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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342년
사망 1398년

조준, 남은 등과 함께 조선 건국의 주역이다.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찬진하여 법제의 기본을 만들었고, 한양을 건설했다.
유학의 대가로 개국 후 군사, 외교, 행정, 역사, 성리학 등 여러 방면에서 활약했고, 척불숭유(斥佛崇儒)를 국시로 삼았다.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참수되었다.

500년 조선왕조의 기반을 다지다

정도전은 이성계와 함께 조선을 건국한 개국공신이다. 이성계를 도와 나라를 여는 데 기여했으므로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고 나자 큰 권력을 쥐었다. 재상의 역할을 중시한 그는 강력한 신권 정치를 꿈꾸며 모든 권력은 왕이 아니라 재상 중심의 신료들에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방원 일파에 의해 제거되면서 조선 시대 내내 신원되지 못했다. 1865년에야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그 설계자인 정도전의 공로를 인정해 그의 봉작(封爵)을 회복시켜 주었다.

정도전은 경북 영주에서 밀직제학 형부상서를 지낸 정운경(鄭云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기록에 따르면 정도전은 “타고난 자질이 총명했고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다.”라고 한다. 자라면서 학문에 뜻이 있음을 알게 된 아버지가 그를 이색의 문하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당시 이색의 문하에는 정몽주, 박상충, 박의중, 이숭인, 이존오, 김구용, 김제안, 윤소종 등 훌륭한 학자들이 모여 있어 이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그는 스무 살에 진사시에 합격해 이듬해 충주 사록이 되면서 관리 생활을 시작했다. 12년 동안 정계의 주변 자리를 맴돌 뿐 핵심 세력에는 들지 못했다. 게다가 반원운동을 주장하다가 당시 실권을 가진 친원 세력에게 탄핵을 받아 10여 년간 초야에 묻혀 지내야 했다. 1375년(우왕 1)에 원나라에서 명나라를 치는 데 필요한 원병을 요청하는 사신을 보내왔다. 친원파 대신들은 정도전을 영접사로 보내어 사신을 맞이하고자 했지만 그는 이 일을 거부했고 이로 인해 전라도 나주 근처인 회진현으로 9년간이나 유배살이를 하게 되었다.

귀양에서 풀려난 후 정도전은 옛집으로 돌아와 삼각산 아래에 초가를 짓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를 미워하는 재상들에 의해 집이 헐리고 말았다. 결국 친구인 부평 부사 정의에게 의탁해 부평부 남쪽에서 살게 되었으나 그나마도 재상 왕모가 별장을 짓는다고 쫓아내자 할 수 없이 김포로 이사했다. 정도전은 꽤 오랫동안 어려운 세월을 보냈다. 이런 시련이 혁명에 대한 꿈을 꾸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던 정도전은 1383년(우왕 9), 당시 동북면도지휘사로 있던 함흥의 이성계 막사를 찾아갔다. 답답한 세상을 개혁하기 위해서는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가 정몽주를 선택하지 않고 신흥 군벌인 이성계를 찾아간 것은 무관인 이성계는 관료들과는 달리 출신 성분보다 실력으로 인물을 뽑을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정도전은 이성계의 군대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이런 군대라면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혁명을 위한 군사력으로는 충분하다는 의미였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의기투합했고 1388년, 정도전은 드디어 이성계의 추천을 받아 성균관 대사성으로 정계에 복귀했다.

이후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쥐게 되고 정도전이 내놓은 역성혁명의 명분인 폐가입진론(廢假立眞論, 우왕과 창왕은 공민왕의 혈통이 아니라 요승인 신돈의 자식이므로, 이제 가짜 왕을 폐위시키고 진짜 왕의 혈통인 공양왕을 내세운다)을 내세워 신종의 9대손인 요(瑤)를 공양왕으로 옹립했다. 정도전은 앞장서서 혁명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조리 제거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스승인 이색과 결별하고 친구인 이숭인 등과도 등을 돌렸다. 개혁에 반대하는 세력을 과감하게 처단한 것이다. 정도전은 종종 술에 취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한고조가 장자방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고조를 쓴 것이다.”

바로 자신이 이성계를 발탁하고 군주로 세웠다는 의미였다.

조선왕조가 세워지자 정도전은 왕조의 설계자로서 확고한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다. 묵은 제도를 정비하고 개혁하는 일은 모두 그에게 맡겨졌다. 그는 먼저 국가 이념을 정립하고 통치 체제를 정비했다. 유교를 국가 이념으로 삼고 성리학을 내세웠고, 통치 체제로는 중앙집권제를, 통치 철학으로는 왕도 정치와 민본주의를 바탕으로 했다. 무엇보다 농사에 중심을 두었다.

정도전의 업적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의 편찬이다. 이 책은 조선의 법전 편찬의 기초가 된 책이다. 내용은 크게 왕이 할 일과 신하가 할 일로 나뉘는데, 임금의 할 일을 정보위(正寶位), 국호, 정국본(定國本), 세계(世系), 교서로 나누고, 신하의 할 일로 치(治), 부(賦), 예(禮), 정(政), 헌(憲), 공(工)의 6전을 설치해 각 전(典)의 관할 사무를 규정하고 있다.

정도전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큰 임무는 새 도읍지의 건설이었다. 정도전은 태조의 신임 속에서 도읍지를 결정하는 것부터 한양 건설에 이르기까지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한양은 태조의 의지와 정도전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도읍이었다. 1395년 9월, 경복궁과 종묘가 완공되자 이사가 시작되었다. 태조는 정도전에게 궁궐의 모든 전각과 문루의 이름을 짓게 했다. 경복궁의 근정전, 사정전, 교태전, 강령전, 연생전, 경성전, 융문루, 영추문, 건춘문, 신무문, 광화문 등의 이름을 그가 지었다. 이와 함께 도성의 자리와 출입문의 이름 역시 그가 지었는데 4대문은 숭례문(남대문), 소지문(북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4소문은 소의문(서남문), 창의문(서북문), 혜화문(동북문), 광희문(남동문)이다. 광희문은 수구문이라고도 했으며 이 문으로는 사람의 주검을 실어 나갔다.

진신도팔경시비

정도전이 새로 세워진 수도 서울의 아름다움과 위용을 그린 시조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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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한양 건설에 여념이 없던 1396년(태조 5) 6월, 이른바 표전문(表箋文) 사건이 터졌다. 표전문은 조선이 명나라에 보내는 외교문서이다. 사건의 발단은 하정사(賀正使) 유순(柳珣)이 가지고 간 표전문의 내용이 명나라에 대해 모욕적이고 오만하다는 이유로 글을 쓴 책임자를 잡아들이라고 한 데에서 불거졌다. 명나라에서는 정도전과 정탁(鄭琢)을 배후로 지목하고 그들의 압송을 요구했다.

이 사건은 정도전이 겉으로는 존명사대를 표방하면서 실질적으로는 북방의 영토를 조선의 행정구역으로 편입시키는 행위를 괘씸하게 여긴 명나라가 그를 제거하려고 꾸민 것이었다. 조선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신을 여러 번 명나라에 보냈지만 명은 사신을 구속하거나 유배시키는 등 계속 횡포를 부렸다. 조정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의견이 대립했으나 정도전의 위세에 눌려 아무도 그를 보내야 한다고 말하지 못했다.

정도전은 명나라와의 갈등이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과거에 자신이 반대했던 랴오둥 정벌을 태조에게 건의했다. 그러던 중 명나라가 선덕왕후 강씨의 상복을 입었다는 죄목으로 정총 등을 처형하는 일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본격적으로 전쟁 준비가 시작되었다. 태조는 함경도의 성곽을 수리하게 하고 무기를 점검시켰다. 정도전은 자신이 쓴 병서인 《오진도(五陳圖)》를 기본으로 중앙의 군사들에게 군사 훈련을 시키고 출병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귀족들이 소유하고 있던 사병을 관군에 편입시키려 하자 왕자와 공신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방원은 방석이 세자로 책봉된 데에다 사병마저 빼앗기면 대권의 꿈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방원은 이를 왕자들의 사병을 억제하고 방석의 세자 자리를 공고히 하려는 정도전의 음모로 생각했다. 이는 결국 제1차 왕자의 난이 발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정도전이 방석을 세자로 적극적으로 추대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태조의 마음이 강씨와 그녀의 소생인 방석에게 있다는 것을 알았을 뿐이다. 정도전에게는 누가 왕이 되느냐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왕의 힘으로 나라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료들이 움직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임금이 신하만 못하면 신하에게 전권을 맡기는 것이 좋다. 임금이 그르다고 해도 재상은 옳다고 말하고, 임금이 옳다고 해도 재상은 그르다고 할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이었다.

결국 정도전의 이런 사상과 일련의 조치들은 이방원으로 하여금 그를 제거하게 만들었다. 왕권에 대한 조바심이 이방원으로 하여금 형제간의 피바람을 일으키게 한 것이다. 정도전을 없앤 이방원은 궁궐로 들어가 태조에게 사실을 보고했다. 충격을 받은 이성계는 마지못해 둘째인 방과를 세자로 삼았다.

그는 비명에 갔지만 그의 사상은 조선왕조의 기틀을 세우는 데 중심 사상이 되었다. 그를 제거한 태종 이방원조차 그의 계획에 따라 조선의 정치, 문화, 제도를 수립했다. 조선왕조를 태조가 창건했다면 500년간 이어지는 조선을 설계한 사람은 정도전, 바로 그였다.

《삼봉집》

정도전의 문집으로 조선왕조의 건국 이념과 정도전의 사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사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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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운 집필자 소개

고려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사연구실, BK21한국학 교육연구단 국제화팀에서 연구원을 지냈으며,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연구소에서 고대사에 ..펼쳐보기

장희흥 집필자 소개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조선 시대사, 정치사에 관심이 많으며 연구 논문으로 <조선시대 정치권력과 환관>, <소통과 교류의 땅 ..펼쳐보기

출처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 저자윤재운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한국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영역의 인물이 두루 다루어지도록 구성했다. 인물..펼쳐보기

전체목차
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변방의 무장에서 새 왕조의 주인으로, 이성계 500년 조선왕조의 기반을 다지다, 정도전 태종의 치적 뒤에 자리한 장자방, 하륜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 청백리의 표상, 황희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왕위 찬탈자인가, 위대한 군주인가, 세조 모사가인가, 지략가인가, 한명회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 성삼문 국력을 신장시킨 외교와 국방의 달인, 신숙주 사림의 영수, 김종직 비운의 폐왕, 연산군 도학 정치를 꿈꾼 급진적 이상주의자, 조광조 조선 최초의 자연철학자, 서경덕 조선 주리철학의 선구자, 이언적 중세의 봉건적 질서에 반기를 들다, 임꺽정 동방의 주자, 이황 조선의 주자학을 일구다, 조식 동서 분당의 시대, 정인홍 어린 천재에서 희대의 정치가로, 이이 전란 속에서 나라를 구한 재상, 유성룡 한국 해전의 역사를 새로 쓰다, 이순신 조선 의학의 집대성 《동의보감》, 허준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 정여립 홍길동의 아버지, 허균 대동법을 실시한 실리적 개혁가, 김육 명분인가 실리인가, 최명길 우리말의 가락을 살려 우리 글자로 쓰다, 윤선도 유림 위에 군림한 정치 사상계의 거장, 송시열 성리학계의 이단아, 윤휴 붓으로 살려낸 만물의 조화, 정선 경세치용의 학문을 열다, 이익 당쟁 속에서 탕평을 실천한 재상, 채제공 못다 한 개혁의 꿈, 정조 정조의 남자, 홍국영 실학의 아버지, 박지원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정약용 한국화의 전통미를 일구어 낸, 김홍도 조선을 뒤흔든 농민봉기의 지도자, 홍경래 한국적 서체를 완성하다, 김정희 자주적 근대화를 주장한 개화 사상가, 박규수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조선의 마지막 봉건주의자, 이하응 격동의 역사 속 비운의 황제, 고종 풍전등화의 조선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여걸, 명성황후 암살당한 개혁의 불꽃, 김옥균 한국 민중 저항사의 상징, 전봉준 민중 계몽으로 자주독립을 꾀하다, 서재필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안창호 총 한 자루로 제국주의를 처단하다, 안중근 〈님의 침묵〉, 한용운 나라는 망해도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신채호 항일 무장 투쟁의 영웅, 김좌진 삼천 만 동포에게 고함, 김구 좌익과 우익,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여운형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여인, 나혜석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박정희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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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정도전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윤재운,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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