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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 보여준 달콤한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12월 25일을 런던에서 보내고자 하는 이들이 굉장히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직접 겪은 런던에서의 크리스마스는 영화 속의 크리스마스의 달콤함과는 상당히 거리가 멀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내 생애 최악의 크리스마스?
파리에서 살던 나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런던행 야간 버스에 올랐다. 아무 계획도 없이 그저 ‘떠나자’라는 생각에 곧장 티켓을 예약하고 그 다음날 바로 떠났으니,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12월 22일 버스를 타고 도착한 23일 오전의 런던. 파리에서 보낸 화려하고 시끌벅적한 크리스마스 시즌에 비해, 아직은 너무 썰렁하기만 한 런던의 23일이 이상하다 싶었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 것일 거라며 애써 마음을 달랬다. 하지만 왜 그 흔한 크리스마스 트리가 번화가인 빅토리아 역 주변에도 안 보이던지.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미리 예약해 둔 민박집에서 짐을 풀고 난 후, 함께 여행을 온 동생 두 명과 이스트본행 열차를 예약하고서 곧바로 런던 여행을 시작했다. 하지만 첫날은 밤새 야간 버스를 타고 왔던지라 쉬엄 쉬엄 다니다보니 한 것도 없이 하루가 훌쩍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게 되었는데, 이게 웬 일이람! 기대를 잔뜩 했던 런던에서의 크리스마스 이브는 영화 속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크리스마스 트리라곤 트라팔가 스퀘어과 빅 벤 근처뿐이었다. 허탈하고 억울한 마음에 크리스마스 이브를 이렇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한 우리는 밤 늦도록 시내를 돌고 또 돌았다.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불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정신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미리 예약해 둔 이스트본행 기차를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저녁 9시도 안 된 시간이라 다음 기차를 타면 되겠지 싶어 기차역으로 갔는데, 아. 뿔. 싸. 아까 놓친 기차가 오늘의 이스트본행 마지막 열차라는 것이다! 평소 같았으면 막차가 24시까지 있었을 텐데, 크리스마스 이브라 기차가 일찍 끊긴다고 하는 게 아닌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5일 크리스마스에는 열차가 아예 없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결국 크리스마스 날에도 런던에 갇히게 된 우리는 예정에도 없던 스케줄인 탓에 머물던 민박집 주인에게 재워달라고 조르고 졸라 겨우 잠을 청할 수 있었다. 마굿간에서 난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 이브의 의미가 참으로 절실히 와 닿았던 하루였다.
〈러브 액츄얼리〉에서의 달콤한 크리스마스만 보고 크리스마스에 맞춰 런던 여행을 결심했다면 오산이다. 크리스마스에는 런던의모든 교통 수단(기차, 버스, 택시, 심지어 비행기까지)이 운행하지 않을 뿐더러 상점과 박물관 모두 문을 닫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공원에 앉아 쉬는 것이 전부다. 그렇게 썰렁한 런던에서의 크리스마스를 보낸 다음날. 이젠 드디어 런던을 떠날 수 있겠구나 싶어 부푼 마음에 기차역으로 갔더니, 이번엔 ‘박싱 데이’라며 크리스마스 다음날까지 기차 운행을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게 아닌가! 다행히 이스트본행 버스가 딱 한 대가 있다고 해서 무작정 1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런던을 떠나 이스트본에 도착하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왜 그렇게 친구가 반갑던지~.
참고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큰 명절인 영국의 크리스마스는 자신의 고향으로 가거나 가족끼리 조촐하게 보내는 문화 탓에 이방인의 눈에는 썰렁하게만 비춰진다. 그래서일까? 영화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가족과 연인들의 달콤한 사랑 이야기들이 크리스마스에 등장하는 것이다. 만약 이 시즌에 런던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차분한 분위기를 오히려 즐겨 보는 건 어떨까? 크고 작은 성당들을 찾아가 기도를 해보거나, 런더너들의 공원을 내가 주인인 양 마음껏 돌아다녀 보는 등 텅 빈 런던의 모습을 보는 것도 꽤 새로운 기분이 들 것이다. 아울러 크리스마스 다음날인 박싱 데이는 파격적인 세일을 하는 날이라 런던에 있다면 세일 시즌의 즐거움을 누려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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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 콘텐츠는 2015년 2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현지 사정에 의해 정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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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내 생애 최악의 크리스마스 – ENJOY 런던, 김지선 외, 넥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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