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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Bonnie and Clyde제작시기 | 1967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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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아서 펜(Authur Penn) |
보니와 클라이드가 처음 만나는 장면
마지막 장면
할리우드표 ‘누벨바그’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보니 앤 클라이드)는 1930년대 미국 대공황기에 보니 파커와 클라이드 배로우라는 은행 강도 커플의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개봉 당시 폭력의 적나라한 묘사 때문에 많은 비난에 휩싸였다. 이 영화는 폭력을 묘사하는 방법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물론 이전에도 폭력에 초점을 맞추었던 미국 영화들이 있었지만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폭력의 공포와 심지어 그 마력적인 아름다움까지 강렬히 경험하게 한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였다.
이 영화는 〈졸업〉과 마찬가지로 당시 젊은이들의 불만을 확인시켰고, 미국 영화를 지배했던 기존의 가치 기준을 뒤엎으면서 아메리칸 뉴 시네마(american new cinema)각주1) 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 같은 작품이다. 아메리칸 뉴 시네마는 월남전이 기폭제였다. 월남에서의 폭력 그리고 이제까지의 미국은 무엇인가를 되돌아보는 관점이 젊은 영화인들에게서 일어난 것이다. 또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프랑스 ‘누벨바그’ 사상과 기법들을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 도입하면서, 젊은이들을 비롯해 소외당하고 불만족스런 사람들의 삶과 양식을 미국 영화제작자들이 주시하게 만들었다. 1967년 당시 반체제적 정치성을 지닌 이 영화는 비평가들보다는 대중들의 지지를 더 받았는데, 슬랩스틱코미디, 로맨스, 폭력과 시정 그리고 1930년대에 대한 향수 사이를 넘나들며 관객의 감정에 호소한다.
도입부는 이 영화의 배경인 대공황 시대의 절망적인 분위기를 암시한다. 찰칵하는 카메라 셔터 소리와 함께 일련의 클라이드(워렌 베이티)와 보니(훼이 더나웨이)의 가족사진들이 흑백 화면으로 보인다. 사진들 사이에 나타나는 자막은 상징적으로 흰색에서 핏빛 붉은색으로 변한다. 그리고 보니와 클라이드의 경찰 신상 카드로 마무리된다. 사운드트랙은 카메라 셔터의 계속 불길하게 찰칵거리는 소리를 제외하면 처음에는 조용하다가, 자막이 올라오는 중간쯤에서 낮은 목소리의 아련한 사랑 노래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러한 도입부는 관객들에게 복잡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듯한 낮은 노랫소리는 관객들에게 아득한 향수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그 순간 또 다른 요소들이 관객들의 아늑한 태도를 깨트린다. 마치 방아쇠를 당기는 듯이 계속해서 찰칵거리는 카메라의 셔터 소리, 빠르게 스쳐 가는 빛바랜 사진들의 모습 속에는 무엇인가 곧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인상을 계속해서 자아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장면은 보니의 억눌린 욕망을 표현한다. 경찰 신상 카드에서 디졸브되면서, 스크린 가득히 어떤 여자의 붉은색 입술 클로즈업이 보인다. 이어 카메라가 팬하면 희미한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고 있는 보니의 측은한 표정의 모습이 등장한다. 침대 난간을 두드리는 등 따분해 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은 로맨틱한 바람으로 젖어 있다. 그녀는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전라의 모습이다. 답답함을 풀기 위한 듯 창문으로 다가간 그녀는 창 밖 아래 서성이고 있는 클라이드를 발견한다.
첫눈에 클라이드에게 반한 보니는 그가 따분한 텍사스 작은 동네를 벗어나는 데 도움을 줄 사람이라는 걸 감지한다. 그는 보니 어머니의 차를 훔치려는 참이다. 보니는 도둑인 것 같은 사내에게 맞서기 위해 거기에서 기다리라고 소리친 후 재빨리 전라의 몸에 헐거운 드레스만 걸친다. 그리고 삐거덕거리는 나무 계단을 시끄럽게 쿵쾅거리며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은 로 앵글로 보이는데, 그림자 때문에 관객은 스커트 속을 제대로 올려다 볼 수 없다. 이 장면은 보일 듯 보일 듯하면서도 끝내 보니의 전라를 보여 주지 않는다.
이 영화는 성 불구인 클라이드와 성에 적극적인 보니의 특이한 관계를 비롯한 성을 솔직하게 표현한 점으로도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60년대 말에 할리우드는 제작 윤리 규정을 버리고 등급제를 도입함으로써 섹스와 폭력의 표현에 훨씬 큰 자유를 누리게 되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그 새로운 체계 아래서 만들어진 초기작이자 가장 성공적인 영화였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에서 보니와 클라이드가 수백 발의 총탄을 맞고 참혹한 최후를 맞는 마지막 장면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밝은 햇살이 쏟아지는 도로를 달리고 있던 보니와 클라이드는 자동차 수리를 하고 있는 것처럼 위장하고 있는 모스의 아버지를 발견한다. 이러한 모습은 보니와 클라이드의 시점으로 처리되어 관객이 두 주인공과 동일감을 느끼게 하고, 그 동일감은 영화의 결말에 대한 더욱 강렬한 체험을 하게 한다.
클라이드는 차를 세우고 무슨 도울 일이라도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들판 쪽으로 무심코 걸어간다. 그리고 경찰들이 몸을 숨기고 있는 덤불이 보이고, 돌연 근처 나무들에서 새들이 순식간에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모스의 아버지는 재빨리 트럭 밑으로 몸을 숨기고, 바로 그 순간 클라이드는 자신과 보니가 함정에 걸려들었음을 깨닫는다. 순간적인 침묵 속에 마지막 이별을 나누는 듯 두 연인의 서로를 마주보는 시선과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빠르게 교차된다. 그리고 기관총에서 우박처럼 총알이 쏟아진다.
환한 대낮에 충격적인 공격이 벌어지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기 때문에 그 효과는 배가된다. 펜은 이 장면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4대의 카메라를 이용해 서로 다른 카메라 속도와 렌즈를 사용했다. 클라이드의 모습은 슬로모션으로, 차 안에 앉은 채 총탄의 충격에 의해 마치 너절한 인형처럼 발작적으로 경련하는 보니의 모습은 정상 속도로 처리된다. 이러한 카메라 속도의 병치는 이 두 아웃사이더의 삶에 대한 신화적 측면과 다큐멘터리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실제로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4년 루이지애나주 고속도로에서 잠복해 있는 경찰들이 무차별로 쏜 87발의 기총소사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남자는 벌집이 된 차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여자는 무릎에 기관총을 얹어놓고 양 무릎 사이에 머리를 수그린 채 죽어있었다. 두 사람은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 텍사스주에서 1년 9개월간 주유소, 시골은행, 간이식당 등을 털며 12명을 살해하고 강도 행각을 벌였다. 같은 시대의 전설적 갱스터 존 딜린저가 한 번의 강도짓에 7만 4000달러를 훔친 것에 비하면 보니와 클라이드는 1500달러를 넘지 않는 좀도둑 수준이었지만 대공황기에 서민의 착취기관이었던 은행을 공격함으로써 권위와 질서에 도전한 상징으로 인식됐다.
기억에서 사라진 두 사람이 되살아난 것은 베트남전이 한창이던 1967년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개봉되면서였다. 보니와 클라이드의 강도 행각은 청년운동의 정신과 에너지를 포착하면서 권위에 대한 반항을 잘 보여 주었다. 즉 반전시위와 히피문화가 용솟음치던 1960년대 말 미국의 시대 상황과 맞물려 젊은이들은 공권력을 조롱하는 주인공들의 내일 없는 화끈한 무한 질주에 열광한 것이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순간순간의 삶을 살아간다는 점에서 〈네 멋대로 해라〉의 장 폴 벨몬도처럼 실존적, 반영웅의 반영이기도 하다. 젊은 남녀들은 1930년대 패션을 입기 시작했고, 브이 넥 스웨터, 미니스커트,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 베레모 등 ‘보니 파커 룩’이 여성 패션 잡지의 열광적인 소재가 되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가 미국 영화사에서 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흥행과 비평 모두 성공함으로써 자국 관객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고심하던 할리우드에 유럽적 스타일과 진지함을 전통적인 미국식 주제와 관습적 장르와 결합시켰다는 점이다. 거기에 빠른 속도감과 스펙터클한 액션 장면을 포함시키면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1970년대 ‘할리우드 르네상스’를 위한 길을 닦아놓았고, 코폴라의 〈대부〉 같은 걸작도 이 영화를 모방했다. 그리고 〈천국의 나날들(Days of Heaven, 1978)〉,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 1991)〉, 〈드럭스토어 카우보이(Drugstore Cowboy, 1989)〉, 〈올리버 스톤의 킬러(Natural Born Killers, 1994)〉 등 평범한 사람들이 갑작스러운 폭력을 통해 전설적인 인물이 된다는 내용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화들이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의 대를 이었다. 이 영화는 단지 1930년대뿐만 아니라 현대 미국 사회에서도 인간이 폭력을 수용하게 되면 정신적으로 고갈된다는 것을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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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줄거리, 설명이나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명장면인가에 초점을 맞춰 내용과 형식을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분석한다. <전함 포템킨>부터 <매트릭스>까지 81명 감독..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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