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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틀래치는 북서부 아메리카 해안에 사는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특이한 풍속을 지칭하는 말이다. 그들 중 한 부족인 치누크족의 어법에 따르면 포틀래치는 본디 ‘식사를 제공하다’ 또는 ‘소비하다’를 뜻한다.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큰 잔치’ 정도에 해당되겠다.
포틀래치의 풍속은 북부 아메리카의 서해안에서부터 동부 시베리아에 이르는 여러 부족들에게서 포괄적으로 발견되는데, 특별한 행사나 제사가 있을 때 그 모임에 참석하는 집단의 우두머리들이 그동안 축적해온 부와 재산을 매우 폭력적이고 경쟁적인 방식으로 탕진하거나 파괴해버리곤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값비싼 모포를 수백 장 쌓아놓고 불을 질러버린다든지, 그 사회에서는 신성한 화폐 구실을 하는 구리판을 조각내서 바다에 버린다든지 하는 등의 행위이다.
자본주의적 경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매우 우스꽝스럽고 일견 기이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장면을 상상해보면 어떨까. 결혼식을 하는 날 예식장 주차장에 손님들을 모아놓고 수북이 쌓인 오만원짜리 지폐 더미에 불을 놓아 캠프파이어를 한다. 돈 한 푼에 죽고 사는 세상인데, 진짜 돈 오만원짜리로 이런 장면을 연출한다면 이 얼마나 굉장한 일인가.
그런데 우리는 과연 저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비웃을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우리가 우리 삶에서 행하고 있는 과시형 소비들은 어떤가. 값비싼 책으로 가득 차 있는 어떤 집의 벽면은 값으로 치면 십만원짜리 수표로 도배한 것이나 마찬가지고, 명화로 장식된 벽면이라면 천만원짜리 수표로 도배한 셈일 것이다. 물론 그 책이 수시로 꺼내 보는 책이라거나, 놀라운 색채의 향연으로 그 앞에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이라면 또다른 문제일 것이다.
이런 특별한 경우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먹고 입고 자는 데 일상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이나 혹은 우리가 끌고 다니는 승용차나 우리를 태우고 다니는 버스, 지하철, 기차, 비행기 등을 만들고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아메리카 선주민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또한 포틀래치가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비행기를 타고 있는 우리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이것은 당신들의 포틀래치와는 경우가 다르다고, 우리의 편리와 행복을 위해 지출하는 것은 근거와 이유가 있는 비용이라고. 이에 대해, 수백 장의 모포를 쌓아놓고 그 옆에서 횃불을 들고 있는 추장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불붙은 모포를 보면 나도 행복하다.
포틀래치에서 중요한 것은 경쟁과 답례의 원리이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파괴함으로써 그 대가로서 얻게 되는 것은 위신이다. 그럼으로써 그는 손님 접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또 그런 도리를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포틀래치는 자기의 경쟁자를 압도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포틀래치로 대접을 받은 경쟁자는 이제 답례를 해야 한다. 방법은 두 가지이다. 상대를 능가하는 답례를 함으로써 포틀래치의 경쟁 대열에 합류하거나 상대의 위력 아래 무릎을 꿇는 것.
자기에게 소중한 것을 파괴함으로써 공격적인 위신을 얻는 것, 이것은 일종의 자해 공갈이다. 그래서 이것은 아메리카 선주민에게 국한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한 사람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아메리카 선주민들은 재물을 파괴했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신체나 목숨 같은 것이 더 값진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자기 생명을 파괴하는 일은 어떨까. 우리 앞에 존재하는 가장 위대한 포틀래치의 추장은 예수나 소크라테스 같은 이들이 아닐까. 그들은 모두 피할 수 있는 죽음을 피하지 않았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발언권을 얻었다.
그래서 그들의 말은 예사롭게 들을 수가 없다. 그들과 맞서고자 한다면 우리 또한 그들을 능가하는 포틀래치를 해야 한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포틀래치를 통해 남다른 위신을 가진 존재, 숭고하고 성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물론 손익의 합리성을 따지는 경제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들의 존재는 기이하거나 우스꽝스러운 것이기도 하겠다. 숭고한 대상은 언제나 이런 기괴함과 우스꽝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포틀래치 자체가 지니고 있는 속성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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