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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득, 묻다
: 두 번
째 이야기

〈옴브라 마이 푸〉를 부른 세르세는 누구일까

〈옴브라 마이 푸〉를 부른 세르세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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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로 부를 때와 악기로 연주할 때 제목이 달라지는 곡이 있습니다. 아리아로 부를 때는 〈옴브라 마이 푸(Ombra mai fu)〉, 악기로 연주할 때는 〈헨델의 라르고〉로 불리는 곡입니다.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이 작곡한 음악 중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정작 이 곡이 삽입된 오페라 〈세르세(Serse)〉는 불운을 면치 못했습니다.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생의 대부분인 47년을 영국에서 살면서 음악활동을 한 영국의 음악가입니다. 오페라 작곡가로서 명성이 높았지요. 그러나 1730년대 중반, 런던 오페라계가 침체에 빠지자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직접 오페라단을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직격탄을 맞은 거지요. 설상가상 몸의 오른쪽에 마비가 오면서 걷기와 말하기는 물론 전처럼 빠른 속도로 작곡하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작곡한 오페라가 바로 〈세르세〉입니다.

안타깝게도 1738년 4월의 초연은 대실패였습니다. 관객의 외면 속에 겨우 다섯 번밖에 공연하지 못한 채 헨델의 비탄과 함께 막을 내렸고 잊혔습니다. 〈세르세〉는 1924년에야 다시 공연되기 시작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카스트라토각주1) 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헨델은 ‘세르세’ 역할을 소프라노 카스트라토에 맞춰 작곡했습니다. 당시 오페라에서 카스트라토가 주역을 맡는 것은 일반적이었습니다. 몬테베르디, 글룩, 모차르트의 오페라에도 카스트라토가 등장하는데 16세기에 교회 성가대에서 여성의 활동을 금지한 데 따른 것이었지요. 남성의 낮고 굵은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오페라라니, 얼마나 귀가 지루할까요. 그러자 음악 관계자들이 인위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바로 맑은 음성을 가진 소년을 골라 변성기가 되기 전에 거세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후두가 여성보다 길고 남성보다 짧은 상태로 성장해 여성 목소리와 남성 목소리를 함께 낼 수 있었습니다.

오페라가 지금의 텔레비전 드라마와 같은 인기를 누리던 시대였으니 카스트라토의 인기는 대단했고, 그 때문에 가난한 부모가 아들을 거세시키는 비극도 적지 않게 일어났는데요. 이런 카스트라토에게 출연 금지령을 내린 이가 1806년 이탈리아를 점령한 나폴레옹이었습니다. 그러자 카스트라토를 염두에 두고 작곡한 오페라에서는 이를 대체할 가수를 찾을 수 없어 공연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말았는데요. 현재는 카운터테너와 알토가 이 역을 맡고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우리가 들을 수 있게 된 오페라 〈세르세〉의 아리아 〈옴브라 마이 푸〉, 가사를 알지 못해도 카운터 테너가 ‘오옴~’ 하며 길게 늘여 부르는 마디에 이르면 숲 속의 메아리를 듣는 것처럼 청량해지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이렇듯 숭고한 아리아를 부르는 오페라 속 세르세는 누구일까요?

영화 〈300〉에서는 그리스를 침공하는 야만적인 동방의 괴물로 나오고, 구약성서에서는 유대인 에스더의 남편 아하수에로 황제로 나오는 바로 그 인물, 고대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Xerxes)입니다. 크세르크세스는 아버지 다리우스가 마라톤 전쟁에서 패한 것을 설욕하기 위해 B.C. 480년, 몸소 대규모의 전력을 이끌고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영화 〈300〉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스파르타군과의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그리스 연합군에 대패하면서 페르시아로 철수했지요. 그 후에 크세르크세스는 아버지 다리우스가 페르세폴리스에 건설하기 시작했던 궁전 건축을 마무리 짓고 그곳에서 화려한 여생을 보냈는데요. 헨델의 오페라 〈세르세〉는 이런 크세르크세스의 개인사와 무관하게 쓰였습니다.

그래도 굳이 상상해보자면, 만약 크세르크세스가 무성한 나무를 예찬했다면 페르세폴리스의 궁전에서 살았던 말년이 바뀌었을까요. 노랫말을 알고 나면 생의 남은 소망을 나무에 투영한 것도 같습니다.

내 사랑하는 나무의 부드럽고 아름다운 잎사귀여,
운명이 네게 친절히 미소 짓기를,
천둥과 번개, 그리고 폭풍우가 너의 평화를 어지럽히지 않길,
바람이 너를 모욕하지 않기를.
옴브라 마이 푸
달콤하고 사랑스런 그대의 시원한 그늘이여.
- 헨델, 오페라 〈세르세〉의 아리아 Ombra mai fu(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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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 H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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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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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미스터리한 인물들과 매일 우리가 무심코 보고 생각하고 자고 행동하는 일상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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