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

사냥 장면

파티 장면

죽은 사회의 죽은 가치

〈게임의 규칙〉은 유려한 촬영기법, 인물의 심리를 주변 상황과의 관계 속에서 절묘하게 그려낸 내러티브 등으로 절찬을 받아왔다. 이 영화는 어느 숲 속 별장의 파티에 모여든 다양한 사람들의 복잡하게 얽힌 애정관계 속에서 부르주아의 허위의식을 비롯한 계급 문제를 절묘하게 다뤄냈다. 르누아르의 〈위대한 환상〉과 마찬가지로 〈게임의 규칙〉은 당시 유럽 역사 속의 문화적, 사회적 동요에 관한 영화다. 그러나 그 태도나 기법에 있어 〈위대한 환상〉보다 훨씬 복잡한 영화로 다양한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의미의 상당 부분이 주로 대사에 의해 구축되어 있기 때문에 여러 번 보지 않고서는 내러티브를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이기도 하다.

영화의 외적 줄거리는 대서양 단독 횡단비행에 성공한 젊은 조종사 앙드레와 그의 연인 크리스틴, 그리고 그녀의 남편인 후작 로베르와 후작의 친구 옥타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되며, 죽음의 무도회가 열리는 후작의 시골 저택이 주요 무대이다. 하지만, 내적 구조는 당시 프랑스 사회에 여전히 잔존하고 있던 계층간의 갈등과 지배계층의 독선 및 부패를 해부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평민계층에 속하는 앙드레가 귀족계층인 후작 부인 크리스틴을 사랑해 귀족들이 공간에 섞여드는 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의 암묵적인 규칙을 깨뜨리면서 부조리한 죽음으로 이어지는 이유가 되는 것이다.

〈게임의 규칙〉은 히틀러의 위협이 분명해진 1939년에 제작되었기 때문에 프랑스에 임박한 나치의 위험도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 따라서 별장은 프랑스 사회를 대표하는 소우주가 되며 그것을 통해 르누아르는 계층 문제, 윤리, 정치를 다룰 수 있게 된다. 그 결과 피할 수 없는 비극을 눈치 채지 못하고 유치하고 위험한 게임에만 몰두하는 사회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게임의 규칙〉은 마치 게임처럼 복잡하게 얽힌 인간관계를 어지러운 난장판처럼 재현하면서 당시 상류 혹은 하류로 나뉘던 신분사회의 위선을 교묘하게 풍자했다. 이 영화는 죽은 사회의 죽은 가치를 다루고 있다. 부유한 주인들의 사회와 주인들을 흉내 내며 상류사회에 기생하는 하인들의 사회는 둘 다 죽은 사회인 것이다. 하인들의 속물근성, 불성실함, 자만심은 마치 거울에 비친 것처럼 주인들을 닮았다. 주인들과 하인들은 모두 진실과 인간적 감정의 솔직한 표현보다는 그럴 듯한 형식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한다. 그 필연적 결과는 죽음이다.

〈게임의 규칙〉은 두 개의 치정 플롯이 교차되면서 평형성을 이루고 있다. 중심 플롯에서 앙드레는 크리스틴에게 공개적으로 사랑을 고백한다. 비록 ‘게임의 규칙’이 간음을 금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숨김없는 솔직한 사랑의 표현을 경멸한다. 하위 플롯에서는 크리스틴의 하녀가 앙드레처럼 이방인이자 새로운 하인 마르소와 장난삼아 부정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마르소를 배척하는 하인들은 낭만적이라는 이유로 앙드레를 배척한다. 그것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크리스틴을 배척하는 그들의 주인들만큼이나 속물적이고 인습적이다. 하녀의 질투심 많은 남편 슈마허는 앙드레를 자기 부인의 새 애인으로 착각하고 실수로 그에게 총을 쏜다. 앙드레는 타락한 사회질서의 유지를 위해 희생된 것이지만 게임은 계속된다. 크리스틴의 남편 로베르는 손님들에게 앙드레가 불행한 사고를 당했음을 발표하고, 사람들은 후작의 명백한 거짓말을 신사다운 훌륭한 형식의 표시로서 기꺼이 그리고 냉정하게 받아들인다.

〈게임의 규칙〉은 롱 테이크와 움직이는 카메라와 함께 딥 포커스(deep focus)^각주1) 촬영에 기초한 세련된 시각적 스타일이 돋보인다. 딥 포커스 촬영은 하나의 숏 내에서 많은 공간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것을 초점을 맞춘 상태에서 보여준다. 이것은 관객의 주의를 중요한 곳으로만 집중하기 위해서 액션의 전경에만 초점을 맞추고 프레임의 뒷부분은 흐릿하게 하는 고전적 할리우드 스타일의 관행과는 다르다. 이것을 변형한 것이 극적 행동에서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 하나의 숏 내에서 초점을 옮기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나 물건이 중요하게 될 때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대개 새로운 곳으로 편집을 통해 이동을 한다. 이런 스타일에서는 숏이 중요한 사람과 액션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숏의 길이가 대개 길지 않다.

그러나 르누아르는 프레임 내에서 동시에, 그리고 대개는 오랫동안 다양한 차원의 액션을 보도록 요구한다. 어떤 때는 카메라가 정지한 상태에서 인물들이 움직이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카메라가 그들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인물과 액션이 보일 수 있도록 심도 있는 공간을 다시 잡는다.

이런 스타일을 보여주는 비교적 단순한 예는 앙드레와 옥타브가 별장에 도착하는 영화 서두에서 일어난다. 손님들이 별장에 도착할 때 크리스틴은 앙드레와의 관계에 대해 말할 것이 있다고 모든 참석자들에게 선언한다. 그녀는 그 관계를 실토하는 대신 앙드레와의 우정에 대해서만 말을 하고 그가 비행을 자신에게 헌정한 이유가 우정 때문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설명을 할 때 크리스틴과 앙드레는 프레임의 전경에 있다. 이들 뒤에는 로베르와 옥타브가 서 있다. 따라서 우리는 발표 내용과 그것이 로베르와 옥타브에게 미치는 효과를 동시에 보는 것이다. 크리스틴을 클로즈업해서 보여주고 또 일련의 반응 숏을 보여주는 할리우드식의 숏/역숏을 여기서는 볼 수 없다. 프레임의 다른 부분에 우리의 주의를 분산시키도록 요구하는 딥 포커스로 인해 모든 것이 동시에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틴이 말을 마치면 카메라는 뒤로 빠져서 다른 손님들을 패닝으로 보여주고 다시 패닝으로 원래 위치로 돌아간다. 여전히 같은 숏 안에서 카메라는 헤어지는 사람들의 무리를 쫓아간다. 옥타브는 로베르의 정부인 제네비에브와 걸어가고, 다른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며 떠나갈 때 두 사람은 프레임 뒤쪽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드디어 다른 사람들이 떠났을 때 그들은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고 숏이 끝난다. 그 밖에 하인들이 부엌에서 저녁을 먹는 장면, 손님들이 방문 첫날 잠자리에 들 준비를 할 때 복도 장면 등은 좀 더 복잡한 딥 포커스 촬영의 예를 보여준다.

또한 이 영화에서 시각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사회의 잔인한 인습성과 무감각성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토끼 사냥 장면이다. 주인들은 토끼 사냥을 위해 들판으로 나간다. 이 사냥은 그들의 삶처럼 나름대로의 예의범절과 규칙, 품위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장면은 전적으로 파괴적이고, 살상의 인습화된 형식이다. 하인들 역시 이 살상의 공모자로 참가한다. 그들은 나무와 덤불을 두들겨서 꿩과 토끼를 몰아야 한다. 하인들과 주인들은 이 잔인한 게임의 동반자인 것이다.

르누아르는 5분여에 걸쳐 죽어가는 동물들의 고통스런 모습으로 스크린을 채워 넣는다. 짐승들은 덤불을 질주하다 총소리가 들리면 나뒹굴고 팔딱거리다 죽는다. 이 사냥 장면에서 사교계 인사들은 장난삼아 낄낄거리며 사냥감들을 추격한다. 반면 짐승들과 새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다가 죽는다. 르누아르는 ‘사냥터’가 바로 ‘사교계’의 메타포임을 암시한다. 즉, 영화에서 사냥꾼은 후작이고 사냥감은 앙드레인 것이다. 또한 후작이 앙드레를 자신의 영역에 초대한 것은 덫을 놓아 먹이를 끌어들이면서 사냥의 재미를 만끽하는 사냥 행위와 유사하다. 영화에서 앙드레가 후작의 각본에 따라 진행되는 사냥놀이의 코드를 전혀 간파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바로 그 점을 시사한다.

마치 죽음의 춤 같은 매스껍고 끔찍한 아름다움이 바로 이 영화의 의미와 톤이다. 영화 전체가 곧 죽음의 춤인 것이다. 로베르의 성에서 열리는 저녁 파티에서 해골 분장을 한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동안 사람들은 서로에게 총을 발사한다. 인물들이 방을 들락거리며 몸을 피하고 로맨틱한 관계들이 형성되었다가 파괴되면서 혼란스러움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인물들의 바보스런 행동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악인이 되지는 않는다.

이 죽음의 춤 시퀀스는 사회적 약호의 냉혹성을 보여준다. 결국 마지막엔 ‘남의 옷을 바꾸어 입었다가’ 하인의 착오로 마치 토끼처럼 총에 맞아 엉뚱한 죽음을 당한다. 그는 계층과 사회적 공간을 바꾸어 살려고 하다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셈이다. 결국, 영화는 인간의 사회생활을 일종의 게임이라 간주하고 그 게임의 법칙, 즉 사회적 약호를 모르고 있을 경우엔 언제든지 사회로부터 추방(죽음)당할 수 있다는 씁쓸한 페이소스를 남긴다.

르누아르는 인물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전달하기 위해 거대하고도 복잡한 세트와 길고 유려한 카메라 움직임을 이용했다. 그리고 미장센, 딥 포커스 촬영 등 르누아르 스타일의 대표작이다. 르누아르는 영화 전체에서 딱 한 번 사냥 시퀀스를 표현적인 몽타주에 의지해 무심하게 행해지는 사냥의 폭력성을 적절히 묘사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사냥의 빠른 커팅과 대조적으로 길고 유동적인 숏을 강조한다.

르누아르는 이처럼 복잡한 시각적 영역과 함께 복잡한 청각적 영역도 창조한다. 즉, 주제의 발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대화가 아닌 음향효과를 많이 사용한다. 긴 사냥 시퀀스에서 우리는 화면 밖에서 나는 총소리를 계속 듣는다. 사람들이 총을 쏘는 것을 볼 때만 총소리가 나는 것이 아니다. 총소리가 들리는 동안 많은 극적 상호작용이 일어나며, 총소리는 인물들이 연루된 낭만적 음모의 게임과 진행에 불길한 암시를 준다. 영화의 마지막에 비극적인 상황이 발생할 때 총격이라는 형태를 띠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며, 실내에 있던 크리스틴조차 총소리를 들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르누아르는 대담하게 옥타브 역할을 직접 연기하여, 다른 사람의 연애에 중개인 역할을 함으로써 자기 삶의 공허함을 메우는 한 황폐한 남자의 초상을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