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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상
사망 1135년

1127년(인종 5) 왕실 고문으로 추대되자 인종에게 서경으로 천도할 것을 주장했다. 이는 개경의 사대주의적인 중신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
1135년 서경에 기반을 두고 국호를 대위, 연호를 천개라 하여 천견충의군(天遣忠義軍)을 조직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은 김부식이 이끄는 관군에게 섬멸당했다.

칭제건원의 무산된 꿈

묘청은 고려의 승려로 서경(지금의 평양) 출신이다. 묘청이 역사에 등장하는 것은 서경 천도를 거론하면서부터이다. 묘청은 승려이면서도 도교에 심취해 풍수지리와 도참 사상을 두루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고려의 도읍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128년(인종 6) 서경 출신인 정지상(鄭知常) 등과 함께 “지금의 도읍인 개경은 기운이 이미 쇠했고, 서경에는 왕기가 넘친다. 특히 서경의 임원역(林原驛)에 궁궐을 짓는다면 천하를 아우르게 되어 금나라가 스스로 항복하고 36국이 모두 신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던 대신들 가운데 일부가 이 의견에 동요했다. 특히 이자겸의 난으로 궁이 불타고 금나라가 갈수록 고려를 압박해 민심이 흔들리던 터라 인종 역시 서경천도론에 마음이 기울기 시작했다.

고려 왕궁 복원도

ⓒ 청아출판사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인종은 당시 서경에 친히 행차해 5개월 동안 머물면서 임원역에 들어설 새 궁터를 구경했고, 묘청에게 새 왕궁을 짓는 일을 맡겼다. 묘청은 이듬해 임원궁(林原宮)을 완성시켜 인종이 다시 행차했을 때 자랑스럽게 보였다. 이제 힘을 얻은 묘청은 ‘칭제건원(稱帝建元, 고려 임금이 스스로 황제로 칭하고 독자적인 연호를 쓰는 일)’과 함께 ‘금국 정벌’이라는 새로운 주장을 폈다.

하지만 그는 점차 무리수를 두기 시작했다. 서경의 상서로움을 부각시키려면 일종의 ‘쇼’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묘청은 기름을 넣은 떡을 대동강에 미리 담가 두고 사람을 불러 모았다. 과연 그의 생각처럼 떡에서 흘러나온 기름이 물에 비치면서 강 주위에 오색찬란한 빛이 나타났다. 강물이 스스로 빛을 내니 사람들은 묘청의 말대로 서경의 상서로움을 믿게 되었다. 하지만 곧 그가 미리 떡을 넣어 둔 사실이 발각되어 그의 주장은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또 대화궁을 지은 뒤 ‘태일옥장보법(太一玉帳步法)’이라는 도술을 보이며 이를 도선으로부터 직접 전수받았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임원애(任元敱), 이중(李仲) 같은 문신들은 묘청의 천도론을 반대하며 그의 탄핵을 주청했다. 무엇보다 1134년 새로 지은 대화궁에 벼락이 치면서 풍수도참을 바탕으로 한 천도론은 명분을 잃게 되었다. 묘청이 이런 분위기를 몰랐을 리 없다. 그러나 그는 인종을 더욱 몰아붙여 서경 행차를 요구했다. 하지만 김부식을 위시한 개경파의 반대에 봉착하며 천도론이 폐기될 지경에 이르자 1135년 묘청은 분사시랑 조광(趙匡)과 병부상서 유참(柳旵) 등과 함께 난을 일으켰다.

대화궁에서 출토된 기와 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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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청의 난은 이처럼 인종 즉위 초 외척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정치적인 불안에 금나라라는 외부 세력의 압박이 더해지며 일어난 사건이었다. 여기에다 도참 사상이 백성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점, 서경 출신들이 그간의 지리적 불만을 털어 버릴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점이 도화선이 된 셈이다.

조정에서는 즉각 김부식을 평서원수로 삼아 토벌군을 파견했다. 그러나 관군이 도착하기도 전에 반란군은 항복했고, 승산이 없음을 알게 된 조광이 묘청과 유참의 목을 베어 바쳤다. 김부식은 주동자가 이미 숨졌으므로 잔당들을 용서하자고 주장했으나 조정 신료들은 단죄할 것을 주장해 반란 진압은 쉽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결국 반란군은 1년이 넘게 저항하다가 제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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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운 집필자 소개

고려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한국사연구실, BK21한국학 교육연구단 국제화팀에서 연구원을 지냈으며, 민족문화연구원 한국사연구소에서 고대사에 ..펼쳐보기

장희흥 집필자 소개

동국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졸업(문학박사), 현 대구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조선 시대사, 정치사에 관심이 많으며 연구 논문으로 <조선시대 정치권력과 환관>, <소통과 교류의 땅 ..펼쳐보기

출처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 저자윤재운 | cp명청아출판사 도서 소개

한국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영역의 인물이 두루 다루어지도록 구성했다. 인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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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부터 대한민국까지 변방의 무장에서 새 왕조의 주인으로, 이성계 500년 조선왕조의 기반을 다지다, 정도전 태종의 치적 뒤에 자리한 장자방, 하륜 조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세종 청백리의 표상, 황희 신분의 굴레를 뛰어넘은 최고의 과학자, 장영실 왕위 찬탈자인가, 위대한 군주인가, 세조 모사가인가, 지략가인가, 한명회 단종을 향한 일편단심, 성삼문 국력을 신장시킨 외교와 국방의 달인, 신숙주 사림의 영수, 김종직 비운의 폐왕, 연산군 도학 정치를 꿈꾼 급진적 이상주의자, 조광조 조선 최초의 자연철학자, 서경덕 조선 주리철학의 선구자, 이언적 중세의 봉건적 질서에 반기를 들다, 임꺽정 동방의 주자, 이황 조선의 주자학을 일구다, 조식 동서 분당의 시대, 정인홍 어린 천재에서 희대의 정치가로, 이이 전란 속에서 나라를 구한 재상, 유성룡 한국 해전의 역사를 새로 쓰다, 이순신 조선 의학의 집대성 《동의보감》, 허준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 정여립 홍길동의 아버지, 허균 대동법을 실시한 실리적 개혁가, 김육 명분인가 실리인가, 최명길 우리말의 가락을 살려 우리 글자로 쓰다, 윤선도 유림 위에 군림한 정치 사상계의 거장, 송시열 성리학계의 이단아, 윤휴 붓으로 살려낸 만물의 조화, 정선 경세치용의 학문을 열다, 이익 당쟁 속에서 탕평을 실천한 재상, 채제공 못다 한 개혁의 꿈, 정조 정조의 남자, 홍국영 실학의 아버지, 박지원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정약용 한국화의 전통미를 일구어 낸, 김홍도 조선을 뒤흔든 농민봉기의 지도자, 홍경래 한국적 서체를 완성하다, 김정희 자주적 근대화를 주장한 개화 사상가, 박규수 동학의 창시자, 최제우 조선의 마지막 봉건주의자, 이하응 격동의 역사 속 비운의 황제, 고종 풍전등화의 조선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여걸, 명성황후 암살당한 개혁의 불꽃, 김옥균 한국 민중 저항사의 상징, 전봉준 민중 계몽으로 자주독립을 꾀하다, 서재필 청년들의 민족의식을 일깨운, 안창호 총 한 자루로 제국주의를 처단하다, 안중근 〈님의 침묵〉, 한용운 나라는 망해도 민족은 망하지 않는다, 신채호 항일 무장 투쟁의 영웅, 김좌진 삼천 만 동포에게 고함, 김구 좌익과 우익, 한국 현대사의 갈림길에서, 여운형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이승만 시대를 앞서 간 비운의 여인, 나혜석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 박정희 인간다운 삶을 위하여, 전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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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묘청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윤재운,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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