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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방울은 혼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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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둘 와합 알바야티는 이라크의 시인입니다. 1926년 바그다드에서 태어나 30대 때 교육부장관과 문화공보관을 역임한 적도 있지만 대부분의 세월을 정치 탄압을 피해 외국에서 살았습니다. 결국 1995년 사담 후세인 정권이 그의 이라크 시민권을 박탈하면서 두 번 다시 조국에 돌아가지 못한 채 1999년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는데요. 그의 이름이 생소할 수 있지만 그의 시는 이미 우리에게 유명합니다.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오, 나의 연인이여, 빗방울처럼
슬퍼하지 마
내일 네가 여행에서 돌아온다면
내일 내 가슴에 있는 돌이 꽃을 피운다면
내일 나는 너를 위해 달을
오전의 달을
꽃 정원을 살 것이다
그러나 나는, 오늘, 혼자다
오, 빗방울처럼 흔들리는 나의 연인이여
- 압둘 와합 알바야티, 〈외로움〉

이 시의 제목은 〈외로움〉입니다. 홀로일 수밖에 없는 데서 오는 쓸쓸한 감정이지요. 시인의 눈에는 빗방울도 자신처럼 외롭게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빗방울은 정말로 혼자일까요?

빗방울은 물입니다. 그리고 물 분자의 정체는 H2O.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한 개가 결합해 생겨났습니다. 이렇게 물 분자 한 개도 혼자가 아닌데, 하물며 빗방울은 물 분자가 백만 개 이상 결합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빗방울은 혼자가 아닙니다. 물론 혼자가 아니라 수많은 여럿과 함께여도 외로울 수 있습니다. 빗방울도 그래서 외로운 걸까요?

딱히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물방울 안의 물 분자들은 모든 방향에서 서로 균등한 힘으로 끌립니다. 이렇게 끌리는 상대가 있으니 빗방울은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표면의 물 분자들의 경우에는 상황이 다릅니다. 공기와 접촉한 상태라서 가급적 물 분자를 최소한으로 노출시키기 위해 물 분자 간의 결합을 느슨하게 풀려고 하는데 안에서는 계속 끌어당기려고 합니다. 이 힘이 균등할 때 물의 표면이 팽팽하게 잡아당겨지는데 표면장력이라고 부릅니다. 그 덕분에 우리가 다음과 같은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빗방울과 비눗방울이 둥글고, 소금쟁이가 물 위를 뛰어다니고, 거미줄에 빗방울이 맺히고, 풀잎에 맺혀 있던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가고, 어쩌면 속눈썹에 맺힌 눈물도…….

혼자일 뿐 아니라 영원합니다. 물에게는 도무지 죽음도 끝도 없는 것 같습니다. 비, 우박, 눈송이, 이슬 등의 모양으로 하늘에서 내려온 물은 개천과 강을 따라 바다까지 여행한 후 햇빛을 받아 수증기가 돼서 대기 중에 떠돌다 구름이 됩니다. 그리고 다시 앞서의 과정을 순환하지요. 물론 모든 물이 다 저 멀리 바다까지 나가지는 않습니다. 어떤 물은 땅 속에 스몄다가 풀과 꽃의 갈증을 채우기도 하고, 키 큰 나무의 수관을 따라 수십 미터를 오르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에 빗방울이 수증기가 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짧으면 며칠에서 길게는 몇 주. 하지만 호수나 강, 바다의 밑바닥에 가라앉아버린 경우에는 다시 하늘로 올라가는 데 몇천 년이 걸립니다.

그러니까 신비롭게도, 우리가 지난여름에 맞은 소나기나 한겨울에 맞는 눈송이에 어쩌면 이집트의 파라오나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노나라의 노반이 맞았던 빗방울이 섞여 있을지 모릅니다. 혹은 바흐나 헨델, 모차르트, 베토벤이 맞은 빗방울이 섞여 있을지도 모르지요. 어디 수천 년 전뿐 일까요. 극지방의 얼음 위에 떨어진 눈송이가 하늘로 올라가는 데는 수십만 년이 걸린다고 하니, 우리가 맞은 빗방울 중에는 현생 인류의 조상이 없던 시절에 지구에 내린 빗방울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죽음도, 끝도 없이 영원히 순환하는 것. 아니, 그래야만 하는 것. 빗방울처럼 우리에게 무엇이 그러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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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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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미스터리한 인물들과 매일 우리가 무심코 보고 생각하고 자고 행동하는 일상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져..펼쳐보기

전체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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