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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기기원전 429년경에 이미 엠페도클레스는 빛의 속도가 아무리 빨라도 그 속도는 유한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당시 그와 같은 생각은 소수의 생각이었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빛의 속도가 무한하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한편 아랍의 아비첸나와 알 하이삼, 영국의 로저 베이컨과 프랜시스 베이컨도 엠페도클레스와 같이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7세기 유럽, 데카르트를 필두로 한 주류 학자들의 생각도 빛의 속도는 무한하다는 것이었다.
빛의 속도는 유한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측정해보려 한 최초의 시도는 1667년, 갈릴레오에 의해서였다. 갈릴레오의 실험 방법은 매우 원시적이어서 두 사람이 서로 등을 하나씩 들고 약 1.6km 가량 떨어진 곳에서 불빛을 가렸다가 보였다 하면서 상대방의 불빛을 본 시각을 측정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빛의 속도를 측정한 실험이라기보다 실험자가 빛을 보고 반응하는 시간을 측정한 실험이라 할 수 있다. 갈릴레오는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면 매우 빠를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그 속도는 음속의 10배 이상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음속을 처음으로 측정한 것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마랭 메르센이 1636년에 한 실험이다.
하위헌스는 빛의 속도가 유한하다고 확신했고, 몇몇 과학자들이 이를 뒷받침할만한 근거를 발견한다. 이탈리아 출신의 천문학자 지오반니 카시니와 덴마크 과학자 올레 뢰머는 파리에서 함께 연구하던 중 목성에 비친 위성 이오의 그림자를 보게 되었다. 이들은 목성에 위성의 그림자가 보이는 현상이 주기적으로 일어나야 하지만 그 주기가 일정하지 않고 지구와 목성 사이의 상대적인 위치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는 것을 알아냈는데, 관측 결과에 따르면 지구와 목성의 거리가 멀면 일식이 늦게 관측되는 것이었다.
1676년에 카시니는 이 현상의 원인이 빛의 속도 때문이라고 결론지었다. 그는 빛의 속도를 계산해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려면 10~11분이 걸릴 것이라는 결과를 얻었다. 카시니는 이와 관련된 연구를 계속하지 않았으나, 뢰머가 이를 이어받았다. 뢰머는 빛의 속도를 계산해 1679년에 위성 이오에 의해 일어나는 목성의 일식이 사람들의 예상보다 10분 늦게 일어날 것이라고 정확하게 예측했다. 뢰머가 당시 알려진 지구 공전궤도의 지름에 근거하여 계산한 빛의 속도는 대략 초속 20만km였다. 뢰머가 사용한 방법에 실제 지구 공전궤도의 지름을 적용하면 빛의 속도가 대략 초속 298,000km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고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초속 299792.458km라는 값과 매우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빛의 속도는 향후 과학이 더욱 발전한다고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속도를 계산하는 데 필요한 거리의 단위인 ‘미터’는 광속의 특성에 근거해 빛이 299792.458분의 1초 동안 가는 거리로 정의되어 있기 때문이다.)
1678년에 하위헌스는 뢰머의 방법을 이용해 달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 시간이 수 초 단위일 것으로 예측했다. 뉴턴은 유명한 그의 저서 《프린키피아(Principia)》에서 빛이 태양에서 지구로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7~8분일 것이라고 상당히 정확하게 예측했다. 실제로 태양에서 지구까지 빛이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8분 20초 정도이다.
뉴턴을 비롯한 여러 과학자들은 빛의 속도가 매질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만약 빛이 파동이라면 이는 타당한 가설이지만, 빛이 입자라면 반드시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하위헌스의 계산에 모든 사람들이 동의한 것은 아니었고, 빛의 속도가 유한한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은 영국의 천문학자 제임스 브래들리가 확실한 결론을 제시하고 나서야 해결될 수 있었다. 브래들리가 발견한 광행차(光行差, aberration)는 지구의 운동으로 항성의 실제 위치와 우리 눈에 보이는 위치가 다르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그가 이 연구를 완성하기까지는 무려 18년이 걸렸다.
한편 프랑스에서는 갈릴레오의 실험을 보다 정교하게 다듬었다. 1849년에 이폴리트 피조는 두 개의 등과 빠르게 회전하는 톱니바퀴, 거울을 이용한 실험 장치를 만들어낸다. 회전하는 톱니바퀴 양쪽에 등과 거울을 놓으면 빛이 통과하고 차단되는 상태가 반복되고, 빛의 속도는 톱니바퀴의 회전속도를 이용해 계산할 수 있게 된다.
100개의 톱니를 가진 톱니바퀴를 1분에 수백 번 회전시킴으로써 피조가 계산한 빛의 속도는 오차가 불과 1,600km/초밖에 안 되었다. 푸코의 진자로 유명한 레옹 푸코도 유사한 원리를 이용해 빛의 속도를 측정했다. 회전하고 있는 거울에 빛을 쏜 뒤, 35km 떨어진 곳에 정지되어 있는 두 번째 거울에 빛이 반사되어 돌아오도록 실험 장치를 꾸몄다. 회전하고 있는 거울의 기울기가 변함에 따라 어떤 각도일 때 빛이 재반사되는지 알 수 있었고, 이를 근거로 거울의 회전 속도와 빛이 왕복한 시간을 측정할 수 있었다. 피조는 1864년에 길이의 기본 단위인 미터를 금속으로 만들어진 미터원기(原器)에 따라서가 아니라 빛의 파장을 기반으로 새롭게 정의하자고 제안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빛의 속도가 우주 공간에서 항상 일정하다는 사실에 기초해 전개된 것이다.
아르키메데스의 거울
전설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의 과학자인 아르키메데스는 로마와 벌인 시라쿠사 전투에서 포물선 모양으로 배열한 거울로 햇빛을 한 방향으로 반사해 적의 함선을 불태웠다고 한다. 1973년에 그리스 아테네 근교의 해군기지에서 행해진 실험에서는 구리를 입힌 가로 1.5m, 세로 1m 크기의 거울 70개를 이용한 반사경을 만들었다. 50m 거리에 띄워놓은 로마 시대의 전함 모형은 합판으로 제작되었고 타르로 칠이 된 것이었는데, 실험을 시작한 지 불과 몇 초 만에 전함에 불이 붙었다. 2005년에도 미국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학생들이 비슷한 실험을 해서 완벽한 날씨에서는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돋보기를 이용해 불을 붙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러한 실험에서 열을 모아 대상 물체에 불이 붙도록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백색광이 아니라 태양광에 포함된 적외선이다.
직진하는 빛
아낙사고라스는 이미 기원전 5세기에 빛이 항상 직진한다고 확신했고, 이런 생각은 20세기에 들어서 아인슈타인이 빛이 중력에 의해 휘어진 공간을 따라 진행한다는 사실을 증명했을 때까지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빛은 반사되기도 하고, 매질과 매질 사이의 경계를 통과할 때는 굴절되기도 하듯이 고대인이 보기에도 빛은 방향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 명백했다. 완벽한 것은 아니었지만 프톨레마이오스가 제시한 굴절에 대한 설명은 페르시아의 학자 이븐 살에 의해 기록되어 있다.
굴절각을 계산하는 법칙은 후에 빌레브로르트 스넬(네덜란드의 천문학자. 라틴명 스넬리우스)의 이름을 따서 스넬의 법칙이라 불린다. 스넬은 이것을 1621년에 발견했는데 이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고, 데카르트가 이 법칙을 1637년에 증명했다. 스넬의 법칙이 성립하는 이유는 페르마의 대정리로 유명한 프랑스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가 증명했듯, 빛은 어떤 매질에서도 가장 빠른 경로를 따라 진행하기 때문이었다.
빛이 직선이 아닌 경로를 따라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발표하고 나서야 받아들여진 개념이다.
1919년에 천문학자 아서 에딩턴은 적도 근처 아프리카 서해안의 프린시페 섬에서 개기일식을 관측하는 영국 원정대를 이끌게 된다. 원정대가 촬영한 사진에는 태양 옆에 있는 별들의 모습이 담겨있었는데, 이 별들은 일식이 아니었다면 태양 빛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한 장의 사진에는 분명히 태양 뒤쪽에 위치해서 보이지 말아야 할 별의 모습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이것은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에서 주장했듯이 태양의 중력 때문에 태양 주위의 공간이 휘어져 태양 뒤쪽에 있는 별에서 나온 빛이 휘어진 공간을 따라 지구에 도달한 것이 분명했다.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
빛은 눈에 보일 뿐 아니라, 인간이 다른 물체를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에 물리학에서도 특별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하지만 맥스웰이 밝혀낸 바와 같이 빛은 전자기파의 한 종류일 뿐이다. 모든 종류의 전자기파는 빛의 속도로 전달되고 양자화된 에너지의 형태를 띠지만(결국 모든 전자기파는 파동과 입자의 속성을 동시에 가진다), 전자기파 중에서 눈에 보이는 것은 빛뿐이다. 초기 과학자들은 태양 빛(가시광선)과 열(적외선)을 구분해서 바라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따라서 X-선이나 전파, 마이크로웨이브와 같이 빛과 다른 종류의 전자파 발견은 19세기 후반에 와서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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