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라캉의 욕망은 그와 유사한 개념들인 욕구나 요구 등과 함께 놓임으로써 좀더 분명하게 개념화될 수 있다. 흔히 사람의 욕심에는 끝이 없다고 한다. 말 타면 견마(牽馬) 잡히고 싶다는 속담처럼, 하나를 얻으면 또다른 하나를 바라는 것이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욕심의 구조다. 이를 논리적으로 개념화한 것이 라캉의 욕망의 개념이다. 그는 욕망을 요구와 욕구의 차이, 요구에서 욕구를 뺀 나머지로 규정했다.
욕구란 사람의 몸이 지니고 있는 원함과 상응하는 것이다. 방광이 차면 배설하고 싶고, 위장이 비면 먹고 싶어지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몸이 원하는 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마음은 그것에 필요한 기억 영상들을 만들어낸다. 배설을 위한 사적인 공간이나 맛있는 음식 같은 것들. 그것이 프로이트의 용어로 말하자면 소망 충족이다. 그리고 그런 영상을 떠올린 주체는 욕구의 현실적 충족을 위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이 경우 요구는 언어를 통해 번역된 욕구이다. 그런데, 주린 배를 채우고 난 다음에도 남는 그 무언가가 있어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학교에서 돌아와 배가 고파진 딸이 있다. 엄마에게 배고프다고 하자, 엄마는 지금 바쁘니 너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 먹으라고 하며 나가버렸다. 썰렁해진 집 안에서 딸은 라면을 끓여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뜨거운 김 때문에 켁켁 기침을 하면서. 그런데 그릇이 바닥나고 남은 국물을 먹기 시작할 때쯤 딸의 마음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공허감이 엄습하여 괜히 눈물이라도 날 것 같은 마음이었다. 무엇 때문인가. 좋아하는 라면도 먹었고 이제는 배도 불러 느긋하고 편안한데 무엇이 불만이란 말인가. 아마도 딸이 원했던 것은 라면이나 밥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라면 속에 있는 라면 이상의 그 무엇, 밥상 옆에 앉아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물어주고 이것저것 자분자분 챙겨주는 엄마의 배려나 사랑의 표현 같은 것을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라캉은 모든 요구는 근본적으로 사랑에 대한 요구라고 한다. 요구는 순수한 욕구 충족 이상을 원하는 것이고, 따라서 먹을 것을 달라는 딸의 요구는 당신의 사랑과 배려와 관심을 달라는 요구였던 셈이다. 배를 채우고 난 다음에도 남는 정신적인 공복감은 라면을 하나 더 끓여 먹는다 해도, 디저트로 케이크와 초콜릿을 아귀아귀 먹어치운다 해도, 채워지지 않는다. 이처럼 욕구와 요구 사이의 차이로 존재하는 나머지, 그 공허감을 라캉은 욕망이라고 부른다.
욕망은 사람의 마음속에서 채워질 수 없는 근본적 결여를 강조하는 개념이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커피 한잔 할 수 있겠느냐고 예의 바르게 청했다. 커피가 마시고 싶다면 저기 자판기가 있다고, 여자가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를 건넨다면 남자의 반응은 어떨까. 그렇다면 커피 마시자는 남자, 당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가.
커피가 아니라 같이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라고? 그래서? 좀더 서로를 잘 알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그래서 그다음은? 사귀어보자는 것인가? 그래서? 연애하고 결혼하자고? 그다음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은, 상대방과 몸과 마음으로 완전하게 하나가 되는 순간을 원하고 그 바람이 상대방과 같이 있음으로써 충족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일 뿐이다. 상대와 같이 잔다고 해도, 상대방의 몸을 갈아서 마셔버린다 해도 결코 하나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이 라캉이 강조하는 욕망의 회로이다.
라캉은 욕망이 환유와 같다고 했다. 욕망은 마치 환유처럼(1장 참고), 사슬처럼 이어지는 대상의 흐름을 타고 끝없이 나아갈 뿐이다. 장난감을 받고서 기뻐하다 금방 싫증을 내고 다른 것을 원하는, 그렇게 끝없이 다른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어른의 눈으로 보면 괴물같이 변덕스러운 어린아이야말로 욕망의 적실한 표상이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서양철학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