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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번
째 이야기
세계 3대 악처는 누구일까
행실이나 성질이 악독한 아내를 ‘악처’라고 부릅니다. 영어로는 ‘젠티피(Xanthippe)’라고 하는데, 소크라테스의 아내인 크산티페(Xanthippe)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녀는 남편이 하는 말과 행동을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았고 사사건건 잔소리와 악다구니를 서슴지 않아서 악처의 대명사가 됐습니다. 그런데 정작 소크라테스가 크산티페를 악처로 여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에게는 그럴만한 정신적,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이니까요.
해가 뜨면 거리로 나가서 온종일 아테네 시민들 아무나 붙잡아 질문을 던졌고, 상대가 답을 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또 물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그것이 정말로 옳다고 확신하느냐?”는 질문인데, 상대가 자신의 확신에 의심을 품을 때까지 물고 늘어졌으니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괴로울 지경이었습니다.
더구나 소크라테스는 외모지상주의가 팽배한 아테네에서 못생기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습니다. 못생겼으면 깔끔하게라도 하고 다닐 일이지 옷 한 벌로 1년을 버텼으며 신발은 아예 신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나 더럽고 냄새가 났을까요. 그러나 망국을 예지한 현자 소크라테스에게 아테네 시민들이 쏟아 붓는 경멸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테네 시민들을 깨우치기 위해 하루하루가 절박한 그에게 아내의 잔소리나 악다구니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게다가 크산티페가 양처였다 한들 소크라테스의 삶이 달라졌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에 비해 지혜롭고 알뜰한 아내를 만났더라면 좀 더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을 주는 작곡가가 있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입니다. 1782년, 스물여섯의 모차르트는 독일어로 된 최초의 오페라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을 작곡합니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콘스탄체! 바로, 사랑하는 연인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녀는 모차르트의 첫사랑 알로시아 베버의 동생이었지요.
모차르트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프라노 가수인 콘스탄체와 빈의 성 슈테판 성당에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고 9년 후 같은 곳에서 초라한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 9년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콘스탄체가 악처였다고 비난합니다. 성격이 변덕스럽고 바람기가 다분했으며, 사치와 낭비가 심해서 모차르트를 과로하게 만들었고 그 결과 빨리 죽게 만들었다면서 말이지요.
이들 부부의 삶을 겉에서만 보면 그다지 행복하다고 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9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결혼생활 동안 여섯 명의 아이를 낳았으나 네 아이가 1년도 넘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결혼 후에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가 큰 성공을 거뒀지만 둘 다 재테크와는 담을 쌓은 데다 근검절약과는 거리가 멀어갈수록 빚이 늘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4년은 몹시 궁핍했다고 하지요. 돈을 마련하기 위해 유럽의 각 도시를 돌며 연주회를 열었지만 어느 하나 성공하지 못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병마가 드리우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가난이 찾아들면 행복은 창문 너머로 소리 없이 도망간다고. 모차르트는 어땠을까요?
1790년, 세상을 떠나기 바로 1년 전에도 모차르트는 돈을 벌기위해 집을 떠나 독일의 각 도시를 전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틈틈이 아내에게 편지를 써서 부쳤는데 그중 한 편지에 추신으로 덧붙인 글에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천진난만한 모차르트의 사랑이 듬뿍 들어 있습니다.
추신,
내가 마지막 페이지를 쓰는 동안 종이 위에 눈물이 뚝 뚝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나는 힘을 내야겠지요.
- 잡았다! - 수많은 키스가 날아다니고 있어요.
- 두 개 잡았다! 키스들이 거대하게 모여 있는 것이 보여요.
하하 방금 세 개를 잡았어요. - 정말 맛있군요. -
안녕, 친애하는 가장 사랑하는 아내여, 건강을 돌보세요.
안녕, 당신에게 백만 번의 키스를 보냅니다.
콘스탄체가 모차르트를 불행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순전히 세상 사람들의 말일 뿐, 모차르트에게 콘스탄체는 악처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녀를 악처로 부르는 이유는 성공한 천재가 왜 그렇게 힘들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 것입니다.
무엇보다 이 위대한 음악가의 무덤이 행방불명되고 만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장례식에 콘스탄체가 몸이 아파서 불참했고, 돈이 없어 묘를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시신들과 합장됐는데 매장할 때 아무도 따라가지 않아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게 돼버린 것입니다. 현재 모차르트의 묘로 알려진 곳은 실제 묘가 아니라 기념비만 세워진 것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모차르트의 생애 마지막이 얼마나 고생스러웠는지 짐작할 수 있으니, 그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콘스탄체가 곱게 보일 리 없겠지요.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 그리고 또 한 명의 악처로 불리는 여인이 여기 있습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입니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대문호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러시아 민중들에게 성자로 불릴 만큼 추앙받았지요. 그러나 아내 소피아의 생각은 달라서 훗날 이런 회고를 남겼습니다. “그는 진정한 온정이라고는 찾기 힘든 사람이에요. 그의 친절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조에서 나온거예요.”
과연 악처답게 남편을 폄하한 것인가 싶지만, 이어지는 말을 들어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그의 전기에는 그가 물통을 나르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도와주었는가 하는 이야기가 기록되겠지만, 정작 자신의 아내를 마음 편하게 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는 지금까지 서른두 해를 같이 살아오면서 아이들에게 물 한 모금 먹이거나, 아이들의 잠자리를 단 5분이라도 보살펴 온갖 일에 시달리는 나에게 잠시라도 쉴 틈을 준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거예요.”
실제로 소피아는 극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렸습니다. 자녀를 열셋이나 낳았는데, 톨스토이가 모성으로 길러야 한다는 명분을 들어 절대 유모를 들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소피아가 해야 했던 일은 자녀양육과 가사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녀가 시달린 ‘온갖 일’에는 톨스토이가 초고로 쓴 글을 반듯하게 옮겨 적는 일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워낙 악필이라서 편집자들이 알아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대부분 장편입니다. 게다가 《전쟁과 평화》는 대하소설이라고 부를만한 분량입니다.
그렇게 평생 극도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며 살았는데, 어느 날 남편이 자신의 재산과 저작권을 사회에 환원하겠노라 한 것입니다. 소피아는 극도로 분노했고, 분노는 극심한 갈등과 다툼으로 이어졌습니다. 톨스토이는 결국 가족에게 상속한다는 통보를 하고 가출해버렸고,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이상과 쾌락을 동시에 꿈꾸는 모순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했습니다. 도박과 여자에 탐닉하는 쾌락 앞에 무릎을 꿇은 후에는 어김없이 자기 자신에게 환멸을 느꼈습니다. 이런 모순과 갈등이 노인이 되고 대문호가 됐다고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말년에 이르러,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세상을 구원하고 싶은 갈망과 아내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현실 사이에서 괴로워했고, 끝내 이 모순과 갈등을 이겨내지 못한 채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소피아를 악처로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평생 반복된 모순과 갈등이야말로 인간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대문호로, 또 평생 고백과 참회 속에서 구원을 갈구하게 만든 사상가로 만든 원동력이 아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받아 마땅한 악행을 저지른 것이 아닙니다. 악처(惡妻)니, 악부(惡婦)니 하는 것을 논할 자격 역시, 부부가 아닌 제3자에게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녀들이 세계 3대 악처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계기가 결국은 ‘돈’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여성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봉쇄된 시대에 남편의 무능력과 무관심은 자신은 물론 자식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양처도, 악처도 아닌 그저 평범한 여성들이었을 뿐입니다.
남편에게 잔소리하고 악다구니를 쓰고, 돈 벌어오라고 내몰고, 유산 문제로 다툼을 벌인다는 이유로 악처라고 한다면, 글쎄요. 요즘 세상에 악처 아닌 아내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부부 사는 이야기가 정도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렇게 세상에 흔하디흔한 이야기에서 많은 남성들이 오해하는 점이 있습니다. 아내가 분노하는 것은 수입금액이 아니라 남편의 무관심과 무책임입니다. 남편이 가정을 살뜰히 보살피고 최선을 다했는데도 결과가 좋지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악다구니를 쓰며 남편을 밖으로 내몬다면 그야말로 악처라고 해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내들이 분노하고 파탄으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는 남편의 가정에 대한 무관심과 무책임이 끝내 무능력으로 이어지고 말 때입니다. 그 기준이 애매모호한 것 같아도 전자냐 후자냐는 이 질문 하나면 스스로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내와 가정을 위해서 한 선택입니까?”
• 아티스트 : Moz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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