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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족감은
사자도 온순하게 만듭니다.
"밥은 먹고 다니니?"
"식사하셨나요?"
"밥, 꼭 챙겨 먹고 다녀!"
일상에서 자주 하는 인사말입니다. 진짜 밥을 먹었는지가 궁금해서가 아니라 서로 안부를 묻거나, 부모님이 자식을 걱정할 때 자주 하는 정겨운 말들이지요. 어떤 분들은 배우자가 밥도 챙겨주지 않는다고 섭섭해하기도 합니다.
저는 가끔 방문 상담을 갔다가, 점심까지 얻어먹고 오기도 합니다. 저 같은 훈련사를 챙겨줄 만큼 강아지를 사랑한다는 의미인 것 같아 그 마음이 참 고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밥 때문에 따뜻한 정도 느끼고 한편으로 섭섭함도 느낍니다. 이제 밥 굶는 일은 많지 않은데도 이런 마음이 드는 것을 보면 밥 문제는 참 예민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과연 먹는다는 게 뭘까요?
예전 한 신문에서 북한정치범수용소에서 탈출한 어떤 분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간 이야기는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수용소의 생활은 매 맞는 곳, 배고픔, 노동뿐인 곳이었습니다.
"어느 날 배가 너무 고파서, 이곳저곳을 뒤지던 중 주먹밥이 보여서 몰래 먹게 되었습니다. 그 주먹밥이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와서 먹을 저녁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멈출 수 없어 그 밥까지 먹었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저를 죽일 듯이 때렸습니다.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훈계하는 매질이 아닌, 먹이를 빼앗긴 짐승의 모습으로 나를 때렸습니다."
기사 내용과 반려견의 먹이 문제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배고픔에 대한 것은 인간이나 강아지나 모두 생존과 직결된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것 같아 소개합니다.
강아지가 너무 많이 먹거나, 너무 안 먹어서 고민이라는 분이 많습니다. 보호자가 밥을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반려견의 식습관이 달라지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울 것입니다. 처음 입양을 하고 일주일 정도는 입양 전과 똑같이 밥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갑작스럽게 식사 방법을 바꾸면 강아지에게 무리가 갈 수 있습니다. 강아지들은 저마다 다르고, 환경 또한 달라서 어떤 정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입양 후 일주일이 지나고 나면 저는 자율급식을 권장합니다. 강아지들에게 밥을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방법이지요. 이 자율급식과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평소 하루 종이컵으로 두 컵씩, 아침저녁으로 총 네 컵씩 먹는 반려견이 있습니다. 먹이를 보면 무서울 정도로 순식간에 먹어치웁니다. 의뢰인은 반려견이 항상 이렇게 배고파한다고 합니다.
보호자가 먹이를 주려고 컵만 들어도 점프를 하는 등 흥분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강아지에게 자기 스스로 밥 양을 조절할 수 있도록 자율급식을 제안했습니다. 자율급식으로 바꾸면서 며칠 동안 평소의 3배에서 4배나 많은 사료를 먹었습니다.
의뢰인은 이러다 강아지가 어떻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먹는 양이 늘어난 만큼 대변 보는 횟수도 많아졌고 마시는 물의 양도 늘었습니다. 그러자 숨도 헐떡이고, 묽은 변을 봅니다. 의뢰인의 걱정은 나날이 늘어만 갔습니다. 저는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해보자고 했습니다. 자율급식에 대한 분명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째 접어들자, 이제는 밥을 줘도 남기기 시작합니다. 밥을 가득 담아줬는데, 냄새만 맡고 돌아갑니다. 보호자가 전날 저녁에 종이컵으로 6컵이 들어가는 먹이그릇에 사료를 가득 부어놓아도 만 하루가 지날 때까지 그 사료를 다 먹지 않게 되었습니다.
자율급식을 시작하고 약 1개월이 지나자 그 강아지는 대략 24시간 동안 5~6컵 정도를 먹게 되었습니다. 예전보다 1컵에서 2컵 정도를 더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예전과 달리 사료를 보고 점프를 하거나 흥분하지 않고 보호자를 재촉하지도 않습니다.
그 강아지가 과연 한 컵을 더 먹게 되었기 때문에 그 양에 만족해서 이런 변화가 생긴 걸까요? 정말 그 강아지가 원했던 것이 종이컵 한 컵 정도의 사료를 더 먹는 것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강아지가 그토록 원하던 것은 사료가 아니라, 먹이에 대한 안정감이었습니다. 바꿔 말하면 언제든 자신이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환경이었습니다.
강아지에게 사료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는데, 아침저녁으로만 그것도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주인이 줄 때에만 먹을 수 있으니 위기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주인이 집에 오지 않으면 먹이를 먹을 수 없다는 불안감이 그 강아지에게 엄습했던 것이지요.
옛날 야생의 개들은 그리 풍족하게 지내지 않았습니다. 사냥 성공률도 그다지 높지 않았고요. 사냥감이라도 잡는 날에는 맘껏 먹어놓기 위해 정신없이 먹고 서로 치열하게 싸웠을 것입니다. 먹이는 곧 생존이니까요. 애완용으로 길러지는 다람쥐는 가을이 되어도 먹이 활동을 하지 않고, 겨울이 되어도 동면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늘 그들의 먹이그릇에는 먹이가 들어 있으니까요.
만족감은 사자도 온순하게 만듭니다. 자율급식을 하기 전에 그 보호자는 강아지의 배고픔을 이용해 앉아, 엎드려, 기다려 같은 것들을 가르쳤습니다. 영리한 강아지는 보호자가 시키는 대로 하면 먹을 것을 얻어먹을 수 있으니 필사적으로 따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배운다고 해도 먹이에 대한 안정감은 얻을 수 없습니다. 제가 자율급식을 제안한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강아지가 먹이를 보면 흥분하는 이유가 먹이, 즉 생존에 대한 집착이었던 것입니다.
교육을 잘 따라가는 강아지가 될 수는 있었지만 그 강아지는 늘 못 먹을지도 모른다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을 것입니다. 부족한 물과 먹이는 반려견들의 감정을 단순하게 만듭니다. 오로지 먹기 위해서 행동하도록 유도하는 것이지요. 그런 상태에서 보호자와의 복잡한 상호작용이나 교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강아지 입장에서는 보호자를 오로지 '먹이를 주는 고마운 사람'으로만 인식할 수도 있습니다. 자유롭게 먹이를 먹을 수 있다면, 당신의 반려견은 훨씬 더 여유로워질 것입니다. 그러면 더 많은 생각을 가지고 보호자를 대할 수 있고, 먹이에 대한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돼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요즘 반려견의 먹이로 생식을 주는 분이 많아졌습니다. 반가운 일입니다. 반려견들도 언제나 신선한 음식을 먹을 권리가 있습니다. 생식을 주는 분들이라면 자율급식이 더욱 어렵습니다. 생식을 하루 종일 거실에 두는 게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 저는 사료는 항상 거실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생식을 따로 챙겨주라고 말합니다. 이럴 경우, 대부분 사료는 안 먹고, 아침저녁으로 생식만 먹게 되지요. 그렇다면 사료를 그만 준비해도 괜찮습니다. 자율급식으로 바꾸는 이유는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는 불안감을 없애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료가 항상 있는데 먹지 않는다면 그 강아지에게는 이런 불안감이 없다고 생각해도 좋기 때문입니다.
1. 사료를 일주일가량 평소 주던 양의 1.5배 정도 더 준다.
2. 사료를 2~3번에 나눠서 주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먹을 양을 정확히 측정해서 조금씩 바닥에 뿌려놓는다.
이때 거실 바닥도 좋고, 산책을 나가 잔디 같은 곳에 뿌려주어도 좋습니다.
3. 반려견이 바닥에 있는 사료를 하나씩 주워 먹도록 유도한다.
사료를 바닥에 뿌려놓으면 반려견이 바닥에 있는 사료를 찾는 동안 코를 많이 사용할 수 있어서 더욱 안정적으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사료도 한 알씩 먹기 때문에 탈이 날 가능성도 낮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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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을 키우는 사람과, 키우려는 사람이 알아야 할 거의 모든 것지나가다 예뻐서, 혼자 있기 외로워서, 아이들의 정서에 좋을 것 같아서…. 우리가 개를 키우는 이유다...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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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반려견 자율급식 –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강형욱, 동아일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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