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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보다 낯선

Stranger than Paradise
요약 테이블
제작시기 1984년
감독 짐 자무시(Jim Jarmusch)
천국보다 낯선

ⓒ Daum 영화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첫 장면

헝가리에서 막 도착한 16세 소녀 에바가 처음 보는 미국의 모습은 황폐하기만 하다. 땅이 갈라져 있는 공항. 거리는 아무렇게나 주차해 있는 차들, 낙서와 쓰레기들로 얼룩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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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면

공사장처럼 황폐한 공항, 헝가리에서 막 도착한 16살 소녀 에바가 처음 보는 미국의 모습이다.

ⓒ 커뮤니케이션북스 | 저작권자의 허가 없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부조리와 역설의 미니멀리즘(minimalism)각주1)

흑백 장편영화인 〈천국보다 낯선〉은 유럽 제작자들과 TV 방송사의 제작 지원으로 만든 저예산 독립영화였지만 칸영화제 황금카메라상, 로카르노영화제 금표범상, 전미 영화비평가협회 최우수영화로 선정되면서 31세의 자무시를 세계적으로 주목받게 했다.

〈천국보다 낯선〉은 ‘신세계(The New World)’, ‘일년 후(One Year Later)’, ‘천국(Paradise)’이라는 세 단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헝가리 출신으로 미국에 온 지 10년이나 되었지만 여전히 뉴욕 빈민가에 살고 있는 윌리, 클리블랜드에 있는 고모와 살기 위해 헝가리에서 온 윌리의 사촌 에바, 그리고 윌리의 친구 에디. 영화는 이 세 사람의 단조로운 일상과 여정을 그저 스케치하듯 따라가며 보여 준다. 여기에서 보이는 미국의 풍경과 생활은 마치 후기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모습처럼 차갑고 답답하며 쓸쓸하고 우울하기만 하다. 영화는 이렇게 가족의 해체, 자연의 황량함과 도시의 우울함을 전달하면서 문명의 비판과 인간관계에서 소통의 부재라는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천국보다 낯선〉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패러디다. 세 젊은 주인공들은 일상의 지루함과 권태에서 벗어나고자 작은 변화를 꿈꾼다. 미국에 대한 동경을 품었던 에바는 미국 역시 따분하고 아무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러나 질식할 것 같은 따분함을 벗어나기 위해 어떤 시도라도 해보는 것은 세 사람 가운데 에바뿐이다. 윌리와 에디는 오하이오로 갔다가 다시 플로리다로 가보지만 여전히 따분하다. 그들은 마치 가는 곳마다 생명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존재들이다. 에바는 그런 운명에서 달아나지만, 윌리와 에디는 그녀 외에는 달아날 곳이 없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전혀 친구 사이로 보이지 않지만 모두 같은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서로 함께 있다는 점을 최대한 누리기도 한다. 그들을 한 장소에 잡아두는 것은 아무 것도 없지만, 또한 그들이 속한 곳에서 그들을 끌어내는 것도 없다.

〈천국보다 낯선〉은 별다른 스토리나 플롯도 없고, 세 젊은이가 수면 위를 부유하듯 이리저리 느릿느릿 옮겨다니다, 그것도 다소 허탈하게 끝나버린다. 영화의 캐릭터들은 이렇다 할 목표도 없고, 목적지도 없다. 끊임없이 존재에 대해 묻지도 않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다. 그 대신에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편이다. 윌리는 에바가 떠나기 전까지 그녀와 같이 있는 것을 불편해한다. 하지만 그녀가 떠나고 나서야 동질감을 느낀다. 이것은 이 영화의 중요한 테마 가운데 하나로, 종종 사람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깨닫지 못하고 결국 너무 늦은 후에야 그것을 깨닫지만 더 이상 말할 기회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영화의 주제는 첫 장면 속에 함축되어 있다. 첫 숏은 프레임 왼쪽에 비행기가 한 대 있고, 오른쪽에는 트렁크와 쇼핑백을 내려놓고 서 있는 에바의 뒷모습인데 그 사이 땅들은 거대하게 갈라져 있어서 공항은 마치 버려진 공사장처럼 황폐하다. 이것이 에바가 헝가리에서 미국에 도착해서 처음 보는 미국의 모습인 것이다. 잠시 후 또 다른 비행기 한 대가 화면을 가로질러 사라진다. 그리고 에바가 양손에 짐을 들고 잠시 두리번거리다 프레임 아웃되면 화면에는 여전히 비행기 한 대가 보인다. 그리고 잠시 후 남아 있는 비행기마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누군가 떠나고 돌아오지만 이들은 전혀 다른 방향을 하고 있다. 이렇게 무언가를 찾아 떠나고 또 끊임없이 엇갈리는 황량한 정서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그리고 한동안 인물이 없는 풍경이 보이다가 검은 프레임(black frame)이 나오고 출연배우들의 자막이 삽입된다. 다음 장면은 윌리가 고모의 전화를 받는데, 고모가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에 열흘 동안 에바를 데리고 있어달라고 부탁하자 윌리가 아쉬울 때만 혈육 운운한다며 투덜대는 내용이다. 역시 암전(blackout)되면 ‘신세계(The New World)’라는 자막이 나온다.

그리고 울퉁불퉁한 도로 위에 에바가 프레임 인되고, 녹음기를 꺼내 음악을 트는데 스크리밍 제이 홉킨스의 ‘I Put A Spell On You’가 절절한 목소리로 흘러나온다. “내 마법에 걸린, 당신은 내 것. 당신 없이는 난 살 수 없어. 더는 참을 수 없어 괴로운 이 심정. 견딜 수 없어 날 버리지 말아” 블루스의 고전인 이 노래는 C. C. R이나 니나 사이몬 같은 가수에 의해 여러 번 리바이벌되었지만, 에바는 그 오래된 노래를 가장 좋아한다. 다시 암전. 카메라는 윌리의 아파트로 걸어가는 에바를 따라 빈민가를 보여 주는데, 그 풍경은 황량하기 그지없다.

차들은 버려진 듯 아무렇게 세워져 있고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으며 한두 명의 행인만 지나갈 뿐이다. 건물들의 벽과 셔터는 낙서로 더럽혀져 있고 길바닥은 쓰레기투성이다. 광각 렌즈로 일그러진 건물 아래 있는 에바의 롱 숏은 그녀가 이방인이라는 느낌을 분명하게 한다. 문화는 자기 자신을 풍자한다. ‘신뢰할 수 있는 품질’, 황폐한 모습의 주유소 간판에 쓰인 선전 문구다. 벽에 휘갈긴 낙서에는 ‘온 세상이 미국’이라는 글귀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윌리와 에디는 계획에도 없는 에바와의 만남을 위해 즉흥적으로 클리블랜드로 휴가를 떠난다. 클리블랜드까지의 여정은 관객에게 낭만적 감정이입을 배제시키면서 미국의 황량한 풍경에 주목하게 한다. 답답한 차 안의 운전석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황량한 겨울 잿빛 하늘과 똑같은 고속도로 광고판과 이정표, 멀리 보이는 교회 등의 이미지들은 우울하기만 하다.

로테 숙모와 불편한 관계인 에바를 구출하고 변화를 꿈꾸는 윌리, 에디의 플로리다행 여정도 클리블랜드 여정보다 더욱 그들을 외부와 고립시킨다. 그들이 플로리다에 도착할 때 하늘로 치솟은 모텔 간판과 칵테일 잔 이미지 등이 플로리다의 첫인상으로 소개된다. 검은 야자수로 비유된 인적이 드문 적막한 길들은 클리블랜드 여정 때와 같은 기호로 작용한다. 에디가 말하는 “뷰티풀 시티”인 이 장소들은 우울하고 낡은 공업 시설과 하늘로 치솟은 커다란 칵테일 잔 같은 이미지. 그리고 어딜 가나 똑같은 모텔, 편의점 등의 소비기호가 가득한 아름답지 못한 미국으로 묘사된다.

짐 자무시는 이 영화에서 엄밀한 형식적 원칙에 따라 미니멀리즘을 통한 상황의 아이러니 효과를 노렸다. 영화는 철저하게 시퀀스 숏(sequence shot)각주2) 이고 각 장면은 모두 롱 테이크로 구성되었다. (미장센이나 구도는 아주 세심하게 계산되어 있다). 시점 숏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상황 전체를 한 프레임 안에서 보여 주는 지극히 단조로운 ‘원 신 원 숏(one scene one shot)’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자무시는 의도적으로 장면 내에서 커트를 피하고 관객이 실제 시간 속에서 객관적으로 상황을 주목하게 한다. 이러한 시퀀스 쇼트는 세련되고 엉뚱하면서 이상야릇하고 우스꽝스런 효과를 만들어 낸다. 카메라는 고정된 채 미리 결정된 자리에서 기다린다. 주인공들은 신에 들어와 자신들의 천박하고 우스꽝스런 인생을 연기하다가, 침묵과 무기력한 표정과 두서없는 증상들을 지루할 정도로 늘어놓고 마무리한다. 마침내 그들은 떠나가거나 그냥 거기에 앉아 있다. 카메라는 그들과 함께 앉아 있다. 블랙아웃.

시간의 경과를 나타내는 검은 색 프레임의 암전은 다른 내용의 장면으로 전환되는 일종의 장면전환 효과를 가지지만 기존의 많은 편집 기법들을 무시한 것이었다. 암전의 길이는 스토리의 페이스가 조금씩 끌어올려짐에 따라 영화의 끝으로 갈수록 점점 짧아진다. 그 리듬은 스토리에 영향을 미친다. 간결한 구성처럼 대사도 절제되어 있다. 자무시는 주제와 스타일에서 이렇게 되도록 단순한 요소를 써서 최대 효과를 노리는 미니멀리즘(minimalism)과 초월주의(transcendentalism)를 추구했다.

영화는 또한 줄곧 닫힌 공간 안에서 진행되는데 좁은 윌리의 방, 낡은 차 안, 에바의 집, 플로리다의 모텔 방 등 카메라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인물들이 답답한 공간 안에서 오락가락 하는 것을 응시한다. 인물들은 조형적인 구도 안에서만 움직이면서 답답하고 갇혀 있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폭력도 없고, 섹스도 없고, 죽음도 없다. 그 대신 관객들은 작은 디테일들, 상황들, 그리고 캐릭터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영화 속 유머 또한 그런 방식으로 작동한다.

자무시는 장 비고, 로베르 브레송,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같은 유럽 감독과 오즈 야즈지로 같은 일본 감독의 스타일을 계승했지만, 더 극단적으로 단조로운 스타일로 나아가 미국 생활의 부조리와 역설의 요소들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1970년대 후반과 1980년대 할리우드가 보수적 환상을 강조했다면, 자무시는 정반대 편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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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강호 집필자 소개

중앙대학교 연극영화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대학교 일반대학원에서 석사학위(1988), 박사학위(1996)를 취득했다. 1998년부터 대진대학교 연극영화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영화학회 회장(..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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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 | 저자신강호 | cp명커뮤니케이션북스 도서 소개

영화의 줄거리, 설명이나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명장면인가에 초점을 맞춰 내용과 형식을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분석한다. <전함 포템킨>부터 <매트릭스>까지 81명 감독..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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