 반대로, 즉 소급적으로, 기의의 화살들이 기표를 향해 날아간다. 그것이 우리가 쓰고 있는 말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과정이다.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자, 이제 일어설까?”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나중에야 분명해진다. 집에 가자는 것인지, 하던 말을 그만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장소를 옮겨 제대로 그 이야기를 해보자는 것인지 등등. 기표는 불변의 것으로 남아 있지만(나무라는 발음은 언제나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것의 의미인 기의는 기표들의 흐름 속에서 거듭거듭 변해간다.
어떤 말의 의미는 시간이 오래 흐른 뒤에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해 뼈아픈 탄식을 하기도 한다. 의미작용이라는 말은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이와 같은 속성을 함축하고 있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언어학자 소쉬르의 틀을 토대로 언어의 의미작용이 보여주는 이런 모습을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언어는 사물을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또다른 의미작용을 만들어낼 뿐이라는 것이다. 그는 그것을 기의가 기표 밑으로 끝없이 미끄러져 들어간다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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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의미작용・기표와 기의 – 인문학 개념정원, 서영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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