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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행복민국'의 무식환 대통령은 장군 출신. 그는 어느 날 밤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기 위해 장군에서 스스로 대통령이 되었다. 3권을 장악한 그가 제일 먼저 한 것은 추종자들로 구성된 '조국 수호 비상 대책위'에서 '사회 질서 수호법'을 만들어 국민들에게 침묵과 무비판적 충성을 강요하는 일이었다.
이 법의 조문은 딱 두 가지였는데, 제1조는 "누구든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수 없다"였고, 제2조는 "위반자는 징역에 처한다"였다. 그리고 부칙은 "이 법은 제정되기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국민들은 당연히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 입이 있어도 없는 체하는 '3체 현상'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멍청한(?) 사나이가 "이게 도대체 무슨 법이냐?"라고 외쳐댔다. 이 말은 정당하다. 악법이므로. 그렇다면 오늘날의 형법 입장에서 볼 때 사회 질서 수호법은 왜 악법인가?
예문
① 독재자가 입법부가 아닌 곳에서 제 맘대로 제정했기 때문에.
② 법의 내용이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③ 그 법을 국민들이 지키려 해도 도저히 지킬 수 없기 때문에.
④ 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한다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되기 때문에.
정답
④
해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사회 속에서 수행하는 무수한 행위 중에 어떠어떠한 행위가 범죄이며, 이 범죄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형벌을 부과하겠다는 것은 도대체 누가 정했을까? 물론 '국가가 정해놓았다'는 것이 정답이다. 구체적으로는 입법부(국회)가 형법을 제정하고, 행정부와 사법부가 이것을 해석 ・ 적용해 시행한다. 이처럼 죄와 벌은 미리 국가가 법률로 정해놓아야 한다는 원칙을 '죄형법정주의'라고 한다.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죄형법정주의를 의문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근대 국가가 성립하기 전에는 그 반대였다.
죄와 벌은 한마디로 말해 국왕이나 재판관의 마음대로였다. 국왕이나 재판관은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식으로 백성들을 붙잡아다가 고문하고, 투옥하고, 처형했음은 세계사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다. 이렇게 죄와 벌은 권력자의 수중에서 임의대로, 자의적으로 적용되고 행사되었으므로 그 시대는 죄형전단주의(罪刑專斷主義)였던 것이다. 죄형전단주의하에서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지켜질 수 없었다. 인류가 이러한 죄형전단주의에 반항해 죄형법정주의라는 대원칙을 확립한 것은 전적으로 오랜 투쟁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근세에 접어들면서 형성 ・ 대두된 시민 계급은 국왕의 일방적인 형벌권의 남용으로부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고 싸웠고, 이 투쟁은 당시의 계몽주의 사상, 3권 분립 사상, 자유주의 인권 사상 등이 배경이 되었다. 그 결과 영국에서는 권리 청원(1628년), 인신 보호법(1679년), 권리 장전(1689년)을 통하여,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 대혁명(1789년)을 통해, 미국에서는 대륙 회의의 권리 선언(1774년), 버지니아 권리 선언(1776년), 미국 헌법(1787년)을 통하여 죄형법정주의는 근대 시민 국가의 형법 원리로서 자리 잡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후 성립된 모든 근대 국가는 죄형법정주의를 채택, 선언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건국 이후 헌법에서 비로소 이를 선언했고, 형법이 이를 받아 규정함으로써 근대 형법의 기본 원리의 하나인 죄형법정주의는 이 땅에서도 확고하게 성립되어 있다. 죄형법정주의는 "법률이 없으면 범죄는 없다"와, "법률이 없으면 형벌도 없다"라는 두 개의 명제를 내용으로 하나, 인권 보호적 차원에서 의미가 더한 것은 바로 후자의 경우다. 이 원칙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이 원칙으로부터 파생되는 다음 네 개의 원칙 때문이다.
첫째는, 관습 형법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즉, 법관이 적용할 형벌에 관한 법은 오직 성문의 법률뿐이고, 한 국가 ・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과 전통적인 불문(不文)의 법은 적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명확성의 원칙이다. 어떤 행위가 형법에 의해 금지되는 행위인지가 명확해야 한다. 누구나 알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건전한 국민감정을 해치는 자는 처벌한다"는 조항은 불명확하기 짝이 없어서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되는 조항이 된다. 나아가 행위의 효과로서 부과되는 형벌도 그 내용이 명확해야 한다. 형기를 정하지 않은 채 단지 "징역에 처한다" 또는 "처벌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형벌의 종류와 형기를 전혀 정하지 않은 경우를 절대적 부정기형(不定期刑)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셋째는, 형법을 해석함에 있어서 법조문의 문장과 표현대로 엄격히 해석해야 하고, 해석자(수사 기관, 재판 기관)가 자의적으로 유추 해석을 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만일 유추 해석을 허용하면 죄형법정주의는 붕괴되고 유추 해석을 통한 자의적인 형벌권의 남용이 생겨 국민의 자유와 인권은 보장될 수가 없는 것이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라는 속담은 바로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 자의적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행위자에게 유리하거나 형을 경감하는 유추 해석까지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넷째는, 형법의 효력은 그 형법이 제정 또는 개정되기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 소급해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가령 아파트촌에서 창문을 통해 남의 집 내부를 들여다보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이런 행위를 범죄로 규정한 형법이 제정된 경우, 그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는 법이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한다.
요컨대 죄형법정주의는 관습 형법의 금지의 원칙, 명확성의 원칙, 유추 해석 금지의 원칙, 형법 효력 불소급의 원칙이라는 네 가지를 기둥 삼아 범죄인은 물론, 모든 국민에 대하여 자유의 파수꾼으로서 언제까지나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될 소중한 법 원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
누구든지 사회 질서를 어지럽힐 수 없다. 위반자는 징역에 처한다. 이 법은 제정되기 이전의 행위에 대해서도 적용한다는 내용의 사회 질서 수호법은 입법부가 아닌 독재자의 마음대로 만든 것이므로 악법일 뿐 아니라, 형법적으로는 명확성의 원칙, 형법 효력 불소급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문은 모두가 정답일 수 있으나, 형법적으로는 죄형법정주의에 위반된다는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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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 본문의 표기는 현행 '한글 맞춤법 규정'에 따랐으나, 법률의 명칭은 '법제처 국가법령정보센터' 사이트의 표기를 따랐음.
- ・ 법률의 재 ・ 개정이나 판결 일자가 괄호 안에 부가적인 설명으로 들어갈 때는 '○○○○. ○○. ○○'로 표기하였음.
- ・ 법률 조항의 경우, 해당 권에 관한 법인 경우 법률명을 밝히지 않고 조항만 표시했음.
- ・ 본 콘텐츠는 2016년 7월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법개정시 정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 위 사례는 일반인들의 법률 공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실제 사건을 토대로 각색되었습니다.
글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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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죄형법정주의 – 재미있는 법률여행 3-형법(개정판), 한기찬,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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