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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째 이야기
왜 정신이 없을까
한평생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데 쓰는 시간이 1년이라고 합니다. 정말 딱 1년일지는 의심스럽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하루만 따져도 각종 리모컨을 비롯해 휴대전화, 지갑 등을 찾아다니는 시간이며, 분명히 며칠 전에 세탁해서 어디에 뒀는지 알 길 없는 옷가지를 찾는 시간, 오랜만에 들으려는 음악 CD나 책을 찾으려는 시간, 부엌에서 참기름을 찾는 시간 등등을 따져보면 그럴듯해서입니다. 여기에 가끔 지하철이나 택시에 놓고 내린 무언가를 찾아다니는 시간까지 더하면 1년이 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참 아깝게 낭비되는 시간이지요. 그런데 현대인이 잃어버리는 것이 어디 물건뿐일까요. 정신도 못 챙기고 살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친구에게 물건을 사달라는 부탁을 하고, 물건 값 35,000원을 송금했습니다. 몇 시간 후에 친구가 전화해서 대뜸 이럽니다. “왜 이렇게 돈을 많이 부쳤어?” 순간적으로 얼마를 부쳤는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얼마 부쳤냐고 물으니, 무려 6백만 원이라고 합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동시에 내 통장에는 그만한 돈이 없으니 분명 잘못 부치지 않았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갈팡질팡하던 친구가 말합니다. “아! 그거 내가 나한테 부친 거다. 미안.”
이 친구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갸우뚱하는데, 은행에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은행직원이 말합니다. “고객님 적금 만기가 오는 2월인데요.” 순간적으로 내 적금 만기가 다음 달이던가 헛갈리기 시작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생각합니다. 올해가 아니라 내년이 맞습니다. 그래서 내년 2월이 아니냐고 하니, 은행직원이 당황합니다. “아, 맞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헛갈렸네요.” 나만 정신없는 줄 알았는데, 천지에 정신없는 사람이 하나둘이 아닙니다. 왜 이렇게 다들 정신이 없을까요?
가장 큰 원인은 여러 가지 일을 빨리 잘하는, 멀티 플레이어를 요구하는 현대사회에 있습니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 한꺼번에 다양하게 많은 것을 입력하고, 동시에 출력하려다 보니 뇌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마치 커다란 가방에 이것저것 마구 집어넣고 막상 필요한 물건을 꺼내려면 한참 가방 속을 뒤적여야 할 때와 비슷하지요. 차라리 가방이라면 뒤집어서 몽땅 쏟아버릴 텐데, 기억은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같은 사태가 반복되지 않게끔 매뉴얼을 세울 수는 있습니다. ‘만’과 ‘뿐’의 정신으로 일의 우선순위를 세우고, 차례대로 한 가지씩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일의 가짓수가 많아도 그 일을 하는 순간에는 오직 그것뿐인 것처럼 집중하는 거지요. 동시에 많은 것을 빠른 속도로 해치우려고 하면 과부하를 일으켜 오히려 뒤죽박죽 될 뿐이니 결과적으로는 빨리 하는 것도 아니고, 잘하는 것도 아니게 돼버립니다. 그보다는 하나씩 차례대로 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간혹 한꺼번에 여러 가지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깜박 잊어버리는 수가 있습니다. 미국 인디애나 노트르담대학 심리학교수 가브리엘 라드반스키 박사에 따르면 기억이 문지방이라는 구획의 경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다른 구획으로 들어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일명 ‘문지방 효과’입니다. 대표적으로 냉장고를 열어보고 ‘내가 뭘 꺼내려고 했더라?’ 같은 경우를 꼽을 수 있는데요. 냉장고에서 무엇을 꺼내기로 했는지 생각한 것은 다른 장소일 때가 많지요. 하지만 그곳의 문지방을 넘는 순간 기억이 다른 보관함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지시를 잊어버리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실험결과, 지시를 받은 공간의 문지방을 넘으면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스스로 계획을 세우거나 마음먹은 것도 마찬가지여서 문지방을 넘어서면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이런 문지방 효과를 역이용해서 처음 그 생각을 했던 장소로 되돌아가면 기억해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실행에 옮겨봤습니다. 물건을 잃어버린 경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건망증에는 별다른 효과가 없었습니다.
결국 좋은 방법은 생각한 것을 바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고,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적어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컷 적어둔 메모지를 어디에 두었는지 잊어버릴 가능성도 없다고 할 수 없으니, 메모지를 일정한 장소에 놓는 습관을 들이거나 휴대폰의 메모장에 적어두는 것이 좋겠지요.
그러나 지금까지 말한 모든 대비책을 아무리 꼼꼼히 세워도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기억을 잊어버릴 수 있습니다. 바로 잃어버리고 싶어서 잃어버리고, 잊어버리고 싶어서 잊어버리는 경우입니다. 단지 본인 스스로 자각하지 못할 뿐이지요.
늘 기억하던 현관문 비밀번호라든가 집 전화번호, 혹은 누군가의 이름이 잘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또 성격이 산만한 편도 아니고 웬만해서는 물건을 잃어버리지도 않는데 갑자기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나지 않거나, 지금 해야 할 일이 무언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약속을 잊기도 하고 평소에 잘 아는 것인데 마치 처음 본 것처럼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런 증세는 80~90퍼센트가 심인성 건망증입니다. 대부분 정신적 스트레스와 육체적 피로가 원인이지요. 쉽게 말해서 몸과 마음이 “나 좀 쉬고 싶어!” 하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건망증이 유난히 심해졌다면 우선 몸과 마음의 건강상태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요. 인생은 짧고 굵은 것이 아니라 가늘고 길며, 앞으로 우리의 뇌가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으니 내 뇌는 내가 챙겨야 합니다.
• 아티스트 : 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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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인물들과 매일 우리가 무심코 보고 생각하고 자고 행동하는 일상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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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왜 정신이 없을까 –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유선경, 지식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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