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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씨는 문익점이 들여온 것일까
원나라에 갔던 문익점이 붓대 속에 숨겨 온 목화씨는 고려인의 생활에 혁명을 불러일으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비단은 값이 매우 비쌌다. 그러니 일반 백성들은 한겨울에도 삼베나 모시로 옷을 지어 입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문익점이 목화씨로 면화를 짜는 데 성공한 후에는 목면이 보급되어 혹한기를 나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또 가난한 사람들은 결혼할 때 비단 이불을 마련하지 못해 혼기를 놓치는 경우도 적지 않았는데 이 비단이 면포로 대체되면서 혼인 풍습까지 변하게 되었다. 목면으로 면포를 만들고, 면포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상업이 발달했다는 것도 문익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문익점이 목화를 몰래 숨겨 왔다는 것은 허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태조실록》과 《고려사》에는 문익점이 “목화씨를 얻어 왔다.”라고만 기록되어 있을 뿐 어디에도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목화씨를 숨겨 왔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당시 목화는 원나라 곳곳에서 재배되고 있었고, 반출 금지 대상도 아니었다고 한다.
이 주장은 2007년에 문익점의 목화씨 재배보다 800년이나 앞선 백제 시대의 면직물이 출토되면서 더 힘이 실리게 되었다. 국립부여박물관이 국보 제287호 백제 금동대향로가 출토된 부여 능산리 절터 유물을 정리하다가 백제 시대의 면직물을 발견한 것이다. 함께 출토된 창왕명석조사리감이 567년에 제작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을 통해 이 면직물도 비슷한 연대로 추정된다. 다만 이 백제의 면직물은 목화의 원산지인 중앙아시아의 건조한 지역에서 들여온 토종 종자를 어렵게 소량 재배한 것으로 추정된다. 문익점이 들여온 종자는 남쪽의 기후에 맞게 개량되어 대량 재배가 가능했기에 서로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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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부터 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의 생애와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정치와 경제, 문화와 예술 영역의 인물이 두루 다루어지도록 구성했다. 인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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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목화씨는 문익점이 들여온 것일까 – 한국사를 움직인 100인, 윤재운,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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