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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인간이 지닌 지적 능력을 지칭하는 포괄적인 말이다. 이 말은 사용하는 사람이나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이성이라는 말 앞에 한정어가 붙어 근대적 이성이나 혹은 계몽이성이 되면 여기에는 근대성의 출현과 연관된 맥락이 부가된다. 공히 이성이라는 말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와 라틴어 코기토(cogito)의 차이를 살펴보면 그 의미가 좀더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다.
언어나 이성을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는 기독교 신학과 결합함으로써 좀더 뚜렷한 신의 지위를 차지하게 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라고 요한복음의 첫 구절은 시작된다. 여기에서 말씀은 곧 하느님이고, 그것을 통해 세계를 창조한 하느님의 실질적인 위력이며, 삼위일체 하느님의 두번째 위격에 해당된다. 로고스로서의 이성은 천지만물의 창조자이고 주재자로서, 곧 세계에 충만해 있는 절대적이고 신적인 원리라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지적 능력도 세계를 주재하는 거대한 이성으로서의 로고스의 존재 속에서 비로소 작동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로고스로서의 이성은 단순히 인간의 지적 능력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 있는 절대적이고 초월적인 존재인 셈이다.
라틴어 코기토는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신적인 원리인 로고스와는 달리 인간의 인식 능력을 뜻한다. 근대성의 형성에 따라 중세 유럽에서 절대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스콜라철학의 진리가 붕괴함으로써 인간의 판단 능력은 의지할 곳을 상실하게 된다. 로고스로서의 이성이 절대적 권위로 버티고 있을 때는 문제가 없었지만, 로고스의 위력이 사라진 곳에서 인간은 어떻게 진위와 정사를 판단할 수 있는가. 데카르트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일종의 사고 실험을 감행했다. 내 눈에는 이것이 빨갛게 보이는데 그것이 옳다는 것을 무엇이 보장해줄 수 있는가.
내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세계의 모습이 참된 것이라는 것을 누가 입증해줄 수 있는가. 이러한 의문을 그는 방법적 회의라고 불렀으며 그 속에서 그가 추론해낸 것은, 모든 것을 회의하고 의심하더라도 그런 의심을 하고 있는 의식의 존재로서 내가 있다는 사실 자체만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것까지 부정해버리면 인간의 모든 사고와 판단은 존립 근거를 상실해버리게 되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생각하는 나’의 존재를, 지구를 들어올리기 위해 아르키메데스가 요구했던 지렛대의 받침점처럼, 보다 상위의 인식을 위한 최초 확실성의 지반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의식과 그 주체의 존재를 연결하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코기토라는 단어로 압축된다. 따라서 코기토란 인간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인식 능력, 즉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에서의 이성을 뜻하며, 이는 데카르트적 이성이나 근대적 이성, 계몽이성 등의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성의 개념이 로고스에서 코기토로 전환되는 것은, 다른 어떤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내적 능력에 따라 사고하고 판단하는 주체의 출현을 뜻하는 것으로서 그 자체가 근대성의 중요한 표현이 된다. 계몽을 정의하여, 사고의 미성숙 상태로부터 벗어나는 것(타자의 가르침 없이 스스로의 판단력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했던 칸트의 유명한 말도 이런 사정을 지칭하고 있다. 또 헤겔은 근대성의 정신적 기축을 주체성(subjectivity)의 원리라고 했다. 여기에서의 주체는 인식과 행위의 주인으로서 자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만 근거를 확보하는 자유롭고 자율적인 존재인데, 이것이 뜻하는 것 역시 자기 자신 이외에 어떤 기성적이고 외적인 권위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 맥락을 지니고 있다.
사제들의 독점적인 권위를 부정한 채 모든 사람들이 신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고 ‘만인사제주의’를 주창했던 종교개혁도, 인간이면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적으로 획득한 권리를 지니고 있으며 그런 자연권에 입각하여 국가의 토대가 만들어져야 함을 주장했던 계몽주의 철학도, 또한 어떤 미적 전범도 인정하지 않은 채 예술적 표현의 진수는 한 개인이 지닌 개성과 내면의 의지에 따라 획득되는 것이라고 했던 낭만주의 예술도 모두 헤겔에게는 주체성 원리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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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근대적 이성과 주체성의 원리 – 인문학 개념정원, 서영채,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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