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처 몸, 멈출
수 없는 상
상의 유혹

2199년의 몸을 상상한 매트릭스

상상과 현실 사이를 흐르는 몸

〈매트릭스〉는 2199년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지구의 가상현실을 상상하며, 현실과 그 현실을 지배하는 매트릭스 세계를 다룬 영화다. 주인공 토머스 앤더슨은 컴퓨터 프로그래머이자 네오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해커다. 평범한 그의 삶은 수술대 위에서 기계도 인간도 아닌 새로운 '몸'을 얻으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네오의 새로운 몸은 테크놀로지가 구현하는 미래의 몸으로서 현실계와 매트릭스를 오가는 몸이다. 마치 지금의 테크놀로지가 구현하는 세컨드 라이프 속의 아바타와 같지만 〈매트릭스〉에서는 아바타로서가 아니라 생물학적 몸으로 다른 차원을 오갈 수 있다. 이미지로서만 존재하는 아바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컴퓨터와 접속하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100년 후 미래에는 같은 몸으로 현실계와 똑같은 매트릭스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컴퓨터 통신 장비와 연결된 의자에 몸을 눕히고 몸에 플러그를 삽입시켜야 가능하다. 그리고 여기에는 컴퓨터를 조작해 몸을 제어해줄 기술자가 필요하다.

〈매트릭스〉의 몸은 우리에게 미래의 몸에 대한 상상력을 제시한다. 기술 발전과 함께 우리 몸이 점차 기계화될 것이라는 건 이미 많은 사람들이 예측하는 바다. 이런 상상을 해볼 수 있다. 컴퓨터나 첨단 기술이 우리의 감각기관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면 주인공 네오처럼 같은 몸으로 현실계와는 다른 세계를 살게 될 수도 있다는 상상 말이다. 매트릭스 세계는 미래 테크놀로지가 구현할 가상현실에 대한 상상의 청사진이다. 우리 몸의 모든 감각기관이 테크놀로지의 도움으로 마치 그 세계에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느끼게 해줄 가상현실에 대한 상상인 것이다.

장자의 호접지몽처럼 〈매트릭스〉는 꿈과 실재의 구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처음 가상현실 프로그램을 경한 후 네오가 모피어스에게 묻는다. "이건 현실이 아닌가요?" 그러자 모피어스는 "현실이 뭐지? 현실을 어떻게 정의내리나? 만일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고, 보는 그런 것들을 현실이라고 하는 거라면, 현실은 그저 뇌에서 해석해 받아들인 전기 신호에 불과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모피어스는 매트릭스의 가상 세계가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생성된 꿈의 세계"라고 설명한다. 꿈과 현실, 매트릭스 세계와 현실을 구분하는 잣대는 무엇인가? 장자와 나비 중 어느 것이 현실인가? 장자의 몸이 진짜이고, 나비의 몸이 가짜인지를 정확하게 감지하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매트릭스〉에서 긴장감을 주는 액션 모티브는 언제나 현실계로 돌아오는 것이다. 주인공 네오가 목숨을 걸고 매트릭스 세계 요원들과 갖가지 액션과 모험을 벌이는 것은 바로 현실계로 돌아오기 위한 목적과 현실계로의 귀환을 방해하는 제압 사이의 갈등 때문이다. 〈매트릭스〉에서 현실계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때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정신적인 죽음이다. 몸은 그대로 살아 있다. 문제는 현실의 기억이 삭제되고 의식이 기계에 통제된다는, 다시 말해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다. 〈매트릭스〉에서 몸은 부수적이고, 의식이 우선이다. 미래에 기계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고도의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이다. 기억과 의식이 없으면 기계나 다름없는 삶이다. 그런데 몸이 부수적이라는 것은 역설적으로 현실 속의 몸이 그만큼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컴퓨터 밖으로, 거울 밖으로 걸어나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컴퓨터 속의 가상현실에 갇혀 사는 삶은 의식이 없는, 육체만 있는 기계적 삶이다. 언제나 돌아와야 할 현실의 출구를 찾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온라인 게임에 몰입하는 사람들의 경우, 그들은 컴퓨터 게임의 가상현실 속에 갇혀 현실의 몸을 잊은 채 살아간다.

호접지몽과 〈매트릭스〉를 동시에 상상해보자. 〈매트릭스〉는 끊임없이 현실계와 매트릭스를 반복적인 갈등구조로 그려낸다. 조지 오웰이 《1984년》에서 빅브라더가 통제하는 미래 사회를 부정적으로 상상했던 것처럼, 〈매트릭스〉는 2199년의 지구를 기술 유토피아로 상상하지 않는다. 영화의 시작 부분에서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두 가지 알약을 준다. 파란색은 현실계에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살 수 있게 하는 약이고, 다른 빨간색 알약은 현실계의 미몽에서 깨어나 매트릭스 세계를 알 수 있게 하는 약이다. 네오는 빨간색 약을 선택한다. 워쇼스키 형제는 우리에게 첨단 기술을 자랑하는 영화에서 아주 동화적인 상상력을 제공한다. 빨간색과 파란색 알약 사이의 선택은 아주 유머러스하면서도 순진한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우리를 매혹시키는 것은 〈매트릭스〉와 호접지몽의 상상력의 뿌리가 근본적으로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주와 나비는 전혀 갈등 관계가 아니다. 나비가 된 장주는 아주 즐거울 뿐이었다고 회상한다. 동양의 신선설화에서는 공간이동이 매우 자유롭다. 목왕과 주술사의 에피소드에서도 본 것처럼 현실계와 신선계는 순간적으로 이동이 가능하다. 특별한 장치가 필요없다. 그리고 두 세계를 넘나드는 것 역시 자유롭다. 목왕이 신선계를 경험한 것은 찰나 순간이었다. 돌아와보니 아직도 안주가 식지도 않은 상태로 묘사되어 있지 않았던가. 반면 〈매트릭스〉에서는 현실계와 매트릭스 사이의 출입이 상당히 기술적으로 묘사된다. 주인공 네오는 매트릭스 세계로부터 현실세계를 구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동양 사상에서는 도의 세계, 신선의 세계, 현실계를 반드시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현실계를 부정적인 것으로, 도의 세계를 이상적인 것으로 구분짓지 않는 것이다. 현실계와 도의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를 깨우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다.현실계와 도의 세계는 동일한 것인데, 도를 깨우친 상태에서 바라보는 것과 미몽의 상태에서 바라보는 것이 대조적일 뿐이다. 반면 〈매트릭스〉에서는 파란색과 빨간색 알약으로 두 세계를 대립 세계로 구분짓고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호접지몽에 〈매트릭스〉가 만나는 지점이 있다. 둘 다 인간 자신의 내면의 문제, 즉 인간의 몸과 그 몸 안에 갇혀 있는 매트릭스와의 관계를 성찰케 하는 것이다. 나와 내 몸의 매트릭스와의 관계, 그것은 최첨단 기술과 수천 년 전부터의 이야기들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상상력이다.

플라톤의 동굴 속 상상

눈에 보이는 현실이 진짜 현실이 아니며, 그 현실 너머에 또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상상은 플라톤의 《국가》에 나오는 동굴의 알레고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소크라테스와 글라우콘은 우리에게 익숙한 것, 눈에 보이는 것에 길들여진 것이 진실인지를 논하기 위해 지하동굴에 거주하는 무리의 사람들을 상상한다. 대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지하 동굴 모양을 한 거처에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보게. 그 동굴은 불빛 쪽으로 향해서 길게 난 입구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동굴이 너비만큼이나 넓다네. 이 거처에 있는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사지와 목을 결박당한 상태로 있다네. 그래서 이들은 동일한 장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앞만 보도록 되어 있고 포박 때문에 머리를 돌릴 수도 없다네. 이들 뒤쪽에서는 위쪽으로 멀리에서 불빛이 타오르고 있네. 또한 이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위쪽으로 길이 하나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라서 담이 세워져 있는 것을 상상해보게."

이 대화가 상정하는 상상에 따르면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만 보도록 결박되어 동굴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이 동굴은 한쪽으로만 뻗어 있고 불빛이 뒤에서 비치기 때문에 사람들은 오직 불빛이 비치는 벽의 그림자만이 진실이라고 믿는다. 매트릭스 안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 조작된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미 2000년 전 서구의 물질문명 사회를 기막히게 상상했던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 속에 갇혀 조작된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미래를. 그리고 이렇게 동굴의 비유를 맺는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이 인공적인 제작물들의 그림자 이외의 다른 것을 진짜라고 생각하는 일은 전혀 없을 걸세."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허정아 집필자 소개

연세대학교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후 프랑스 엑상프로방스의 마르세유 대학교에서 석사학위를, 파리8대학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예술기획경영, 디지털아트를 가르치고 있으며, ..펼쳐보기

출처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
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 | 저자허정아 | cp명21세기북스 도서 소개

몸에 대한 상상을 크게 세 가지 방향으로 설정한다. 몸 안에 대한 상상, 몸을 벗어나 또 다른 몸을 상상하는 몸 밖으로서의 상상, 그리고 몸이라는 경계 자체에 대한 상..펼쳐보기

전체목차
TOP으로 이동


[Daum백과] 2199년의 몸을 상상한 매트릭스몸, 멈출 수 없는 상상의 유혹, 허정아, 21세기북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