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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근본적인 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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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관점에서 원자와 원소는 우주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의 일부이다. 모든 금은 금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수소는 수소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듯이 원소는 순수한 화학적 물질로서 동일한 원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반면에 이산화탄소는 탄소와 산소 원자들을 포함하고 있다. 이처럼 화합물은 두 개의 원소 혹은 더 많은 원자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고대의 물질 이론에서는 원소와 원자가 이와는 다른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네 가지 혹은 다섯 가지의 원소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이 네 가지 ‘근원’ 즉 물, 불, 공기, 흙의 네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르쳤다. 이 모형은 서구 역사상 가장 위대하고 영향력이 컸던 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다시 다듬어지고 완성된다.

플라톤은 엠페도클레스가 뿌리라고 부른 것에 ‘원소(elements)’라는 이름을 붙였고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용어를 사용했다. 그에 따르면 모든 원소는 두 가지의 특성이 있다. 각각의 특성은 뜨겁거나 찬 것, 건조하거나 습한 것과 같이 두 종류의 대조적인 특성을 지닌다. 따라서 흙은 차갑고 건조하지만 물은 차갑고 습한 성질을 가지며, 공기는 뜨겁고 습한 것이지만 불은 뜨겁고 건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이 이론을 인체에 적용하여, 인간의 몸에 존재하는 뜨겁고, 차고, 건조하고, 습한 네 가지 체액의 균형에 따라 건강 상태가 결정된다는 이론을 세우기도 했다. 놀랍게도 이 이론은 19세기까지 의학계에 받아들여졌다.

광택이 나는 금속 구리는 구리 원자로만 이루어져 있는 반면, 푸른색을 띠는 황산구리 결정은 구리, 황, 산소 원자의 복합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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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이론에 따르면, 모든 물질은 자신을 구성하는 원소와 연계된 고유의 영역을 가지고 있으며 그곳으로 가려는 성질을 갖고 있다. 흙은 가장 아래에 위치하고 물, 공기, 불이 차례대로 그 위에 존재하는데, 이것은 물질계에서 일어나는 일정한 형태의 움직임을 설명해준다. 즉, 무거운 물체는 땅으로 떨어지는데 흙이 그것들의 주요한 원소이기 때문이다. 연기는 위쪽에 존재하는 불과 공기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위로 올라갈 수밖에 없다. 또한 모든 물질은 자신의 고유 영역에 일단 자리를 잡게 되면, 특별한 외부적 요인이 없는 한 그 영역에서 움직이지 않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들 네 가지 원소에 더해, 매우 다른 성질을 지닌 또 하나의 원소 ‘에테르’를 가정했다. 제5원소라고 불리기도 하는 에테르의 개념은 학자들이 천 년이 넘도록 긍정과 부정을 반복하며 씨름하는 동안 완전히 폐기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네 가지 원소를 우화적으로 묘사한 12세기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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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각에서 본다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이 훨씬 물리학적 진실에 가깝지만,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엠페도클레스 등 당대의 위대한 학자들은 원자론보다는 4원소설(四元素說)을 지지했다. 중세 초기의 아랍 학자들이 고대 그리스의 이론을 다시 꺼내 들었을 때 기본이 된 이론도 4원소설이었다.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의 문헌은 곧이어 유럽의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리하여 고대 그리스인의 세계관은 2천 년이 넘도록 물질의 성질에 대한 사상의 토대로 자리 잡았다.

아리스토텔레스(c.384~322BC)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는 마케도니아의 스타게이라에서 궁정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다. 18세 무렵 델파이 신전의 신탁에 따라 플라톤의 아카데미에서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로 갔다. 그는 플라톤의 제자 중 가장 뛰어나고 유명한 제자가 되었다. 기원전 342년에는 마케도니아로 다시 돌아가 훗날 알렉산더 대왕이 되는 필립 2세의 아들 알렉산더를 가르치는 스승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의 초기 철학자들이 연구한 내용을 꼼꼼히 분석하여 자신만의 시각을 구축했다. 그는 물리학을 포함한 거의 모든 분야를 연구했다. 그의 가르침은 아랍의 학자들에 의해 보존되었으며 12~13세기에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 사상은 18세기까지 서구의 과학을 지배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으로는 변화라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었고, 원자론은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빈 공간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반면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변화를 다른 상태로의 변환으로 설명하려는 이론을 제시했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A가 B로 변하고’, ‘B가 A로 되돌아간다’는 개념인데, 이것이 질량보존의 법칙과 유사하다는 것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예를 들어, 하나의 조각상이 만들어지려면 돌덩어리가 돌덩어리로 존재하는 것을 멈추어야 조각상이 된다. 어른이 되기 위해 소년은 아이로 존재하는 것을 멈추게 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변화의 여지가 있는 것은 지금과 다른 것이 될 가능성을 이미 가지고 있으며, 그 가능성은 변화가 실제로 일어났을 때 실현되는 것이고 또한, 일단 변화가 일어나면 더 이상 변화할 가능성은 상실되어 ‘실체’만 남는다고 했다.

에테르: 2천5백 년 동안 찾아낼 수 없었던 매개물
흙, 물, 공기, 불에 더해진 제5원소로서 에테르의 개념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되었다. 에테르는 지상에 존재하지 않는,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로 간주되었다. 또한 신의 영역으로 여겨져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라 믿었다. 에테르는 원운동만 한다고 생각되었는데 이는 원이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형태라고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에서 에테르의 밀도가 높은 지점에 천체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으므로 천체의 존재를 설명하는 논리로도 타당하게 여겨졌다. 르네 데카르트(프랑스의 철학자, 수학자)는 에테르가 받는 압력을 눈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에테르의 개념은 19세기에 들어서 제임스 맥스웰(스코틀랜드의 물리학자)이 빛을 비롯한 전자기파의 전달을 설명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제시했다.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인 핸드릭 로렌츠는 1892년에서 1906년까지 전자기파를 파동의 개념으로 보면서 이를 전달하는 매질로서 에테르가 존재한다는 이론을 진전시켰지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1905년에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면서 에테르라는 개념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최근에는 일부의 우주론자들이 우주를 채우는 개념으로서의 에테르를 암흑물질이라는 개념과 연계해 다시 제기하고 있기도 하다.

인도의 원자론

그리스의 철학자들만 원자론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다. 인도의 철학자들 역시 물질이 아주 작은 입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리스인과 인도인 중 누가 먼저 원자론을 생각해냈는지 혹은 각각 독립적으로 발전시킨 것인지, 어느 한 곳이 영향을 끼친 것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다. 인도의 철학자였던 카나다(카시야파라고도 함)는 기원전 6세기 혹은 2세기에 살았던 인물이다(역사학자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하다). 만약 기원전 6세기의 인물이었다면 카나다의 이론이 그리스에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인도에서도 아리스토텔레스와 마찬가지로 물질이 불, 물, 공기, 흙, 에테르의 다섯 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는데, 카나다의 원자론은 이 다섯 가지의 원소와 서로 다른 형태의 다섯 가지 원자를 가정하여 원소 이론을 보완한 형태였다. 그는 원자를 파르마누(parmanu)라고 불렀고 원자끼리는 서로 당기는 성질이 있다고 주장했다. 두 개의 원자가 모인 것은 드위누카(dwinuka)라고 했는데 드위누카는 자신을 구성하는 두 원자의 특성을 모두 보인다고 생각했다. 세 개의 원자가 모이면 비로소 물질의 구성단위로서 눈에 보이는 가장 작은 크기의 입자가 된다고 보았다. 물질의 다양한 특성은 다섯 종류의 파르마누의 조합과 비율에 따라서 결정되며, 카나다의 이론을 바탕으로 바이세시카 학파는 원자가 24가지 특성의 조합을 가질 수 있다는 이론을 발전시켰다. 카나다의 원자론에서 물질의 물리적, 화학적 변화는 파르마누가 새로운 형태로 재결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리스 학자들과는 달리 카나다는 원자가 생성되거나 소멸할 수는 있지만, 물리적 혹은 화학적 방법에 따라 파괴될 수는 없다고 믿었다.

카나다 혹은 카시야파
인도의 철학자인 카나다(Kanada)는 인도의 구자라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카시야파(Kashyapa)였으나, 소년 시절에 자그마한 사물들에 푹 빠져 있는 것을 지켜본 현자 무니 소마샤라마가 곡물의 낱알을 뜻하는 카나(Kana)의 의미를 담아 카나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의 주된 관심 분야는 일종의 연금술이었다. 그는 음식을 먹다가 음식 덩어리들을 보고 물질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론을 떠올렸고, 음식을 잘게 부수다 보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단계에 이를 테지만, 여전히 눈에는 보이지 않는 크기의 작은 음식 덩어리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인도에는 기원전 1세기경에 자이나교각주1) 가 주장한 원자론도 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영혼을 제외한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의 원자는 고유의 맛과 향, 색깔 그리고 두 가지 특성의 촉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원자는 일반적으로 직선 운동을 하지만 다른 원자에 이끌리게 되면 곡선 궤도를 따를 수도 있다. 게다가 원자는 극성을 가질 수도 있어서 서로 끌어당기는 특성도 있다고 보았다. 원자가 결합하면 여섯 가지의 ‘집합체(aggregates)’ 즉 흙, 물, 그림자, 감각물, 업의 물질각주2) , 부적절한 물질각주3) 의 여섯 가지 중 하나가 된다고 했다. 자이나교의 원자론을 파고 들어가면 원자의 운동과 결합, 반응에 대한 복잡한 이론을 만나게 된다.

이슬람의 원자론

그리스와 인도의 원자론 중 어느 것이 먼저였는지 모르지만, 초기 이슬람 학자들이 이것을 하나로 결합했다.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연구는 동로마(비잔틴) 제국에서 부활하여, 그것을 번역하고 보완했던 초기의 아랍 학자들에 의해 재정립되었다. 이슬람에는 두 가지 형식의 원자론이 있는데, 하나는 인도의 것과 유사하고 다른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원자론과 가깝다. 이슬람권에서 가장 폭넓게 받아들여졌던 알 가잘리의 이론에 따르면, 원자만이 영원히 존재하는 물질이고 다른 모든 것은 일시적이며 ‘우발적’으로만 존재하는 것들이었다. 우발적인 것은 지각(知覺) 외에는 그 어느 것의 원인도 될 수 없었다.

알 가잘리는 인간의 이성을 부정하고 신의 계시만을 믿는 종파, 아쉬아리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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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뒤, 스페인 태생의 이슬람 철학자 아베로에스(이븐 루시드)는 알 가잘리의 주장을 반박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동조했다. 아베로에스는 후대의 중세 철학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기독교와 유대교의 학풍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스미는 데 크게 공헌했다.

아리스토텔레스학파인 아베로에스(왼쪽)와 신플라톤학파인 포피리의 논쟁을 그린 상상화. 포피리는 아베로에스보다 800년 앞선 인물이다.

ⓒ Monfredo de Monte Imperiali, 14th C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중세 초기에 아랍어로 번역된 고대 그리스의 문헌들이 다시 라틴어로 번역되면서 서유럽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이 소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성서나 영향력 있는 기독교 사상가들과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 가톨릭교회에 의해 수용되었다. 중세 학자들은 이와 같은 경로를 통해서 중세 유럽을 지배한 과학적, 철학적 기반을 구축했으며,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서야 유럽의 철학자들은 고대의 가르침에 이의를 제기하고 검증하기 시작했다.

원자에서 미립자까지

13세기에 ‘가짜 지베르’라고 알려진 익명의 연금술사가 ‘미립자’라는 미세한 입자들에 근거한 물질 이론을 발표했다. (‘가짜 지베르’라는 기묘한 이름은 그가 자신의 저서에 지베르라는 서명을 남겼기 때문이다. 지베르는 8세기의 이슬람 연금술사인 자비르 이븐 하이얀의 라틴어 식 이름이지만 그가 작성한 글은 지베르의 작품을 번역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물질이 외부 미립자층과 내부 미립자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모든 금속은 서로 다른 비율의 수은과 황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모든 금속에는 금이 되는 데 필요한 성분들이 그저 적절한 정제 혹은 재배열이 필요할 뿐인 상태로 있다는 의미이므로 그는 이런 믿음을 연금술을 옹호하는 데 활용했다.

이와 유사한 이론으로 잘 알려진 학자가 니콜라우스 드 오터쿨이다. 동일한 성분으로 이루어진 연속체를 나눌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그의 이론은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격렬한 논쟁의 소용돌이를 일으켰다. 이 논쟁은 연속체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입자로 구성될 수 없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에서 비롯된 것이다.

니콜라우스는 사물과 공간, 시간이 각각 원자와 점, 순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변화는 원자가 재배열되는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이 밖에도 니콜라우스의 사상은 교회의 철학과는 맞지 않는 것들이 많았다. 결국 1340년에서 1346년에 걸친 6년 동안의 재판 결과, 니콜라우스는 자신의 의견을 철회해야 했다. 니콜라우스가 보기에 움직임이라는 것은 입자로 이루어진 모든 물체에서 태생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이었다. 그러나 물질뿐 아니라 시간도 순간이라는 별개의 작은 입자가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그의 견해는 후대의 철학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7세기에 들어서며 초기의 원자론은 다양한 형태로 변화했는데, 아일랜드의 화학자인 로버트 보일,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가상디, 아이작 뉴턴 등이 대표적 학자들이다.

미립자론을 주장했던 피에르 가상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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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립자론(corpuscularianism)’으로 알려진 이들의 이론은 미립자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다고 가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원자론과 차별화되었다. 실제로 뉴턴을 포함한 연금술 옹호자들은 미립자의 분할될 수 있는 성질을 활용하여 수은이 어떻게 다른 금속의 입자들 사이로 스며들어 금으로 변성될 수 있는가를 설명했다. 미립자론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인간의 경험과 인식이란 결국 물질의 미세한 입자가 우리의 감각기관에 작용하여 나타나는 결과일 뿐이라고 믿었다.

연금술
보통 연금술(Alchemy)이라고 하면 금속을 금으로 바꾼다거나, 불로장생의 약(엘릭시르)을 만들어내는 철학적, 과학적 노력을 떠올릴 것이다. 우화에 등장하는 철학자의 돌은 종종 불로장생의 약이나 금을 만들어 내는 필수적인 요소로 여겨졌다. 연금술은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유럽뿐 아니라 고대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스, 중국, 중동의 이슬람 문화권 등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행해져 왔다. 연금술은 현대적인 화학과 약리학의 뿌리이기도 하며, 실제로 중국의 연금술은 의약품의 생산이 주된 목적이었다. 일반적으로 금속의 성질을 변화시키고자 시도할 때 납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 외의 기본적인 금속들도 활용되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어떤 시도도 제대로 성공한 적은 없었다.

연구실에서 증류 작업 중인 연금술사

미립자에서 다시 원자로

원자론이 다시 햇빛을 보게 된 것은 따지고 보면 피에르 가상디의 덕이다. 가상디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자연법칙을 따르는 미세한 입자들의 상호 작용과 운동에 의한 결과일 뿐이라는, 다소 회의적인 주장을 했다. 그는 사고 능력을 지닌 존재를 자신의 이론에서 제외시켰는데, 그 외의 점에 있어서 1649년에 발표된 그의 논문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것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물질의 특성이란 원자의 형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고, 원자가 모여서 공간 속에 듬성듬성 존재하는 분자가 되는 것이었으므로, 물질의 내부는 대부분 텅 비어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가상디의 이론은 그 정확성에 비해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가상디보다 훨씬 영향력이 컸던 데카르트가 물질의 내부에 빈 공간이 있다는 이론은 말도 안 되는 것이라며 단호하게 부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상디와 데카르트는 한 가지 면에서는 의견이 일치했다. 두 사람 모두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기계학적이며 자연법칙을 따른다고 믿었다.

가상디의 사망 이후 몇 년이 지난 뒤, 로버트 보일이 다시 원자론을 전면으로 끄집어냈다. 보일은 1661년에 출판된 《회의적 화학자(The Sceptical Chemist)》에서 우주를 원자와 원자의 조합이 무한히 움직이고 있는 곳으로 묘사했다. 또한 우주의 모든 현상은 움직이고 있는 원자들의 충돌에 의한 결과이고, 우주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시했던 네 가지 원소 이외의 것들이 더 있는 것이 분명하므로 화학자들이 이에 대해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1689년에 그려진 로버트 보일의 초상화. 사망하기 2년 전이던 이때 그의 건강은 이미 심각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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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보일은 대략 1미터 80센티미터의 장신에 솔직하고 온화하며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독신이었던 그는 여동생인 라넬라 양과 함께 살고 있었다. 화학을 매우 좋아해서, 누이의 집에 훌륭한 실험실을 마련해놓고 하인들(그의 입장에서는 견습생들)에게 그곳의 관리를 맡겨두었다. 그는 가난하지만 능력이 있는 이들에게 자비를 베풀었고, 새로운 발견을 위해서라면 외국의 화학자들에게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이슬람 국가에 보급하기 위해 자비를 들여 신약성서를 아랍어로 번역해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명성이 높았다. 영국에 온 외국인들은 ‘보일을 한번 만날 수 있을 것인지’가 커다란 관심사 중 하나였다.
- 존 오브리, 《소전기집(Brief Lives)》 중

무(無)의 힘
독일의 과학자 오토 폰 게리케는 글자 그대로 무(無)를 발견(혹은 발명)했다. 그는 이전의 과학자들이 부정했던 진공상태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실험으로 증명했다. 풀무를 이용한 공기펌프를 개발한 게리케는 1654년에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드 3세 앞에서 깜짝 놀랄만한 실험을 했다. 두 개의 속이 빈 금속 반구를 서로 맞붙여서 공 모양이 되게 한 후 자신이 개발한 공기펌프로 금속 공 내부의 공기를 빼냈다. 그리고 두 마리의 말이 서로 반구의 반대방향으로 당기도록 했다. 그런데도 반구가 떼지지 않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진공의 힘(사실은 기압의 힘)을 입증한 것이었다.각주1)

오토 폰 게리케의 진공 실험

이성의 시대

일반적으로 이성의 시대라고 하면 1600년 무렵의 시기를 가리킨다. 이때는 서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의 새로운 식민지에 철학적인 면에서 인간의 노력에 대한 확신이 퍼져 나가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계속된 낙관주의와 성취감은 이때도 지속되었다.

원죄를 가진 존재로 인간을 바라보는, 중세를 뒤덮었던 자학적 가치관이 인류의 성취와 잠재력에 대한 찬사로 바뀐 것도 이 시기이다. 이성의 시대는 과학, 기술, 철학, 정치사상 그리고 예술의 발달을 이끌면서 동시에 이들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이 시기의 철학은 보통 합리주의와 경험주의라는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었다. 합리주의자들은 이성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고, 경험주의자들에게는 우리 주변의 세상에 대한 관찰이 그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고는 고대의 플라톤(합리주의자)과 아리스토텔레스(경험주의자) 사상을 구분을 지은 것이었다. 경험주의자들의 견해는 과학 실험이나 관측으로 이어졌고, 합리주의자들은 수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려고 했다. 그러나 합리주의적 접근인 연역적 추론에 의한 결과가 경험주의적 방법인 실험으로 검증되는 경우 또한 흔히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것도 아니었고, 결과적으로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모두 과학 혁명의 기초가 되었다. 이성의 시대가 이룩한 가장 빛나는 성취 중 하나인 과학적 방법의 발달은 이후 아주 오랜 시간 과학적 발견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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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루니 집필자 소개

1967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중세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뉴욕 대학에서 중세 영어와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펼쳐보기

출처

물리학 오디세이
물리학 오디세이 | 저자앤 루니 | cp명돋을새김 도서 소개

원자론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 후 아랍의 과학을 거쳐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 그리고 마침내 우주 물질의 기원을 밝힌 현대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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