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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학의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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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와 19세기를 거치는 산업혁명은 농업과 산업, 교통의 기계화를 바탕으로 유럽과 북아메리카 지역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렸다. 대규모의 인구가 농촌에서 도시로 유입되었고 공장에서는 대량 생산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농업에 필요한 인력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또한 식량과 물자 및 인구의 이동은 과거에 비할 수 없이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각종 기계의 개량을 위해서는 보다 발전된 과학이 필요했으므로, 과학적 진보의 동기도 충분했다. 제임스 하그레이브스가 1764년에 만든 방적기(Spinning Jenny라고 불렸다)는 한 개의 축을 회전시켜 8개의 방추(방직용 축)를 회전시킬 수 있었다.

1771년에 영국의 토머스 아크라이트는 수력을 이용해 축을 회전시키는 방적기를 개발했다. 증기를 이용한 최초의 장비는 펌프였지만 제임스 와트가 매우 효과적인 증기 기관을 발명하면서 다양한 용도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일련의 발명은 전통적인 의미의 과학자들에 의한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가능한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이룩한 것이었고, 이론적 접근보다는 현장에서의 경험과 관찰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산업 혁명은 이런 결과물들의 분석과 개량을 필요로 했고 과학은 비로소 자신의 역할을 찾을 수 있게 되었는데, 이런 모습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새로운 토대 위에 선 뉴턴 역학

뉴턴의 법칙은 고전 물리학의 토대를 이루었을 뿐 아니라 이후 수백 년간 발전되어왔다. 스위스의 수학자 레오나드 오일러는 입자 수준에서 적용되던 뉴턴의 법칙을 확장하여 강체(剛體, rigid body)에 적용한 뒤 두 개의 추가적인 법칙을 이끌어냈는데, 이에 따르면 강체 내부에서 작용하는 힘은 균일하게 분포하지 않아도 된다. 오일러가 제시한 ‘자연은 가장 적은 움직임을 선택한다’는 원칙은 물리학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었는데, 대표적인 예가 빛이 최단 거리(직선)를 따라 전달된다는 것이다.

천재적인 수학자였던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는 오일러의 뒤를 이어 베를린 과학 아카데미의 회장이 되었는데, 역학 분야에서 뉴턴이 죽은 뒤 그때까지 이루어진 모든 발전을 아울러 라그랑주 역학이라는 분야로 통일했다. 19세에 집필을 시작해서 52세에 마무리한 자신의 저서 《해석역학(Méchanique Analitique)》에서 라그랑주는 독자적인 수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당시까지의 모든 역학 지식을 통합하여 제시했다. 라그랑주 역학 체계는 미적분을 이용하여 역학 시스템을 분석하고 표현하는 것이었다.

라그랑주 방정식은 주어진 시스템의 운동 에너지와 일반화 좌표계, 힘, 시간 사이의 관계를 나타냈는데, 재미있는 것은 그의 책에는 수식만 있을 뿐 그림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의 업적은 동역학 문제에서 운동 에너지와 위치 에너지를 스칼라 함수로 다룸으로써(고전 역학적 방법에서는 힘과 가속도 등을 벡터로 표현한다) 계산이 훨씬 단순화되도록 했다는 점이다.

오일러와 라그랑주 모두 유체역학에도 힘을 쏟았지만, 두 사람이 택한 방법은 달랐다. 오일러가 유체의 특정한 점의 운동을 분석하려 했던 반면, 라그랑주는 유체를 구역으로 나누고 각각의 궤적을 파악하고자 했다.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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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적인 면에서 역학 분야에 크게 공헌한 또 한 명의 수학자는 아일랜드의 귀족인 윌리엄 로완 해밀턴 경이다. 1835년에 발표한 논문 《역학의 일반적 해석(On a General Method in Dynamics)》에서 그는 에너지를 운동량과 위치로 표현하여 동역학 문제를 변분법(變分法, calculus of variations)으로 바꾸어놓았다. 그래서 고전 역학을 해밀턴 방정식으로 표현한 것을 해밀턴 역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해밀턴은 연구를 진행하며 뉴턴 역학과 기하광학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의 연구의 진정한 가치가 빛을 본 것은 무려 100년이나 지나 양자역학이 시작될 무렵부터였다.

윌리엄 로완 해밀턴 경(1805~1865)
어려서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던 해밀턴(Sir William Rowan Hamilton)은 이미 세 살에 글을 읽을 수 있었다. 다섯 살에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읽을 수 있었고, 열한 살에는 시리아어 문법을 정리할 정도였으며, 열네 살에는 더블린을 방문하는 페르시아 대사를 위한 환영사를 페르시아어로 작성했다. 수학과 천문학적 재능은 그야말로 타고난 것이어서 학부 재학 시절에 교수로 위촉되었고 아일랜드 천문학회 회원이 되었다. 집중력을 유지하는 방법은 놀랍게도 술이었고(상당히 많이 마셨다), 작업의 대부분을 자택의 식당에서 했는데 양갈비 이외에는 먹지도 않았다. 그가 죽은 뒤 그의 식탁에는 많은 논문과 함께 먹고 난 양갈비뼈가 담긴 접시가 수북했다고 한다. 그의 연구는 수학, 천문학, 역학, 광학 분야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다.

윌리엄 로완 해밀턴 경

관성과 중력의 만남

뉴턴이 말한 관성과 중력의 법칙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사이에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마흐를 빼놓을 수 없다. 뉴턴에게 있어 우주는 물체의 움직임을 표현할 수 있는 완벽한 칠판이었지만 마흐의 생각은 달랐다. 마흐는 모든 운동은 다른 물체나 위치에 대해 상대적인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므로 아인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오직 상대적인 의미에서만 운동이 의미가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관성이라는 것도 ― 움직이고 있다거나 정지해 있다는 것 ― 무엇인가 비교가 될 만한 다른 물체가 있어야만 했다. 만약 우주에 별이나 행성과 같이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면 지구가 자전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마흐의 법칙 ― 이 이름은 마흐가 붙인 것이 아니라 아인슈타인이 붙여준 것이다 ― 에 따르면 ‘다른 물체의 질량이 이 물체의 관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다. ‘저쪽’에 아무런 질량이 없다면 ‘이쪽’엔 관성이 있을 수 없었다.

고전 역학과 원자

뉴턴 역학은 천체와 같이 큰 물체에 적용할 때에는 매우 정확하지만 아주 작은 물체에 적용할 때에는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한동안 물리학자들은 뉴턴 역학은 대상의 크기와 관계없이 성립한다고 믿었지만, 원자나 전자같이 매우 작은 대상을 다룰 때에는 뉴턴 역학이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주 작은 입자는 매우 특이한 움직임을 보였고, 고전 역학에 대한 굳은 믿음은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세기에 들어서며 물리학자들은 뉴턴 역학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원자의 움직임은 뉴턴 역학으로 우주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다는 믿음을 입증하는 증거가 되기는커녕, 아주 작은 입자들은 매우 놀라운 형태의 운동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원자처럼 작은 대상의 움직임을 분석하거나, 대상의 속도가 빛의 속도에 가깝거나, 중력의 세기가 아주 큰 경우, 고전 역학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자연법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해버리는 원자의 움직임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에 에너지(운동 방정식의 또 다른 부분)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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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루니 집필자 소개

1967년 케임브리지의 트리니티 대학에서 중세 문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케임브리지 대학과 뉴욕 대학에서 중세 영어와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으며, 지금은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과학과..펼쳐보기

출처

물리학 오디세이
물리학 오디세이 | 저자앤 루니 | cp명돋을새김 도서 소개

원자론의 개념을 처음 제안했던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그 후 아랍의 과학을 거쳐 르네상스, 계몽주의 시대 그리고 마침내 우주 물질의 기원을 밝힌 현대의 과학에 이르기까지 ..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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