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출생 | 1912년 |
---|---|
사망 | 2007년 |
직업 | 영화감독 |
네오리얼리즘에 이어 두 번째 르네상스를 맞은 이탈리아 영화계에 가장 뛰어난 재능을 보인 감독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와 페데리코 펠리니였다. 이 두 거장은 네오리얼리즘의 영향권 안에 있었지만 이 시기에 전혀 다른 길을 걸으며 세계 영화인들의 찬사를 받았다. 안토니오니의 명성은 펠리니보다는 다소 나중에 알려졌는데, 그의 비관적이고 사색적인 영화들은 펠리니의 인생을 긍정하는 화려함과 날카롭게 대조되며 두드러진다. 그렇지만 1960년대를 통해 그는 유럽영화의 ‘하이 모더니즘(High Modernism)’을 정의하는 데 기여했다. 안토니오니는 황폐하고 비정한 도시에 사는 여성들의 정신적 고뇌를 냉정한 시선으로 포착한 〈어느 사랑의 연대기(Cronaca di un Amore, 1950)〉와 〈여자 친구들(Le Amiche, 1955)〉로 좋은 출발을 했다.
1960년대로 넘어가면서 안토니오니는 〈정사(L’Avventura, 1959)〉에서 인물의 심리를 오로지 카메라 움직임이나 배경의 분위기로만 표현하여 플롯은 물론 대사 중심의 전통적인 스토리 전개 방식을 과감히 뒤집었다. 안토니오니는 줄거리보다 다른 사람과 마음을 나누지 못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의 고독한 내면을 영화의 주요한 배경인 섬의 황량한 풍경에 비유하고 있다. 바위투성이의 섬은 이 섬에 놀러온 부르주아들의 공허한 정신 상태와 부분적으로 상응되고 있다. 이 영화는 전통적 가치관을 탈피한 부르주아적 에로티시즘을 탐구하며 단숨에 모더니즘의 1960년대를 열어젖혔으며, 부조리 영화의 첫 번째 걸작으로 꼽힌다.
그 후 10년 간, 안토니오니는 더 냉정해지고 절제된 영화들을 선보였다. 〈정사〉의 성공으로 안토니오니는 보다 많은 제작비를 들인 〈밤(La Notte, 1960)〉, 〈일식(태양은 외로워, L’Eclisse, Eclipse, 1962)〉, 〈붉은 사막(Red Desert, 1964)〉에서 세계적인 스타들과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영화들에서 안토니오니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노선을 견지했다. 흔히 〈정사〉, 〈밤〉, 〈일식〉, 〈붉은 사막〉은 ‘고독과 소외’ 4부작으로 분류되는데, 이 4부작은 모두 현대 생활에 대한 탐구로 이루어져 있다.
〈일식〉은 압도적인 건축물과 여백을 사용한 미장센을 통해 마음상태로서의 풍경과 관계가 만나는 지점을 그려낸다. 관객은 인물의 시선을 통해 건축물을 보거나 건축물을 통해 인물을 보게 된다. 안토니오니는 프레임 공간을 디자인해 등장인물들과 그 주변 상황과의 관계를 등치시킨다. 프레임 구성은 원근법적인 공간이나 중심 시점을 가지고 있지 않다. 프레인 공간에 존재하지 않지만 내러티브의 중심이 되었던 인물을 위한 공간을 비어둠과 동시에 인물들과의 관계에서 카메라는 주관성과 부여받아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인물(관찰자)로서의 카메라를 통해 추상적인 의미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안토니오니는 눈에 보이는 현실 이면에 감춰진 진실을 강조하면서 영화 매체적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 리얼리티를 조율하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 속에 녹아든 비관적이고 사색적인 성격, 재현의 허구성과 한계에 대한 인식은 유럽영화의 본격 모더니즘을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실존주의적 흐름, 소외 의식의 강조, 느슨한 서사 양식, 의식의 흐름 같은 정형적인 모더니즘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안토니오니는 모더니즘 영화 역사에서 의미 있는 인장을 남겼다.
그 후 안토니오니는 제작자 카를로 폰티와 손잡고 〈확대(욕망, Blow Up, 1966)〉를 시작으로 일련의 합작영화들을 만들었다. 영국으로 건너가 촬영한 〈확대〉는 런던을 배경으로 불안한 의식의 역설을 형상화하면서 상업적인 성공과 함께 비평의 극찬을 받아냈다. 이미지로 포위된 이 세상에서 절대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주인공을 통해 예술가의 노력을 비관하는 것은 곧 이미지를 찾아 헤매는 영화감독의 숙명에 대한 안토니오니 자신의 노력을 비관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릴러 형식 속에 관음주의적 욕망과 당대 문화적 반영을 이루어낸 〈확대〉는 안토니오니의 1960년대 모더니즘과 초현실주의적 비전을 결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안토니오니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히피족과 물질주의에 대한 우울한 관찰을 담은 〈자브리스키 포인트(Zabriskie Point, 1970)〉, 중국에 가서 모택동주의를 일련의 이미지로 담아낸 다큐멘터리 〈중국(Chung Kuo Cina, 1972)〉, 아프리카 사막을 배경으로 스스로 죽은 사람 행세를 하는 주인공이 두 번째 죽음에 이르는 〈여행자(The Passenger, 1975)〉 등을 연출했다. 이후에 안토니오니는 이탈리아로 돌아와 〈오보발트의 미스터리(The Mystery of Overwald, 1981)〉와 〈여성의 정체(Identification of a Woman)〉를 감독했다. 거의 반신불수 상태로 몰고 간 1985년의 뇌졸중으로 그의 영화 인생도 이제 끝난 것으로 생각했는데, 놀랍게도 1995년 자신의 단편 모음에 바탕을 둔 〈구름 저편에(Beyond the Clouds, 1995)〉(빔 벤더스와 공동 연출)로 다시 한 번 영화계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마지막 영화는 〈에로스(Eros, 2004)〉의 한 에피소드였다.
전 세계에서 회고전이 열리면서 모든 세대가 영화의 예술성과 안토니오니의 영화 세계에서의 침묵과 공허감에 공감했으며 많은 관객은 그의 작품이 여전히 활력에 넘치고 현대적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영화의 줄거리, 설명이나 비평보다는 왜 그 장면이 명장면인가에 초점을 맞춰 내용과 형식을 유기적으로 연관시켜 분석한다. <전함 포템킨>부터 <매트릭스>까지 81명 감독..펼쳐보기
전체목차
영화와 같은 주제의 항목을 볼 수 있습니다.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 영화사를 바꾼 명장면으로 영화 읽기, 신강호, 커뮤니케이션북스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