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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역학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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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와 17세기의 과학자들은 화살의 운동에서부터 천체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는 법칙을 찾으려 애썼다. 역학과 관련된 중세 이전의 이론은 철저하게 분석되며 고전 역학에 의해서 완벽하게 대치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은 독일의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와 이탈리아의 갈릴레오의 연구를 기반으로 영국의 아이작 뉴턴에 의해 완성된다.

갈릴레오의 낙하실험

갈릴레오는 어린 시절부터 물체의 움직임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적 관점을 믿지 않았다. 피사 대학의 학생이던 10대 시절에도 여러 가지 크기의 우박이 땅에 동시에 떨어지는 것으로 보아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주장하며 (우박이 떨어지는 높이는 같다고 보고)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땅에 먼저 떨어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반박했었다. (물론 이 주장은 객관적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니다. 동시에 땅에 떨어진 우박들이 동시에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증명할 방법이 없으므로.)

또한 그는 대포와 목표물의 높이가 같다면 포신을 떠날 때와 목표물에 맞을 때의 포환의 속도가 같다는 것도 입증했다.

갈릴레오는 특히 자유 낙하하는 물체와 화살이나 대포와 같이 발사된 물체의 운동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했다는 유명한 실험(크기가 다른 포환을 떨어뜨려 두 포환이 동시에 지면에 떨어지는 것을 보였다는 실험) 은 아마도 그가 머릿속으로 생각만 한 사고 실험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피사의 사탑에서 진짜로 실험을 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가 어떤 형태로건 실험을 했고 그 결과를 과학 이론의 증거로 삼으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갈릴레오뿐 아니라 모든 과학적 접근법의 기초이다.

갈릴레오가 피사의 사탑에서 했다는 낙하실험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는 좋은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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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굳이 무거운 포환을 들고 기울어진 탑에 올라가는 위험한 실험을 하는 것보다는 빗면을 만들어 놓고 작은 구슬들을 굴려보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는 것을 갈릴레오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의 시계는 초침이 없었기 때문에 실험 중에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하기가 쉽지 않았으므로 갈릴레오는 물방울이 떨어지는 물시계와 자신의 맥박을 이용해 쇠구슬이 굴러가는 시간을 측정했다. 그 결과 쇠구슬의 무게와 관계없이 쇠구슬이 굴러떨어지는 시간이 똑같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물론이고, 당시의 일반적인 상식과도 명백히 반대의 결과였다. 이런 결과에 대해서 갈릴레오는, 종이나 깃털이 포환처럼 무거운 물체보다 늦게 땅에 떨어지는 것은 무게 때문이 아니라 공기의 저항 때문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지적했다.

이 유명한 실험에서 갈릴레오가 발견한 것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사면의 각도를 수평면에 가깝게 낮출수록 쇠구슬이 굴러가는 거리가 더 길어진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경사면의 경사도가 0이 되게 하면, 즉 수평면에서 공을 굴리면 공은 무한히 굴러가야 하는데 이런 결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과는 어긋나는 것이었다.

갈릴레오의 실험은 바퀴가 달린 나무토막을 빗면을 따라 구르게 하여 손쉽게 따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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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테이블과 같은 수평면에서 벽돌을 밀면 손을 떼는 순간 벽돌은 정지한다. 바퀴가 달린 수레도 어느 정도 굴러가다가 멈춘다. 그런데 다양한 경사도의 빗면에서 쇠구슬을 굴리는 실험의 결과에서 유추해보면 수평면에서 쇠구슬은 무한히 굴러가야 한다. 그 이유를 찾으려 애쓰던 갈릴레오는 마침내 물체를 멈추게 한 것은 바로 마찰력이라는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그러나 갈릴레오가 잘못 생각한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바로 마찰력만 아니라면 쇠구슬이 무한히 굴러가긴 하나 지구의 자전 때문에 원운동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외부의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모든 물체는 직선운동을 한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은 데카르트였다.

데카르트는 우주가 물리 법칙에 따라 시계처럼 움직이는 존재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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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와 기계론적 세계관
엄밀한 의미에서 데카르트는 불변의 자연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눈치챈 최초의 사람이다. 유명한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세계관은 1618년에 네덜란드의 아마추어 과학자인 이삭 베크만(1588~1637)을 만나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데카르트는 생명체와 모든 물체를 아우르는 세상의 모든 현상을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입자의 크기와 형태, 운동으로 설명하려고 했다. 그는 비록 영혼이라는 요소는 제외했지만 인체 또한 기계의 일종으로 보았다. 데카르트의 관점에 따르면 신이 우주를 관장하기는 해도, 우주는 물리 법칙에 따라 마치 시계처럼 움직이는 존재일 뿐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주의 초기 조건만 확실히 알 수 있다면 이후의 움직임은 예측 가능하다고 믿었다.각주1)

달에서 입증된 갈릴레오의 이론
1971년, 아폴로 15호의 승무원들은 달에서 갈릴레오의 이론을 입증하는 실험에 성공한다. 달처럼 대기가 없는 곳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면 무게나 형체에 관계없이 같은 속도로 떨어진다는 것을 실험으로 보여준 것이다. 승무원들이 이용한 것은 깃털과 망치였다.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
갈릴레오(Galileo Galilei)는 아버지의 권유로 피사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하였으나 이내 수학에 빠져들게 되었다. 당연히 의학 공부는 뒷전이었고 결국 갈릴레오는 졸업을 하지 못한 채 1585년에 대학을 그만두게 된다. 하지만 겨우 4년 뒤에 수학과 교수로 피사 대학으로 돌아온다.

교수로 있을 때 갈릴레오의 급여는 형편없이 낮았고, 그의 아버지가 갈릴레오의 누이에게 거액의 지참금을 약속하고 세상을 떠나자 갈릴레오는 더욱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1592년이 되자 갈릴레오는 대우도 좋고 평판도 더 높은 파두아 대학의 교수가 되려고 애를 많이 썼다. 이처럼 지속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갈릴레오는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기 위해 발명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그 결과 온도계로 시작해 기계식 계산기를 만드는 등, 약간의 돈을 벌기도 했다.

1604년에는 새로 탄생할 별(실제로는 초신성이었음)을 관측하기 위해 케플러와 함께 일했다. 1608년에는 화살이나 대포와 같은 발사체의 궤적이 포물선이라는 것을 밝혀낸다. 1609년에는 망원경을 제작하기 시작해 그해가 끝날 무렵에는 기존의 제품에 비해 3배에서 20배 정도의 배율을 갖는 망원경을 만들어내기에 이른다. 그는 이렇게 만들어진 망원경을 케플러에게 보냈고, 케플러는 이를 이용해 갈릴레오의 천문학적 발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성의 위성을 발견한 것이나 화성이 차고 기우는 것을 발견한 것(위대한 천문학자 갈릴레오 항목 참조)과 같은 갈릴레오의 업적은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코페르니쿠스적 세계관(태양 중심설, 즉 지동설)의 타당성과 지구 중심설(천동설)의 오류를 명백하게 보여주는 증거였다.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주장하거나 출판하지 않았는데, 이는 오로지 태양 중심설이 당시 교회의 교리에 어긋나기 때문이었고, 1616년에 교회는 그로 하여금 태양 중심설을 가르치거나 주장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기에 이른다.

1632년에 이르러서야 지동설과 천동설을 균형 있게 서술하는 책의 출판을 허가받아 《우주의 구조에 관한 두 가지 이야기(Dialogue Concerning the Two Chief World Systems)》를 펴냈으나, 그 내용은 누가 봐도 천동설을 부정하고 지동설을 강력히 지지하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1634년에 교회로부터 이단 처분을 받은 갈릴레오는 여생을 가택 연금 상태에서 보내게 된다. 이 시기에 《두 가지 새로운 과학에 대한 수학적 증명과 의견(Discourses and Mathematical Demonstrations Concerning Two New Sciences)》을 완성한 그는 이 책에서 과학적 접근법을 제시하고, 우주는 수학으로 표현되는 자연법칙에 의해 지배되며 결국 인간의 지성에 의해 이해될 수 있는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물체가 움직이고 멈추는 이유

관성(慣性, inertia)이란, 물체가 새로운 움직임에 저항하는 성질을 뜻한다. 물체가 움직임을 시작하려면 관성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반면에 운동량(momentum)은 물체가 초기에 전달받은 힘 때문에 갖게 된 것으로 움직임을 계속하려는 성질을 나타낸다.

아리스토텔레스나 히파르쿠스, 필로포누스, 아비첸나 등이 연구한 역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운동량이 소멸되어 가는 과정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물체가 왜 운동을 시작했는가와 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다가 결국에 움직임을 멈추게 되는가에 대한 관찰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이론으로는 운동하던 물체가 멈추는 것을 적절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일부 페르시아의 학자들은 물체란 근본적으로 멈춰있으려는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비록 멈춰있으려는 성질이 현대적 의미의 관성을 뜻하긴 하지만, 물체가 멈추는 것이 관성 때문은 아니다.

움직이는 물체의 움직임이 점차 줄어드는 것이 관성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1640년에 피에르 가상디가 프랑스 해군 함정 위에서 행한 실험에서 분명하게 밝혀졌다. 가상디는 지중해에서 최고 속도로 항해하고 있는 군함의 돛대 꼭대기에서 포환을 떨어뜨리는 실험을 했다. 언뜻 생각하기에 배의 진행 속도 때문에 포환이 배의 뒤쪽으로 떨어져야 할 것 같았지만, 포환이 떨어진 위치는 항상 돛대 바로 앞이었다. 이 실험 결과는 물체가 일단 한 방향으로 움직임을 시작하면 외부에서 이를 방해하는 힘이 존재하지 않는 한 처음 움직이기 시작한 방향으로 계속 움직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포환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소가 없었으므로 군함의 움직임과 포환의 움직임은 일치할 수밖에 없다. 가상디는 갈릴레오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실험을 통한 검증을 중시했다는 점도 그중 하나다.

거장의 위력

200년이 넘게 물리학계를 지배한 고전 역학은 뉴턴이 1660년대에 구체화한 세 가지 운동법칙을 바탕으로 세워진 것이므로 많은 경우에 뉴턴 역학이라고도 한다. 뉴턴의 세 가지 운동 법칙은 각각 제1법칙-관성의 법칙, 제2법칙-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작용 반작용의 법칙으로 불린다. 뉴턴은 제2법칙과 제3법칙을 1687년에 출간된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Philosophi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보통 줄여서 《프린키피아(Principia)》라고 불린다)에서 다루었다. 뉴턴의 업적이 획기적이었던 것은 역학을 그가 고안한 수학적 방법(미분과 적분)을 통해 매우 정교하게 설명했다는 점이다.

과학서적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책은 아마도 뉴턴의 《프린키피아》일 것이다.

ⓒ Isaac Newton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운동과 중력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바탕으로 운동량과 각운동량(angular momentum)이 보존된다는 법칙을 명백하게 보여주었다. 이 법칙에 따르면 우주에 존재하는 질량을 가진 모든 입자에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이처럼 질량이 만들어내는 끌어당기는 힘을 중력(重力, gravity)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린 사과가 땅에 떨어지는 것은 지구의 중력이 사과를 지구 중심 방향으로 끌어당기기 때문이지만, 이때 사과도 미약한 힘이나마 지구를 자신의 중심 방향으로 잡아당긴다. 두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중력은 두 물체 간의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

1687년에 발표된 중력의 법칙은 물리학에서 힘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최초의 사례였다. 뉴턴은 중력의 법칙을 세우면서 우주에서는 동일한 물리 법칙이 적용되고 있으며, 이 법칙은 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뉴턴이 발견한 운동법칙은 일상적인 물체뿐 아니라 천체에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물체가 빛의 속도에 가까울 정도로 빠르거나, 크기가 원자 단위 이하로 극단적으로 작지만 않다면 모든 물체의 운동은 뉴턴 역학을 이용해 설명할 수 있다. 갈릴레오의 발견이나 사고 실험, 케플러가 발견한 행성의 타원 운동도 뉴턴 역학을 이용하면 훌륭하게 설명된다. 뉴턴 역학의 세계는 물체의 질량과 물체에 가해진 힘만 안다면 모든 물체가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를 계산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세계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
제1법칙: 물체는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계속 일정한 속도로 직선으로 움직이거나 정지해 있다. (관성의 법칙)
제2법칙: 물체에 힘을 가하면 물체의 질량에 비례하는 가속도가 생긴다. (가속도의 법칙)
제3법칙: 힘이 작용하는 모든 움직임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다. 예를 들어 로켓은 엔진의 분사력만큼의 힘으로 분사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진행한다. (작용 반작용의 법칙)

이 세 가지 법칙은 결과적으로 가속도와 각운동량, 에너지보존의 법칙을 구체화한 것이다.

우주는 실험실

역학 이론을 정립한 뉴턴은 자신의 이론을 태양계의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데 적용하고자 했다. 그 결과 지구의 공전 궤도는 태양의 중력에 의해서 생긴 태양 방향으로의 가속도에 의한 결과라는 것을 보였다.

포환을 지구 궤도에 보내는 방법

뉴턴의 《세계의 체계에 대한 논문(A Treatise of the System of the World)》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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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결과는 케플러의 관측(천동설과 지동설 항목 참조) 결과를 잘 설명한다. 이로써 천체 사이에 작용하는 힘을 연구하는 천체역학은 물리학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수백 년 간 뉴턴 역학에 기초하여 행성의 중력장을 고려한 계산을 통해 태양계 행성의 움직임을 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 뉴턴은 자신의 계산과 행성의 움직임이 정확히 일치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차이는 수백 년에 한 번 꼴로 목성과 토성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는 신성한 힘에 의해 보정된다고 굳게 믿었다.

뉴턴 역학의 틀 안에서 이 차이의 원인을 알아낸 것은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였다.

아이작 뉴턴(1642~1727)
1642년 크리스마스에(지금 사용하는 그레고리안 달력이 아니다) 태어난 뉴턴(Issac Newton)은 미숙아여서 얼마 살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게으르고 무뚝뚝한 아이였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도 평범한 학생이었다. 1665년에 번진 흑사병 때문에 대학이 잠시 문을 닫게 되자 뉴턴은 링컨셔에 있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내게 된다. 뉴턴이 운동법칙과 중력에 대한 아이디어를 세운 것은 바로 이 시기이다.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27세인 1669년에 수학과 교수가 되었다. 뉴턴은 백색광이 여러 가지 색깔의 단색광이 합쳐진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고, 그리고 미적분법도 ― 독일의 수학자 라이프니츠도 비슷한 시기에 미적분을 발견해 누가 먼저인지 논란이 있었다 ― 발견했다. 뉴턴이 남긴 저서 중 《프린키피아(Principia)》와 《광학(Opticks)》은 그의 업적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진다. 매우 까다롭고 거만한 성격으로 악명이 높았던 뉴턴은 다른 과학자들과 종종 논쟁을 벌였고, 로버트 훅과는 평생 앙숙으로 지냈다.

아이작 뉴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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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루니 집필자 소개

1967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중세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뉴욕 대학에서 중세 영어와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펼쳐보기

출처

물리학 오디세이
물리학 오디세이 | 저자앤 루니 | cp명돋을새김 도서 소개

원자론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 후 아랍의 과학을 거쳐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 그리고 마침내 우주 물질의 기원을 밝힌 현대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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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고전 역학의 탄생물리학 오디세이, 앤 루니, 돋을새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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