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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의미에서 사디즘과 마조히즘은 도착증의 하나이다. 이 경우 도착증이란 라캉주의의 진단 방식이 분류해놓은 정신 질환의 세 가지 주요 범주 중 하나이다. 신경증, 도착증, 정신병. 이 셋은 상징적 질서에 대해 주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구분된다.
상징적 질서 자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정신병이고, 이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비롯되는 것이 신경증이다. 그리고 도착증은 그 중간에 존재한다. 상징적 질서를 받아들였지만 그것과의 맞대면을 회피하는 경우이다. 여기에서 상징적 질서란 한 사회의 기초를 이루는 언어적 질서를 뜻한다. 그러므로 신경증자는 정상적 소통이 가능한 사람이고 정신병자는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령 환각이나 환청이 있을 경우, 신경증자는 헛것이 보인다거나 헛소리가 들린다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것들은 어디까지나 헛것이나 헛소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헛것들과 만나게 되는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전문가를 찾아 도움을 구한다. 그러나 정신병자는 헛것이 헛것이 아니라 진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나아가 그것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상징적 질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그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은 도착증자는 그런 문제 자체가 회피의 대상이다.
이 세 범주의 정신적 기제를, 라캉은 프로이트의 용어를 원용하여 각각 억압(repression, 신경증), 부인(disavowal, 도착증), 폐제(foreclosure, 정신병)라 했다. 정신분석적 의미에서 도착증이란 이른바 정상적이라 간주되는 성적 규범에서 일탈한 행위를 비난조로 지칭하는 용어가 아니라, 다른 두 범주와 구분되는 것으로서의 임상적 범주를 뜻한다. 폐제는 이미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질서의 핵심적인 부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종국적으로 그 질서 자체를 거부하게 되는 행위를 뜻한다.
이와는 반대로 억압은 현실의 질서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그 질서의 일부로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생겨나는 기제이다. 외부의 질서를 받아들여 내면화하는 일이란 주체를 재단하거나 그 안으로 우겨넣는 것, 그 자신의 내밀한 것들을 그 밑에 누르고 감추는 일에 해당된다. 억압은 그런 행위를 지칭한다.
이에 비해 부인이란, 아예 배제해버린다는 뜻의 폐제나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의 부정이 아니며, 그 존재를 인정하지만 정면으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 상징적 질서를 받아들이면서도 그것을 자기의 것으로 구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질서를 받아들이는 일이란 곧 금지를 받아들이는 일이며 거기에는 고통이 수반된다. 신경증은 그 고통의 결과이다. 물론 정신병자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고통도 모른다. 도착증은 그런 고통에 대한 일종의 회피 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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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신경증・도착증・정신병 – 인문학 개념정원, 서영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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