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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째 이야기
도깨비는 누구일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잡신이라고 하면, 단연 도깨비입니다. 누군가는 도깨비를 상상 속의 동물이라고 설명합니다. 수많은 옛날이야기에서 도깨비는 생긴 것만 무섭지,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얼굴에 달린 혹에서 노래가 나오는 줄 알고 혹을 산다거나, 사람이 개암 깨무는 소리를 집이 무너지는 소리로 알고 도깨비 방망이를 팽개치고 달아난다거나 하지요. 심지어는 사람에게 돈을 꿔간 후에 이자까지 쳐서 돈을 갚는데, 자신이 돈 갚은 사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돈 빌린 사실만 기억해서 계속 돈을 갖다 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스꽝스럽고 경박한 도깨비의 모습은 일제 강점기에 왜곡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도깨비의 원래 모습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귀면와(鬼面瓦)에 새겨진 얼굴이 바로 도깨비라고 주장합니다. 악귀를 쫓기 위해 무서운 형상을 한 잡상을 조각 등으로 새겨 건축물을 장식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오랜 전통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귀면와는 고구려 시대에 시작돼 통일신라시대 때 황금기를 이뤘는데요. 공통적으로 머리에 난 두 개의 뿔과 무섭게 부릅뜬 눈,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형상은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 악마’의 붉은 깃발이 돼서 휘날렸지요. 붉은 악마는 깃발에 새겨진 형상이 ‘치우’라고 밝혔습니다. 귀면와에 새겨진 형상이 치우이고, 그 형상을 캐릭터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깨비가 치우일까요?
그리스 신화에 티타노마키아가 있다면 동양에는 탁록대전이 있습니다. 둘 다 그야말로 신들의 전쟁입니다. 티타노마키아는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상대로 벌인 전쟁입니다. 아버지이긴 하되 명분이 있었습니다. 크로노스가 자식들을 죄다 잡아먹었기 때문이지요. 반란은 성공했고 새로운 세상이 열렸습니다.
탁록대전 역시 반란이지만 그리스 신화와 달리 결과가 다소 비관적입니다. 그때, 세상은 바야흐로 염제의 통치로 평화로웠습니다. 그런데 황제가 세력을 규합해 전쟁을 일으켰고, 서양 같으면 이 전쟁의 엔딩을 착한 신 염제의 승리로 마무리 지었을 테지만, 동양에서는 야심이 큰 황제의 손을 들어줍니다.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황제의 통치를 부당하게 여긴 세력이 반란을 일으켜 탁록에서 맞붙는데 이때 반란군의 수장이 바로 치우였습니다.
치우의 생김새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중국에서는 치우를 구리로 된 머리에 철로 된 이마를 하고, 모래와 돌을 밥으로 먹었다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치우가 전쟁에서 철제무기를 도입하고 사용한 최초의 영웅이었음을 의미합니다. 그 덕에 황제의 군단과 맞붙은 처음 아홉 번의 전투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요. 그러나 마지막 전투에서 황제가 가뭄의 여신 ‘발’을 부르면서 전세가 역전됐고 치우는 패하고 말았습니다.
처음부터 신이 신인 서양 신화와 달리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신화에서 신은 사람이 죽어서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치우는 황제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죽었기에 전쟁의 신으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용맹한 치우의 힘을 빌려 악귀를 쫓고자 기와에, 무기에 그의 모습을 새겨 넣었습니다. 다시 말해 귀면와에 새겨진 형상은 도깨비가 아니라 치우입니다.
도깨비는 본디 사람이 아니라 돌 같은 자연물이나 사람이 오랫동안 쓰던 물건이었습니다. 그것이 수명을 다하거나 버려지면 귀신이 됐는데 그 형상은 동물일 수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다고 여기지 않은 옛사람들의 믿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대목이지요. 우리나라에서 벼룩시장이라든가 구제품이 별로 인기가 없고, 골동품을 집 안에 들이기 거리끼는 것도 오래된 물건에는 혼이 붙어 있다는 미신 때문일 것입니다.
도깨비가 처음 등장하는 문헌은 《삼국유사》의 〈도화녀와 비형랑〉 편입니다. 비형은 신라 제25대 진지왕과 도화녀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의 출생은 그리스 신화의 페르세우스를 연상시키는데, 진지왕의 혼령이 도화녀의 방에 들어 잉태된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페르세우스는 성에 갇힌 다나에를 빗물로 변신한 제우스가 범해서 생긴 아들이었지요. 출생부터 범상치 않더니, 자라서 하는 행동도 괴이했습니다. 매일 밤 언덕 위로 가서 도깨비들과 놀았다고 하는데요. 그들의 놀이는 절에서 종소리가 울릴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소문을 들은 진평왕이 비형을 불러 도깨비들을 거느리고 노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한 후 한 가지 명을 내립니다. “그렇다면, 네가 도깨비들을 시켜 신원사 북쪽 시내에 다리를 놓아라.” 비형은 왕의 명을 받들어 도깨비들에게 돌을 다듬게 한 다음 하룻밤 사이에 큰 다리를 놓았습니다. 도깨비들의 실력을 확인한 왕은 그들 중 인간 세상에 나와 정치를 도울만한 자가 있냐고 물었고, 비형은 길달을 추천했습니다. 진평왕이 그를 받아들여 벼슬을 내렸는데, 과연 충직하기가 세상에 둘도 없었습니다.
또 아들이 없는 각간 임종에게 양자로 삼도록 했는데 어느 날 임종이 길달에게 홍륜사 남쪽에 누문을 짓게 했습니다. 길달은 매일 밤 그 문 위에 가서 자다가 어느 날, 여우로 둔갑해 달아나 버렸습니다. 그러자 비형이 도깨비들을 시켜 길달을 붙잡아 죽이고 말았고 그 후에 도깨비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은 귀신들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랬다면 왕이 벼슬을 내린다거나 각간이 양자로 들이거나 하지 않았겠지요. 학자들은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도깨비들이 주류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청년들일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읽으면 앞뒤가 들어맞습니다. 왕의 아들이되 결코 후계자가 될 수 없는 비형이 소외되고 불우하지만 기백이 넘치는 청년들의 우두머리가 됐는데, 그중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던 길달과 갈등을 빚은 끝에 그를 죽인 것으로 말이지요. 그 후에 도깨비들은 비형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었고, 이 때문에 신라에서는 비형의 이름을 대문에 써 붙이는 벽사가 생겨났다고 합니다. 이 전설대로라면 귀면와에 새겨진 형상이 설령 치우가 아니라도, 도깨비는 더더욱 아닐 것 같습니다. 도깨비들이 무서워한 비형이라면 모를까 말이지요.
도깨비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이 변해서 되었거나 빗자루나 부지깽이, 반닫이나 다듬잇돌 같은 집안의 가재도구가 변해서 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력을 갖추고도 사회에서 쓰임을 받지 못하고 소외당하는 청년들일 수도 있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쓸모없다고 낙인 찍혀 버림받았다는 것이지요. 도깨비에게 괴력을 부여하고 인간에게 장난을 많이 치게 한 것은 세상의 불평등함에 눈물지은 진짜 도깨비들이었을지 모릅니다.
• 아티스트 : Bryn Ter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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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한 인물들과 매일 우리가 무심코 보고 생각하고 자고 행동하는 일상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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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도깨비는 누구일까 –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유선경, 지식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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