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군인들과 전투 장면

디지털 시각 효과^각주1) 의 미학

장르의 영향과 혼합은 문화의 장벽을 넘기도 한다. 가령 칼싸움과 복수라는 관습을 가진 일본 사무라이 장르는 서부 영화라는 유사한 장르와 잘 혼합된다. 세르지오 레오네는 구로사와 아키라의 〈요짐보〉의 플롯을 느슨하게 변형시켜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었다.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는 〈황야의 7인〉의 틀을 제공했다. 이와 유사하게 1980, 1990년대에 홍콩 영화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자 워쇼스키 형제는 하이테크 특수 효과와 홍콩의 쿵푸 무술을 혼합하여 당시 젊은이들을 열광시킬 독창적 SF 〈매트릭스〉를 만들었다.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지배하는 가상의 세계와 이에 대항하는 인간의 대결을 축으로 전개된다. 사람들이 실제라고 생각하는 세계가 사실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단순한 전제를 다룬 것이다. 실제로 컴퓨터는 20세기의 변화에 필적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능가할 사회적, 문화적 변화를 약속했다. 〈매트릭스〉는 이런 맥락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컴퓨터 현실이 실제 세계를 대치했다는 영화의 전제 자체는 컴퓨터가 우리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사실상 무한한 가능성의 표시이기도 하다.

21세기가 배경인 이 영화에서 세계는 인간과 ‘AI(인공지능)’ 기계의 전쟁에 의해 초토화되었고 지구는 황무지다. 인간이 기계들의 훌륭한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기계 생명체가 지구를 차지해 버렸다. 인간들은 작물처럼 재배되어 추수되고 그들의 몸은 기계들이 흡수할 액체 에너지 형태로 전환된다. 그러나 사람들을 말 잘 듣게 하기 위해 매트릭스라고 알려진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된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당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것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매트릭스 안에서 탄생한다. 그는 죽기 전에 인간을 해방시켜 그들에게 진실을 가르쳐 주었다. 오라클은 그가 돌아와서 매트릭스를 파괴하고 인간을 컴퓨터의 폭정에서 해방시킬 것이라고 예언한다. 모피어스(로렌스 피시번)는 매트릭스 안에서 탄생한 인간이 해방시킨 사람들 중의 한명이다. 그는 선택받은 자를 찾기 위한 매트릭스와의 전투에서 반란군 부대를 이끈다. 그들은 컴퓨터 오퍼레이터인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그 선택받은 자라고 생각하고, 그를 매트릭스로부터 구출하여 자신들의 우주선에 태운다.

모피어스와 그의 부하들은 ‘컨스트럭트’라는 자신들만의 놀라운 컴퓨터 프로그램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은 훈련 프로그램, 무기, 사람의 ‘디지털 자아’의 정신적 투사를 포함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나 거기에 올릴 수 있다. 그들은 이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매트릭스에 들어가서 그것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해치울 기술을 네오에게 가르쳐준다. 그러나 매트릭스는 스미스 요원(휴고 위빙)이 이끄는 특수 경찰 요원들이 순찰을 하고 있고 스미스는 네오를 찾아 죽이려고 한다.

이와 같은 요약만 보더라도 〈매트릭스〉가 얼마나 디지털 시각 효과를 많이 다루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영화는 매트릭스 대 컨스트럭트라는 두 개의 컴퓨터 프로그램 사이의 전쟁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영화의 많은 부분이 매트릭스, 컨스트럭트, 실제 세계를 표현하는 정교한 효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이미지는 격정적인 결투, 대결 장면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답도록 완벽한 몸동작이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에는 모피어스의 대원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의 쿵푸 싸움과 도주와 추격 장면이 나온다. 좀 더 긴 쿵푸 시퀀스는 모피어스가 컨스트럭트에서 네오를 훈련시킬 때 등장한다. 이후 쿵푸가 나오는 몇 장면들은 포로가 된 모피어스를 구출하기 위해 트리니티와 네오가 매트릭스에 들어갈 때 벌어진다.

워쇼스키 형제는 이 영화를 위해 홍콩 무술감독 원화평을 고용했다. 특수 효과는 존 가에타(John Gaeta)가 지휘하고 감독했다. 영화 속 사람들은 공중에 떠올라 정지하고, 벽 위를 달리고, 슬로모션으로 움직이고, 공중에서 결투를 하는 것처럼 아주 위험하고 도전적인 갖가지 묘기를 선보인다. 어떤 장면에서는 카메라가 그 주변을 도는 동안 전투가 일시 정지되기도 한다. 특수 효과 팀은 ‘총알 피하기(bullet time)’라는 테크닉을 고안했는데, 인물들은 슈퍼 슬로모션 진공 상태에서 총알을 교묘하게 피한다.

영화의 멋진 싸움 장면과 추격 장면에서 주인공들은 몇 달 동안 훈련을 거쳐 스턴트맨이 아니라 와이어의 도움을 받아 마법처럼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 같은 어려운 동작들을 직접 해냈다. 원화평이 사용한 기본 테크닉은 배우의 몸에 멜빵과 와이어를 장착시키고, 배우가 점프하거나 회전을 하면 와이어가 배우들을 끌어올리고, 지탱하고, 공간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 촬영 후에는 와이어는 이미지에서 디지털로 삭제된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네오를 살피라는 임무를 띠고 매트릭스 안에 있던 트리니티는 경찰에 발각된다. 그녀를 체포하려는 경찰과 싸움이 시작되고 순간 그녀는 다리를 모으고 공중 위로 곧장 점프하는 것 같은 숏을 본다. 그녀는 경찰을 발로 차기 전에 이미지가 잠시 정지한다. 그리고 그녀는 벽 위와 주위를 달려가며 다른 경찰관을 죽인다. 탈출한 그녀는 스미스와 다른 경찰들에게 추적당하는데, 도망치는 그녀는 이 지붕에서 거리 건너편에 있는 다른 지붕으로 점프한다. 또 왼쪽 지붕에서 점프해서 공중을 날아 오른쪽 지중으로 날아가는 것이 하이앵글로 보인다.

모피어스가 네오를 가르치기 위해 컨스트럭트 내의 훈련 프로그램에서 싸우는 시퀀스는 실제로 쿵푸 기술을 배우는 내용을 다룬다. 어느 순간 모피어스는 슬로모션으로 방을 가로지르면서 다리를 모으고 공중에 떠 있고, 같은 숏에서 네오가 프레임 왼쪽 아래 바닥에 누워 있다. 나중에 네오는 벽을 걸어 올라가고 공중 높이에서 뛰어내린다. 천장을 마주 보는 그의 몸은 바닥과 평행으로 움직이다가 다시 바닥으로 내려온다. 그때 모피어스가 네오를 차면 그는 방안을 가로질러 날아가는데, 짧은 순간 슬로모션으로 보이다가 벽에 부딪힐 때 정상속도로 보인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다가올 때 네오와 트리니티는 모피어스를 구하러 매트릭스에 들어간다. 모피어스가 잡혀 있는 건물에 들어갈 때 그들은 로비를 지키는 무장 군인들과 싸움을 벌인다. 싸움이 시작되자 트리니티는 벽에 뛰어올라 걸어가면서 몸이 바닥과 평행이 된다. 그리고 벽에서 뛰어 공중제비를 넘는다. 그리고 순간 그녀의 머리가 정확하게 바닥을 향하고, 같은 숏 내에서 발로 착지한다.

네오와 스미스 요원 사이의 클라이맥스 대결은 지하철역에서 벌어진다. 두 사람은 선로에 떨어져서 기차가 다가오는 가운데 계속 싸운다. 갑자기 네오는 물러서서 선로에서 플랫폼으로 공중제비를 한 후 발로 착지한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스미스 요원은 기차에 치인다.

어쩌면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각 효과 시퀀스는 네오와 트리니티가 모피어스를 구하려 하는 지붕 위 싸움 장면이다, 시각 효과의 하이라이트는 네오가 총알을 피하기 위해 긴 코트자락을 땅에 드리우며 뒤로 몸을 기울일 때의 조각처럼 아름다운 이미지다. 총알은 슬로모션으로 네오에게 다가와 지나친다. 모피어스를 구출한 뒤 네오와 모피어스가 도시 풍경 위로 날아가는 헬리콥터에 매달린 모습, 나중에 헬리콥터가 유리로 된 고층 건물에 부딪혀 폭발하는 모습 등도 가장 볼만한 디지털 시각 효과 이미지다.

도입부에서 공중으로 솟아오른 트리니티가 독수리처럼 양 팔을 버리고 두 발을 구부린 자세로 상대를 가격하는 장면과, 네오와 스미스가 공중을 가로질러 무장 군인들에게 총을 난사하는 장면 등은 플로 모션(flow motion) 기법으로 촬영되었는데, 촬영할 목표물을 120대의 스틸 카메라로 360도 둘러싸게 한 후 1초에 100프레임씩, 전체적으로 1만 2000프레임을 찍어 제작한 것이다. 배우의 연기가 시작될 때 레이저 광선을 통한 트래킹 시스템으로 통제되는 120대 이상의 카메라들을 동시에 작동시켜 각도와 앵글이 다른 정지 화상 이미지를 촬영하고 인물의 뒤 배경은 그린 스크린에서 작업한 후 컴퓨터 그래픽 이미지로 대체한다. 120대의 카메라에서 찍힌 정지 화면 사이사이는 컴퓨터로 만들어진 중간 장면들로 채워 자연스런 액션이 연출되도록 한 것이다. 플로 모션 테크닉은 화면에서 움직이는 인물이나 대상의 속도를 최대한 느리게 표현하기 위해 120여 대의 카메라를 이용, 시간을 세분한다.

이 싸움 장면들의 미학적 효과는 인간의 몸이 육체적으로 불가능한 방식으로 시간과 공간 사이를 우아하게 움직이는 발레 같은 동작에서 나온다. 디지털 시각 효과는 이런 동작이 연출되고 후반 작업에서 촬영된 표시를 지움으로써 이 동작이 사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매트릭스〉 3부작은 만화책, 홍콩 쿵푸 영화, 서부 영화, 동양의 신비주의 영화, 동화, 비디오 게임, 일본 애니메이션, 사이버펑크, 컴퓨터 게임, 〈블레이드 러너(Blade Runner)〉 같은 공상과학영화로부터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