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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득, 묻다
: 두 번
째 이야기

가발을 유행시킨 사람은 누구일까

가발을 유행시킨 사람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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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의 아버지와 음악가의 어머니를 처음 본 것은 중학생 때 음악교과서에 실린 초상화를 통해서입니다. 마치 미스코리아를 흉내 내려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구불거리는 긴 헤어스타일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특히 헨델은 음악의 어머니라고 해서 여잔지, 남잔지조차 헛갈렸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솔직히 요한 세바스티안 바흐와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의 얼굴을 생각하면 이목구비는 오간 데 없이 그 독특한 헤어스타일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때는 둘의 초상화를 볼 때마다 이 덤불 같은 머리카락 속에 얼마나 이가 많을까, 찜찜해했던 적도 있었는데요. 다행히 가발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바흐와 헨델은 대머리였던 걸까요. 그래서 가발을 썼을까요?

처음에는 유행이었습니다. 유럽에서는 16세기 후반부터 귀족들이 가발을 쓰기 시작했는데요. 상류층의 유행으로 시작된 가발 쓰기는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성년식 때 머리카락을 자르고 가발을 쓰는 의식을 치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절 커피 하우스에 가면 점잖은 차림을 한 남성들이 주머니에서 빗을 꺼내 가발의 머릿결을 정돈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고 하지요. 그 모습을 상상하면 참 우습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다 가발을 도난당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재에 따라 가발의 가격 차이가 컸는데 사람의 모발로 만든 것은 고가였고, 말이나 양의 털로 만든 것은 중저가였습니다. 이 중 인모로 만든 모발이 도둑의 표적이 됐던 거지요. 그나저나 인모로 만든 모발은 그렇다 쳐도 말이나 양의 털로 만든 가발은 한여름에 얼마나 더웠을까요. 그 가발 덕분에 지금의 우리로서는 바흐와 헨델이 대머리였는지 어쨌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관습은 왜 생겼을까요?

지금도 서양에서는 ‘얼굴이 크다’는 말은 전혀 욕이 아니지만 ‘머리가 작다’는 욕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머리 작다는 말이 머리 나쁘다는 말로 오해를 살 수 있어서인데요. 큰 머리는 두뇌와 남성성을 상징했고 이 때문에 머리를 더 크게 보이게 하려고 가발을 썼습니다. 이왕이면 크게 부풀린 헤어스타일을 가진 가발을 선호했겠지요. 그래야 남들에게 머리 좋은 남성으로 보일 것이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바흐와 헨델의 가발을 보면 구불구불 한껏 부풀린 것은 그렇다 쳐도 색이 그다지 멋지진 않습니다. 그저 흰색이거나 은회색일 뿐인데요. 그러고 보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도 초상화에서 흰색 가발을 쓰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흰색 가발을 볼 수 있었지요. 남자 주인공 팀의 직업은 변호사로 법정에 들어설 때 꼭 챙기던 소지품이 있었습니다. 바로 흰색 가발입니다. 법정 장면에서는 변호사뿐 아니라 판사도 가발을 쓰고 있는데 지금 시대에 생경하다 못해 생뚱맞게 보입니다.

그러나 영국법정에서 흰색 가발은 권위를 상징합니다. 법관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 우리말로는 ‘법복을 입는다’고 하는데, 영어권에서는 ‘in wig and gown’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복만 입지만 영국에서는 법복과 함께 가발을 쓴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데요. 가발이 법복과 같은 의미의 권위를 상징한다는 뜻이지요. 그리고 이때의 가발이 흰색인 것은 학식과 지혜의 연륜이 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노인의 하얗게 센 머리카락에서 착안한 것이지요. 실제로 우리나라에서도 흰머리가 많아도 염색을 하지 않는 판사들이 많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었는데요. 법조계는 흰 머리카락이 아우라를 발휘하는 직업군인 모양입니다.

그러나 머리카락이 희다고, 흰색 가발을 뒤집어쓴다고 다 현명해질까요. 18세기 아일랜드 작가 올리버 골드스미스가 보다 못해 이런 기록을 남겼습니다. ‘현명해 보이기 위해서는 남의 머리카락을 빌려 덤불을 이듯 자기 머리에 덮어 쓰는 것이 최고인 모양이다. 법과 물리학계 종사자들은 그러한 관습을 너무나 철저히 지키고 있어서 자기 머리와 가발을 도저히 별개로 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골드스미스의 조소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한때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홍콩, 호주, 싱가포르 등에서는 아직도 법조인들이 법정에서 가발을 쓰고 있습니다. 위생 문제도 심각하다고 하지요. 상급자임을 나타내기 때문에 가발을 잘 세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가발이 오래되고 탈색될수록 냄새가 심할 뿐 아니라 머릿니도 옮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법정 가발과 관련해 2007년에 BBC에서 설문조사한 결과입니다. 법조인들은 70퍼센트, 국민들은 42퍼센트가 찬성했다고 하는데요. 이 조사결과만 봐도 여전히 흰 머리 가발이 권위를 상징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여러 논란 끝에 영국에서는 2008년부터 형사 재판에서만 가발을 착용하도록 하고 있지만 홍콩에서는 더운 여름이 돌아올 때마다 이 문제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발을 최초로 쓴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B.C. 3000년대의 파라오였습니다. 파라오의 신성한 머리를 가리기 위해 개발했다고 하는데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체온을 낮추기 위해 일부러 머리카락을 밀고 특별한 경우에만 가발을 썼습니다. 그랬던 가발을 유럽으로 가져와 유행시킨 사람은 다름 아닌 율리우스 카이사르였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는 대머리였지요. 그렇지만 언제나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넘쳤던 카이사르가 대머리 콤플렉스가 있어서 가발을 애용했던 것 같지는 않고, 전리품으로 이용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로마인들의 머리카락은 대부분 검거나 갈색입니다. 카이사르는 갈리아를 정복하면서 그들의 금발을 잘라 가발을 만들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로 돌아갈 때 군인들에게 가발을 쓰도록 했지요. 힘에 굴복해 강제로 머리카락이 잘리면 수모와 수치를 느끼는 것은 만국 공통이니 피정복자들에게 굴욕과 패배감을 주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또 로마 군인들이 금발로 만든 가발을 쓰고 돌아오는 모습을 로마 시민들이 보면 자국의 승리를 실감할 수 있었겠지요. 말 그대로 금의환향이 따로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에서 시작된 가발은 대리석 흉상에 각기 다양한 가발을 제작해서 원할 때마다 바꿔 씌우는 유행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아마 소수 상류층의 취미생활 정도였겠지요.

가발의 전성기인 18세기, 법조인과 물리학자, 음악가…… 너 나 할 것 없이 가발을 썼던 이유가 머리 좋은 남성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고 생각하면 바흐와 헨델, 뉴턴의 초상화가 어쩐지 달리 보입니다. 지금은 그냥 줘도 안 가질 길고 구불거리는 하얀 가발, 이처럼 유행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 맥락은 고대 로마 이후로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바로 우월해 보이기 위해서지요. 누가 가발을 유행시켰느냐 묻는다면, 바로 그런 인간의 심리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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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 Hand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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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선경 집필자 소개

1970년 전북 부안 출생, 1993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글을 쓰고 있으며, 2011년부터 매일 아침 KBS 클래식 FM [출발 FM과 함께]에서 [문득 묻다], [그가 말했다] 등의 글로..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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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문득, 묻다 : 두 번째 이야기 | 저자유선경 | cp명지식너머 도서 소개

미스터리한 인물들과 매일 우리가 무심코 보고 생각하고 자고 행동하는 일상에 대해 문득 궁금해진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덕분에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져..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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