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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막스 플랑크는 에너지의 이동을 설명하기 위해 작은 에너지 덩어리인 양자(量子, quantum)라는 개념을 제시했지만 그다지 진지하게 접근한 것은 아니었다. 자신이 제시한 양자 이론은 단지 개념적으로 가정한 것이었고, 누군가 수학적으로 완벽한 답을 구해낸다면 곧 제대로 된 이론으로 대치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가정은 옳았다. 옳았을 뿐만 아니라 원자 내부에서 벌어지는 신기한 현상을 설명하는 전혀 새로운 물리학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물체들의 운동을 다루는 뉴턴 역학과 달리 원자 수준의 미세한 세계의 운동을 다루는 양자역학은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플랑크의 순발력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이다. 원자의 내부는, 불가능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으로 가득 찬, 모든 것이 뒤죽박죽인 세계였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양자 개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광전 효과에 관한 연구(새로운 관점, 전자기파의 탄생 항목 참조)는 플랑크의 양자 개념을 빛에 적용시킨 것이었다. 아인슈타인은 광자가 전자를 튕겨내기에 충분한 정도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튕겨져 나온 전자의 흐름이 곧 전류라고 생각했다. 맥스웰 방정식에 의한 영향으로 빛이 파동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었으므로 이 이론은 처음에는 그다지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물리학에서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이(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한 성질) 처음으로 주목받게 된 때라고 할 수 있다.
빛에 지능이?
물리학자들을 괴롭힌 또 하나의 문제는 마치 빛이 실험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었다. 빛을 파동이라 가정하고 파동으로서의 특성을 알아보려는 실험을 하면 빛은 파동처럼 움직였고, 입자의 특성을 살펴볼 수 있는 실험을 하면 영락없이 입자로서의 성질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널빤지에 뚫린 두 개의 긴 홈(slit)을 통과한 빛은 간섭 효과에 의해 줄무늬를 만들어내는데, 빛을 점점 어둡게 하면 어느 순간 하나의 홈에 한 개의 광자만이 통과하는 순간이 있게 되고, 광자가 홈을 통과하는 순간 널빤지 반대편에서 보았을 때 홈을 통과하는 빛이 보여야 한다. 하지만 사진으로 촬영된 모습은 하나같이 간섭에 의한 줄무늬였고, 이는 빛이 파동이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마치 한 개의 광자가 스크린에 몇 개의 홈이 있는지를 알고 있어서, 홈이 두 개면 아무리 광량을 낮추어도 두 개의 홈을 동시에 통과하면서 간섭무늬를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광자가 출발한 후에 두 개의 홈 중 하나를 닫으면 광자는 열려진 홈만을 통과했다. 광자가 통과한 홈이 어떤 것이지를 감지하는 장치를 장착하자 신기하게도 광자는 더 이상 파동처럼 보이지 않았고 간섭무늬도 나타나지 않았다.
물리학자들은 이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었는데, 1924년 프랑스의 물리학자 루이 드 브로이는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입자는 입자인 동시에 파동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 이야기는 파동-입자의 이중성은 모든 물질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모든 물질은 고유의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1927년, 이 이론은 전자가 분명히 파동이면서 빛과 같은 회절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보다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후 전자보다 큰 입자인 광자와 중성자도 파동의 성질을 갖는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드 브로이의 이론은 그의 박사학위 논문의 내용이었다. 그는 전자란 결국 전자가 위치할 수 있는 궤도 주위에 존재하는 파동이며, 각 궤도의 에너지 수준은 결국 파동의 고조파들이므로 각각의 파동이 서로를 받쳐주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자신의 이론은 결정격자(crystal lattice)에 의해 전자가 회절되는 것을 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27년 미국과 스코틀랜드에서 별도로 실시된 실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고, 이 업적으로 드 브로이와 더불어 실험에 참여한 두 명의 학자가 1937년에 노벨상을 받았다.
드 브로이의 연구의 중요성은 파동-입자 이중성이 모든 물질에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다는 데 있다. 드 브로이 방정식은 입자의 운동량과 파장의 곱이 항상 플랑크 상수가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플랑크 상수는 매우 작은 값이기 때문에 분자의 크기보다 큰 물질의 파장은 매우 작아야 한다. 즉 사람이나 자동차의 파장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가 거의 없지만, 작은 입자를 다룰 때는 얘기가 달라지는 것이다.
발전은 혼자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고전 역학은 물리학계에서 ‘기적의 해(annus mirabilis)’라고 부르는 1666년에 뉴턴에 의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어 1905년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이 발표되면서 양자역학의 시작과 함께 물리학은 제2의 탄생을 맞이한다. 두 사람 모두 다른 여러 학자들이 이루어놓은 연구의 기반 위에서 자신의 업적을 이루었으며, 두 사람의 연구는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발전한다.
세계를 바꾼 방정식
1905년 아인슈타인의 논문이 발표된 후 입자가 파동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이상 불가능한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의 특수 상대성 이론 논문의 부록에 포함된 방정식 때문이었는데, 이것은 나중에 다듬어진 형태에 비하면 좀 복잡하긴 했지만 그 뜻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에너지 = 질량 × 광속의 제곱
E = mc2
이것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일 것이다.
세계를 바꾼 이 방정식은 뉴턴의 《프린키피아(Principia)》 못지않게 중요했으며, 이것이 말하는 바는 에너지가 결국 물질의 다른 형태라는 것이었다. 또한 물질은 매우 거대한 크기의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여기가 바로 원자력과 핵무기의 출발점이다. 원자의 핵을 뒤흔들어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얻어내기 때문이다.
러더퍼드와 보어의 이론에는 뉴턴 역학의 테두리 내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전자는 음전하를 띠고 있으므로, 양전하를 띤 핵에 끌려야만 한다. 그러므로 궤도에 머물기 위해 가속을 해야만 하므로 에너지가 필요한데 전자는 오히려 전자기파의 형태로 끊임없이 에너지를 방출하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에너지가 계속 방출된다면 전자는 곧 핵에 끌려 부딪히고 원자는 곧 부서지는 것이 정상이었다. 사실 이렇게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수백억분의 1초에 불과할 테니 ‘곧’이라고 할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시간이기도 하다. 이 문제를 풀고자 많은 물리학자들이 매달렸는데, 오스트리아의 에르빈 슈뢰딩거가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
독일 울름에서 태어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아버지의 사업 때문에 어린 시절 이탈리아와 스위스 등지를 옮겨가며 살아야 했다. 나중에는 천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어린 시절의 그는 전혀 똑똑한 아이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이 지진아라고 생각해 그의 아버지는 상담을 받았을 정도였다. 취리히 공과대학의 입학시험에서 떨어진 것도 수학을 낙제했기 때문이었고,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 직원이 된 것도 교수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다.
특허청 일을 잘 했던 아인슈타인은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고 자신의 지적 열정을 물리학에 쏟아 부었다. 혼자서 물리학 연구를 계속하며 광전 효과, 브라운 운동, 특수 상대성 이론과 같이 세상을 뒤흔든 5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 모두가 특허청에 근무하던 때였다. 이 논문들로 인해 1909년에 취리히에서 교수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연구 성과를 인정받아 1921년에는 노벨상을 받기에 이른다. 중력을 고려하지 않고 등속 운동을 지속하는 물체에 대해서만 성립하는 특수 상대성 이론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것이 일반 상대성 이론 연구였다. 일반 상대성 이론 연구는 생각보다 힘들었고, 1916년에야 논문이 발표되었다.
상대성 이론은 우리가 가지고 있던 공간, 시간, 물질, 에너지에 대한 관념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이 상대성 이론의 타당성을 일부나마 확인하자(빛의 속도로 항목 참조) 아인슈타인은 그야말로 전 세계적인 슈퍼스타가 되었고,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이주한 아인슈타인은 프린스턴 대학에서 근무하며 여생을 보냈다.
원자폭탄의 개발이 이루어지도록 초기에는 적극적으로 활동했지만 나중에는 이를 후회하고 핵무기 폐기 운동을 전개했으며 이스라엘 건국에도 참여했다. 끝까지 이론 물리학자로서 살았던 그는 우주의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통일장(統一場, unified field) 이론을 완성하려고 애썼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떴으며 양자역학의 발전을 끝까지 받아들이지 않았다(입자일까? 파동일까?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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