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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작용을 통해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은 기표와 기의가 결합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그것은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것이다. 문장이 진행되면서 기표는 새로운 기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그처럼 기표와 기의가 고정되지 않으면 의미의 생성이 불가능하고 언어를 통한 소통도 불가능하다. 기의란 말의 뜻이지만, 말을 사용하는 주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것은 어떤 특정한 기표를 뽑아든 주체의 의도이기도 하다. 기의란 주체가 어떤 특정한 기표를 뽑아드는 그 순간 자기 자신에게 비로소 의식되는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주체 속에서 특정한 기표와 기의가 결합되는 이런 순간을, 라캉은 공간적 표현을 써서 고정점(혹은 누빔점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이라 부른다.
기표와 기의를 결합시킴으로써 의미작용을 가능케 하는 고정점은 동시에 무의식이 생겨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기표와 기의의 결합은 그것이 제대로 된 것이라는 순간적인 착각 속에서 이루어진다. 주체가 어떤 기표를 선택한다는 것은 자기가 속해 있는 언어 체계에 의해 자기 생각이 번역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의식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몸에서 어떤 흐름이 생겨났는데 마음은 그것을 ‘배가 고프다’는 말로 번역했다. 즉 기표를 만나 번역이 되는 순간 그것은 의식이 된다.
하지만 그런 기표들이 주체의 원초적 의도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 주체의 의도가 기표의 질서에 의해 완전하게 의미화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문제이다. 합당한 기표를 만나지 못한 원초적 의도들이 무의식의 재료가 된다. 배가 고파서 뭔가를 먹었고 그래서 배는 부른데도 여전히 속이 헛헛하고 공허감이 느껴진다면 그것이 곧 충족되지 않은 의도로서의 무의식에 해당될 것이다.
한 사람의 몸과 마음의 움직임을 의식은 배고픔이라는 언어를 통해 번역했지만, 그 언어에 포획되지 않은 무언가가 남겨진 것이다. 곧, 의식의 언어가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 무의식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은 언어가 있는 곳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무의식이란 자신의 기표를 찾아 헤매는 길 잃은 기의들, 통로를 찾지 못한 원초적 의도들에 의해 생겨난다고 해도 좋겠다.
라캉은 무의식에 관한 프로이트의 작업에서 가장 현저하고 중요한 것이 언어의 문제, 특히 다양하게 겹쳐지고 바뀌는 어휘들의 문제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는 프로이트의 모든 발견이 문자의 발견에 의존하고 있다고 했는데, 여기에서 문자란 기표를 뜻한다.
무의식과 언어의 관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꿈의 해석』에서 프로이트가 언급했던 꿈-작업이라는 기제의 경우이다. 꿈을 꾼 사람이 자기 꿈 이야기를 할 때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꿈-내용(dream-content,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는 뜻에서 외현몽이라 부르기도 한다)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자기가 꾼 꿈을 떠올리거나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때 조금씩 달라지고, 깊이 생각해보면 새로운 내용이 가물가물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우리는 꿈-내용의 바탕에는 다양한 꿈-내용을 만들어주는 몸체로서 어떤 잠재적인 것이 놓여 있음을 알게 된다.
프로이트는 이러한 꿈의 몸체를 꿈-사고(dream-thought, 잘 드러나지 않은 채 밑에 놓여 있다는 뜻에서 잠재몽이라 부르기도 한다)라 불렀다. 그러니까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크게 외현적인 꿈-내용과 잠재적인 꿈-사고로 구별되는데 여기에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이 있다.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꿈-사고(잠재몽)는 무의식이고 외현적인 꿈-내용은 의식이라는 식으로 구분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무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꿈을 만드는 마음의 활동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꿈-사고를 만들어내는 일과 그것을 꿈-내용으로 변환하는 일이다. 꿈을 만드는 힘으로서의 무의식은 이 두 활동 속에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잠재적인 것으로서의 꿈-사고는 꿈-내용을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핵심적인 것은 꿈-사고를 꿈-내용으로 변환시키는 꿈 고유의 작업이다. 프로이트는 바로 그 기능, 잠재적인 것과 외현적인 것 사이에서 꿈을 만들어내는 핵심적인 힘을 꿈-작업이라 불렀다. 무의식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면 바로 꿈-작업을 하는 손의 주인공을 가리켜야 할 것이다.
프로이트는 꿈-작업의 구체적인 기제로서 네 가지 주요한 요소를 들었다. 압축, 치환, 재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 이차 수정 등이다.
1) 압축(응축으로 번역되기도 한다)은 잠재적 꿈-사고가 외현적 꿈-내용으로 전환되는 데 가장 기본적으로 기능하는 기제이다. 꿈속에서 압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은 꿈-내용과 꿈-사고를 비교해보면 단박에 드러난다. 외현적 꿈-내용은 짧고 간결하지만 잠재적 꿈-사고는 훨씬 풍부하다. 몇 줄 안 되는 꿈-내용은 그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보다 열 배가 되는 꿈-사고로 부풀기도 한다.
2) 치환(전위나 전이로 번역되기도 한다)은 자기 검열로 인해 꿈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이야기 등이 다른 것으로 뒤바뀌거나 변형되는 것을 뜻한다. 꿈속에서 어떤 사람과 손을 잡고 걷고 있었는데 잠시 후 손을 잡고 있던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경우와 같은 예는 매우 풍부하게 드러난다.
3) 꿈-사고가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에서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것들을 제거하고 스스로를 표현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것을 재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라고 한다.
4) 꿈에 대한 마음의 검열은 끝까지 진행된다. 마음이 재현 가능성에 대한 고려를 통해 일차적으로 해석한 꿈-내용은 다시 한번 합리적인 형태로 가공된다. 그것을 이차 수정이라고 한다.
프로이트는 꿈-작업의 기제들 중에서도 특히 압축과 치환을 강조하여, 이 둘이야말로 꿈을 만들어내는 두 명의 공장장이라고 불렀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꿈은 마음이 자기의 소망을 충족시키는 장이다. 거꾸로 말하면 꿈을 읽으면 마음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마음은 다양한 자기 검열의 체계를 가지고 있어 자기가 진실로 원하는 바를 스스로에게도 정직하게 드러내지 못한다. 그래서 꿈은 다양한 방식으로 일그러지고 뒤틀려 있다. 꿈-작업의 기제들은 꿈의 그러한 왜곡 작업을 수행하는 기술이기도 하다.
라캉은 꿈-작업의 기제에 대한 프로이트의 분석과 일반언어학의 통찰을 겹쳐놓았다. 프로이트의 압축이라는 기제는 기표들을 포개는 것이어서 유사성을 원리로 삼는 은유와도 같다. 또한 치환은 기표들을 사슬처럼 이어주며 자리를 바꾸게 하는 것으로서 인접성을 원리로 삼는 환유와도 같다. 압축과 치환은 꿈-작업의 핵심적 기제이고 은유와 환유는 언어를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두 요소이다.
은유는 기표를 골라내고 환유는 기표를 배열하는 작업과 일치한다. 우리가 지니고 있는 어휘 사전 속에서 단어를 선택(은유)하고, 그 단어들을 문법에 맞게 결합(환유)시키는 것이 곧 그것이다.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라캉의 말은, 프로이트가 말한 꿈-작업의 기제와 소쉬르가 말한 일반언어학의 틀이 이렇게 일치하고 있는 것을 전제한 것이었다. 무의식과 언어의 구조적 상동성이 존재하고 있음을 꿈-작업의 기제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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