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문득, 묻다
: 두 번
째 이야기

에포크의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였을까

프랑시스 잠(Francis Jammes)

상징파의 후기를 장식한 신고전파 프랑스 시인.

ⓒ Nicholas Newman/위키피디아 | Public Domain

1789년 대혁명에서 1871년 파리코뮌까지, 무려 80여 년에 걸쳐 개혁과 반동이 반복되며 유혈사태로 이어진 프랑스 역사는 우리에게 혁명과 개혁이 얼마나 달성하기 힘든 목표인지 보여줍니다. 프랑스인의 대혁명에 대한 자부심은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를 공격해서 점령한 지점에만 있지 않습니다. 그 후로 80여 년 동안 이어진 잔혹한 탄압에도 끝까지 자유와 평등을 포기하지 않은 정신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좌익과 우익이 전면적으로 맞서면서 3만여 명이 학살당한 파리코뮌을 끝으로 대통령제가 도입됩니다. 정치적인 혼란이 가라앉자 프랑스에 황금시대가 도래하면서 찬란한 문화의 꽃이 활짝 피는데 훗날의 사람들은 이 시기를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절)’라고 불렀습니다. 대략 1880년 전후부터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는 1914년까지로, 시인 프랑시스 잠(1868~1938)의 20~30대 시절과 겹칩니다. 그러나 잠은 벨 에포크의 수혜를 거부하고 은거자를 자처했습니다. 그의 시에 파리는 없습니다. 대신 인상파 화가들이 벨 에포크를 캔버스에 담았지요.

모더니즘을 탄생시키고 댄디즘을 숙성시킨 예술과 철학의 도시, 파리. 그러나 처음부터 아름답고 지적인 도시는 아니었습니다. 길은 좁고 더러웠으며 심하게 구불거렸지요. 파리의 도심이 변모한 것은 1856년 이후부터입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면서 파리 시내가 전염병과 교통문제, 주거문제로 몸살을 앓자 정부가 도시 재정비 사업을 추진합니다. 상하수도 시설을 확충하고 도로를 직선화했으며 곳곳에 공원을 조성했습니다. 널찍하고 곧게 길을 낸 것은 시민들이 좁은 골목을 이용해 더 이상 바리케이드를 칠 수 없도록 하려는 목적이었고, 공원을 조성한 것은 비민주적인 통치에 대한 불만을 무마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대외적으로는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도시라는 이미지를 알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파리 시민들은 해가 저물면 세련된 옷차림으로 집을 나서 카바레 물랭루주와 레스토랑 맥심을 찾았고, 휴일이면 공원에서 여가생활을 즐겼습니다. 이런 파리 시민의 일상은 인상파 화가들에게 새로운 소재가 되었습니다. 마네, 드가, 르누아르, 피사로, 카유보트가 그린 그림 속 파리 시민들은 화려하고 우아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강에서 보트를 타고, 경마장과 공원에서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저녁이면 카페와 극장과 무도회에서 음악과 춤과 인생을 향유합니다.

그러나 꽃처럼 아름답고 화려한 벨 에포크는 불안하고 일시적이었습니다. 18세기 산업혁명이 이끌고 온 경제성장 덕분에 문화와 예술, 철학이 꽃을 피웠지만 대량생산체제가 가속화될수록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졌습니다. 실업자와 도시 빈민이 대거 양산됐고 정치적으로는 유럽 각국이 서로 제국주의의 야심을 숨긴 채 간신히 균형을 유지하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불안함은 1914년, 프러시아 전쟁이 끝난 지 30년도 되지 않아 끝내 제1차 세계대전으로 폭발합니다.

훗날 사람들은 전쟁과 전재애 사이, 혼란스러운 세기 말과 세기 초 사이에 아름다운 문화와 예술로 근심걱정을 잊을 수 있었던 그 잠깐의 휴지기에 ‘벨 에포크’라는 이름을 헌정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때가 진실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기보다 그 후에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절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떠올린 과거의 향수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직역하면 ‘아름다운 시절’이지만 의역하면 ‘아, 아름다웠던 시절이여~’가 아니었을까요.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출처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미스터리한 인물들과 매일 우리가 무심코 보고 생각하고 자고 행동하는 일상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져..펼쳐보기

전체목차
Chapter 01. 그 사람은 누구일까 누가 생텍쥐페리를 격추시켰을까? 윤동주와 백석이 동시에 사랑한 시인은 누구일까? 스탕달 신드롬을 일으킨 미인은 누구일까? 아메리칸 이브는 누구일까? 댄디즘의 시조는 누구일까? 뱀파이어는 누구일까? 프랑켄슈타인은 누구일까? 〈미녀와 야수〉의 야수는 누구일까? 누가 디즈니 성을 지었을까? 혼자서 궁전을 지은 사람이 있을까? 세계 최초의 건축가는 누구일까? 우리나라 최초의 싱어송라이터는 누구일까? 멘토는 누구일까? 〈아테네 학당〉에 여성이 있을까, 없을까? 고대에 광선총을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가발을 유행시킨 사람은 누구일까? 〈옴브라 마이 푸〉를 부른 세르세는 누구일까? 우산을 발명한 사람은 누구일까? 화투의 ‘비광’ 속 우산 쓴 사람은 누구일까? 바다의 무법자, 해적왕은 누구일까? 보물선을 발견하면 주인은 누구일까? 클레멘타인의 아버지는 뭐 하는 사람이었을까?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누구를 위한 노래일까? 백만 송이 장미를 받은 여인은 누구일까? 누가 살리에리를 모차르트를 시기한 자로 만들었을까? 신사의 결투로 죽음을 맞이한 시인은 누구일까? 세계 3대 악처는 누구일까? 누가 온달을 바보로 만들었을까? 지리산의 산신은 누구일까? 고수레는 누구를 위한 말일까? 돌하르방은 누구일까? 도깨비는 누구일까? 갑은 누구일까? 교활, 낭패, 유예는 누구일까? 최초의 실루엣 그림 속 인물은 누구일까? 산타클로스와 루돌프는 누구일까? 누가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켰을까? 1등보다 유명한 2등은 누구일까?
Chapter 02. 매일 하다가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질까? 새벽은 어떻게 올까? 아침 일찍 일어나면 성공할 수 있을까? 개미와 꿀벌은 정말 부지런할까? 사람의 눈은 왜 두 개일까? 곤충과 동물의 눈에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세대차이는 인류의 난제일까? 표정은 감정과 일치할까? 행복할 때 짓는 미소는 어떤 미소일까? 화장은 왜 하기 시작했을까? 인간에게 털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키스하다가 죽을 수도 있을까? 독사가 자기 혀를 깨물면 죽게 될까?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문자가 없는 사회는 미개할까? 손짓은 무엇을 의미할까? 옛날에는 시간약속을 어떻게 했을까? 18세기 유럽에서는 연주회의 시작시간을 어떻게 정했을까? 하루는 왜 24시간일까? 잠을 자는 동안 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스로 원하는 꿈을 꿀 수 있을까? 꿈을 사면 효과가 있을까? 나이가 들면 왜 잠이 없어질까? 곰은 왜 겨울잠을 잘까, 물고기도 겨울잠을 잘까? 인간은 언제부터 옷을 입기 시작했을까?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이라는 구분은 어떻게 생겼을까? 호주머니와 핸드백은 어떤 연관이 있을까? 남자들도 하이힐을 신었을까? 왜 8등신일까? 만 원권 지폐에는 몇 개의 문화재가 들어 있을까? 냄새를 맡을 수 없으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언제부터 쌀을 먹었을까? 트림과 방귀가 환경을 오염시킬 수 있을까? 왜 정신이 없을까? 책상을 청소하면 공부를 잘하게 될까? 디지털 치매, 진짜 해로울까?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중독일까? 영혼의 무게를 측정할 수 있을까?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태그 더 보기
일반상식

일반상식과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Daum백과] 벨 에포크의 아름다운 시절은 언제였을까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유선경, 지식너머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