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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 사건
김홍집 내각과 단발령
명성왕후가 시해된 지 한 달 뒤인 1895년 11월, 일본은 친일 김홍집 내각을 앞세워 을미개혁의 하나로 단발령을 발표했다. 고종은 일본군이 왕궁을 포위한 가운데 개화파 대신들의 강요로 “신민에게 먼저 모범을 보인다.”라며 단발을 하게 되었다. 거리에서는 경찰이 길을 막고 강제로 사람들의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했다.
일본은 위생과 생활의 편리 등 조선의 근대적 개혁을 구실로 상투 금지와 단발, 양복 착용 등을 시행하게 했다. 하지만 실상은 한국의 전통을 단절시킴으로써 한국인의 민족 정신을 약화시키려는 정략적 의도를 깔고 있었다. 단발령과 함께 양복과 모자, 빗, 포마드 등 복장의 변화에 따라 일본 상품이 유입되기도 했다.
단발령은 국모 시해로 반일 감정이 고조된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키는 계기가 됐다. 당시 국민들은 “유교에서 효의 기본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신체를 훼손하지 않는 것이다.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털을 자를 수는 없다.”라며 완강히 반발했다. 단발의 부당함을 지적하는 상소가 잇따랐고, 관직을 사직하거나 학교를 자퇴하는 사례가 이어졌다. 특히 유학자들을 중심으로 항일 의병이 일어나 이소응 부대와 유인석 부대 등이 춘천과 제천 등지에서 일본 침략에 저항하는 활동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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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 사건들의 기승전결, 사건과 사건 사이의 인과관계와 상호작용을 추적하여 5천 년의 한국사를 복합적으로 이해한다. 고대, 고려, 조선, 근대, 현대로 한국사의 주..펼쳐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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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um백과] 김홍집 내각과 단발령 – 한국사를 움직인 100대 사건, 이근호, 청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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