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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변증법은 헤겔의 변증법이 지니고 있던 현실 추수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변증법 자체가 지닌 역동성의 계기를 살려내기 위해 아도르노가 제시한 개념이자, 1966년에 간행된 그의 저서 제목이기도 하다. 헤겔의 변증법이 운동의 동력을 얻는 것은 현존하는 대상에 대한 부정을 통해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이 부정에 대한 또 한번의 부정을 통해 새로운 긍정의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것이 아도르노가 문제시한 헤겔의 정반합의 논리이다. 부정변증법이라는 개념으로 아도르노가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이처럼 결과적으로 긍정에 도달하게 되는 변증법의 모습이다. 그런데 왜 그것이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
헤겔의 변증법은 수많은 부정의 거듭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부정에 대한 부정을 통해 궁극적인 긍정으로 귀결된다. 이 긍정이 최초의 긍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이 긍정은 주체와 대상 사이, 그리고 정신과 현실 사이의 조화와 화해로 표현된다.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다”라는 헤겔의 명제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여기에는 입헌군주제를 인륜성의 완성으로 간주하며 프로이센 왕국의 국가 철학자 격이 되었던 만년의 헤겔의 모습이 투영되어 있다. 헤겔이 입각해 있는 현상학적 사유에 의하면, 현실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그 나름의 근거와 이유가 있으며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의 화해의 결과이다.
그것은 실정성(實定性, positivity)각주1) 이라는 말로 표현되는데, 아도르노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것이 문제이다. 실정적인 존재들, 예를 들어 여러 형태의 국가나 가족 같은 현실 속의 다양한 제도들은 물론 그것이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에 대한 전폭적인 인정에 도달하면 변증법적 사유는 자신의 비판적 잠재력을 상실해버리는 까닭이다. 더욱이 변증법적 사유가 실정성(곧 긍정성)에 대한 추인으로 귀결되면 그것은, 아도르노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일성 사유, 즉 자신과 동일한 것은 보존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제하는 닫힌 체계의 사유 형태로 귀결되어버린다. 사유가 자신의 체계를 완결된 것으로 간주한 채 더이상 자기 자신에 대해 반성하지 않게 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다.
아도르노가 부정변증법의 이름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이처럼 닫힌 사유의 체계이다. 그는 부정의 부정은 극단적인 경우에도 긍정성(positivity, 이 경우 긍정성은 실정성과 같은 뜻이다)이 아니라는 말로 이러한 생각을 표현했다. 이를테면 지젝에 의해 자주 인용되는, 소련에서 이민을 떠나고자 했던 한 유대인에 관한 농담이 있다. 소련의 이민국 관리가 그 유대인에게 왜 나가려 하느냐고 묻자, 공산당이 흔들려 사회 불안이 조성되면 유대인들이 그 죄를 뒤집어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관리가 말하자, 유대인은 바로 그것이 떠나고자 하는 두번째 이유라고 답했다. 여기에서 부정의 부정은 긍정이 아니라 좀더 격렬한 또다른 형태의 부정으로 연결될 뿐이다. 부정을 거듭할수록 그곳을 떠나겠다는 의지는 더욱 강렬해지는 것이다.
부정변증법은 화해된 상태로서의 실정성에 대한 거부이며, 스스로의 자명성을 주장하는 완결적이고 폐쇄적인 사유에 대해 거듭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요소를 투여해 넣음으로써 새로운 역동성을 산출해내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래서 부정성으로서의 변증법은 칸트의 경우처럼 방법론적인 것도 아니고 헤겔의 경우처럼 실체적인 것도 아닌, 사유와 이념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진리는 어떤 순정하고 순수한 것으로 고정되는 순간 더이상 진리일 수 없으며, 자기의 대립자를 품은 채로 또다른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순간에만 진리라는 이름에 값할 수 있다는 생각, 자기반성이 없는 사유는 그 어떤 것이라도 결코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생각 등이 부정변증법이라는 개념 속에 표현되어 있다. 물론 이런 생각의 토대와 단초들은 헤겔의 논리 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해두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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