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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득, 묻다
: 두 번
째 이야기

보물선을 발견하면 주인은 누구일까

보물선을 발견하면 주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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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작가의 단편소설 〈보물선〉은 자본주의 사회에 만연한 한탕주의를 흥미진진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작품에서 한탕주의의 수단은 보물선과 주식입니다. 투자를 받아서 보물선을 발굴하는 회사를 설립하고, 주가가 오르면 주식도 팔고 회사도 팔아서 한몫 챙기자는 거지요. 현실에서 바다 속 보물선을 찾아내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을 만나면 십중팔구 “제 정신이 아니군. 정신 차려!” 할 것 같은데 한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이용호 게이트’는 보물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일명 보물선 게이트로 불리는 이용호 게이트는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보물선을 건져 올린다며 주가를 조작한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진도 앞바다에는 어부 그물에 물고기 대신 청자가 걸려 올라오는 일이 있을 정도로 고려와 조선의 유물이 상당량 묻혀 있는데요. 몇 년 전 국립해양연구소의 발굴 조사에서 서기 1세기 유물까지 나온 것을 보면 전 시대를 망라하는 보물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진도 앞바다는 1597년, 이순신 장군이 단 13척의 배를 이끌고 왜선 133척을 무찌른 명량대첩이 벌어진 곳으로 그처럼 대담한 전략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은 거센 물살과 험한 지형을 아군으로 삼을 수 있어서였습니다. 특히 파도가 암초에 부딪쳐 나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 바위가 우는 것 같다는 뜻을 가진 울돌목은 해안 폭이 좁아 우리나라에서 조류가 가장 빠른 곳으로 꼽힙니다. 유속이 대략 초당 4.5미터로 매우 빠른 데다 방향도 남동쪽, 북서쪽 교대로 흘러 배의 방향을 바꾸기 어렵습니다. 결국 왜군은 방향을 틀지 못하고 울돌목에 그대로 갇힌 채 화포를 맞고 침몰하는 수밖에 없었지요.

이처럼 전쟁 때는 든든한 아군으로 삼을 수 있지만 문제는 평화시입니다. 이 지역은 한반도 서남단에서 서해와 남해를 연결하는 군사적 요충지일 뿐 아니라 한반도 남부지역에서 세금으로 거둔 곡물을 운반하던 주요 항로였습니다. 그리고 험한 항로였지요. 이곳에서 시대를 아우르는 보물이 다량으로 발굴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배가 침몰했으며,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뜻입니다. 시기적으로는 삼국시대 초기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반복적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 앞바다 깊은 곳에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는 우리나라의 보물선만 묻혀 있지 않습니다. 백여 년 전 일본과 청,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는 와중에 많은 상선과 군함이 격침을 받아 침몰됐습니다. 대표적으로 ‘고승호’를 꼽을 수 있습니다. 고승호는 청나라가 영국에서 임대받아 사용한 상선으로 청일전쟁이 발발한 1894년 7월 25일 인천항으로 오다가 일본군의 격침으로 침몰됐습니다. 고승호가 보물선으로 불리는 이유는 청나라가 군자금으로 쓰려고 했던 은 6천여 톤을 실었기 때문인데 시가 1,100억 원 어치 가량으로 추정됩니다. 15년 전, 한 업체가 수중발굴 작업을 벌여 고승호의 선체 일부를 발견했다고 발표하면서 관심이 뜨거워졌지만 더 이상의 진척은 없는 상태입니다.

러일전쟁 때 울릉도 부근에서 침몰한 러시아 군함 ‘돈스코이호’는 더 큰 보물선입니다. 러시아 군자금으로 쓸 금괴와 은괴가 실려 있는데 그 양이 시가 120조 원가량 될 거라고 하지요. 일본 군함도 여러 척 보물선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1942년 전세가 기울자 인도와 중국, 필리핀 등지의 금괴와 문화재를 군함에 실어 본국으로 나르는 과정에서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에는 시가 50조 원, 총 4천8백여 톤의 금괴가 실린 ‘야마시타호’가 거제도 앞바다에 가라앉아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이 일대가 흥청망청 들썩거릴 정도였습니다. 아마 전국의 도굴꾼들이 죄다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입니다. 만약 발견된다면 설령 기대하는 금은보화가 없다 해도 백여 년 전 일본과 청, 일본과 러시아가 한반도를 둘러싸고 겨룬 전쟁을 대변해주는 유물이기에 그 자체로 보물입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 떠도는 보물선에 관한 소문은 약 10여 건. 주로 러일전쟁과 청일전쟁 당시에 격침을 받아 침몰한 선박들로 상당량의 군자금, 금괴와 은괴가 실려 있으며 모두 우리 영해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특히 일본의 경우 패전을 앞두고 일본의 보물급 유물들을 반출하기 위해 싣고 가다가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침몰한 배도 있고 중국, 러시아, 조선에서 약탈한 문화재를 비롯해 금은보화를 본국으로 싣고 가던 중에 침몰한 배도 여러 척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서 문득, 궁금증해집니다. 보물선을 발견하면 보물은 누구의 것일까요?

아무리 다 내 거 하고 싶어도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합니다. 안 하면, 도굴꾼이 되지요. 문화재로 판명되면 보물은 국가 귀속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신고자에게는 가치평가액의 10퍼센트, 최대 1억 원까지 포상합니다. 도굴꾼에게는 간에 기별도 가지 않을 액수입니다. 실제로 1976년, 신안 앞바다에서 보물선이 발견된 후에 우리나라 3면의 바다는 도굴계의 블루오션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육상에서 해상으로 전업(?)한 전문 도굴꾼들도 허다했다고 하는데요. 도굴을 철저히 막아야 하는 이유는 돈의 가치를 떠나서 문화재가 외국으로 밀반출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법대로 하기에도 애매한 보물선이 있습니다. 앞서 말한 고승호, 돈스코이호, 야마시타호 등은 우리나라 배가 아닌 남의 나라 배로 단지 우리 영해에 가라앉았을 뿐입니다. 이 배에서 보물을 발굴하면 누구에게 소유권이 있을까요?

지난 2007년 5월, 포르투갈 인근 대서양에서 미국의 해저탐사 업체 오디세이 마린 익스플로레이션(Odyssey Marine Exploration)이 침몰한 난파선에서 모두 17톤의 금은보화를 건져 올렸습니다. 추정가 5억여 달러, 한화 5천억여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스페인 정부가 소유권을 주장했습니다. 1804년에 영국함대의 공격을 받고 침몰한 갈레온선 ‘라 메르세데스’가 바로 그 난파선이라는 것이 근거였지요.

16세기에서 19세기 사이에 해양대국이었던 스페인은 아메리카와 필리핀을 식민통치하면서 금은보화를 약탈해 대형 목선인 갈레온선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그리고 이중 6백여 척이 본국으로 돌아가던 중 폭풍이나 해적을 만나 침몰했고, 최근 10여 년 사이 다른 나라 해양탐사업체들이 잇달아 이 스페인 난파선에서 보물들을 건져 올리고 있는 현황입니다. 가뜩이나 나라 살림살이가 어려운 스페인 정부로서는 눈 뜨고 코 베이는 심정이겠지요. 그래서 해양탐사업체를 ‘21세기 해적’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그 배에 실린 보물들 대부분이 식민지에서 약탈한 금은보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글쎄요. 과연 이 보물의 진정한 주인이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큰소리쳐도 될까 싶습니다.

그래서 페루 정부가 나섰습니다. 라 메르세데스에서 발굴된 은화 17톤이 당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페루에서 생산한 것이니만큼 돌려달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오디세이사는 양국의 주장이 모두 사실일지라도 해양법에 따라 인양된 보물들 대부분이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맞섰습니다.

네덜란드 상선 ‘프라우 마리아호’에 대한 3국의 소유권 주장도 팽팽합니다. 프라우 마리아호는 1771년 네덜란드를 출항해 러시아로 항해하던 중 핀란드 연안 발트해에서 침몰했는데 우리 돈 1조 8천억여 원가량의 금은보화가 실려 있을 뿐 아니라 화가 렘브란트와 얀 반 호이엔의 작품 등 진귀한 미술품 27점이 왁스로 봉인한 납 상자에 실려 있다고 합니다. 러시아 측은 예카테리나 여제가 거금을 주고 사들인 작품들이니 자기네 것이라고 하고, 네덜란드는 자국의 선박이니 자기네 것이라고 하고, 핀란드는 자기네 영해에서 가라앉았으니 자기네 것이라고 주장하는 상황입니다.

이처럼 보물선의 주인을 가리는 것은 쉽지 않아 자칫 국제분쟁으로 번질 소지가 큰데요. 국제해양법에 따르면 ‘전함은 주권 면제’라고 합니다. 난파선이 전함일 경우 어느 나라의 영해에 있든 모국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그 외엔 발굴한 쪽에서 80~90퍼센트의 소유권을 인정받습니다. 왜 세계적으로 해저탐사업체가 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조항이지요. 그러나 배의 주인이나 보물의 주인 입장에서는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보물선!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짜릿한 소재지만 사실은 전쟁과 약탈, 죽음이라는 비극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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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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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미스터리한 인물들과 매일 우리가 무심코 보고 생각하고 자고 행동하는 일상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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