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과사전 상세 본문
쥐 오줌, 바퀴벌레, 집먼지 진드기, 고양이, 개, 곰팡이, 꽃가루, 오존, 마가린. 지난 20년간 미국 사회에서 천식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것들이다. 그러나 부모들이 천식에 나쁘다고 알려진 이런 문제 요소들을 제거하더라도 아이들의 상태는 좋아지지 않았다. 어떤 아이들은 오히려 더 나빠지기도 했다. 천식 발생률도 줄어들지 않았다. 실내를 소독하고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으로 천식을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진드기, 동물 털 같은 알레르겐을 피하더라도 천식 자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언제라도 알레르겐을 흡입하면 천식 발작이 재발할 수 있다. 천식이 알레르기의 일종이라는 것 이외에 천식을 일으키는 근본적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천식이 미국의 대표적 알레르기 질환이라면 한국에는 아토피가 있다. 아토피 피부염의 원인은 우리 언론의 주된 관심사였다. 아토피 피부염을 일으키는 원인이 하나씩 발표될 때마다 적잖은 충격과 소란이 일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집먼지 진드기와 과자였다.
아토피의 원인이 집먼지 진드기라는 보도를 접했을 때 국민은 충격을 받았다. 집먼지 진드기라는 괴상하고 흉측한 놈이 이불 속에서 사람의 피부 조각을 먹고 산다는 것은 놀랍고 끔찍한 일이었다. 텔레비전 화면에 클로즈업으로 포착된 집먼지 진드기는 즉각 공공의 적이 되었다. 집먼지 진드기만 처리하면 아토피에서 해방될 것이라고 믿었다. 진공청소기에는 침대 청소용 부품이 새로 추가됐고 침구를 스팀 소독하는 업체들이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침대를 아무리 소독해도 아토피 피부염 증가율은 줄어들지 않았다.
집먼지 진드기가 아토피 피부염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물학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 작은 벌레들이 사람들과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이 최근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놈들은 우리가 그들의 존재조차 까맣게 모르던 선사시대부터 인류와 잠자리를 함께해왔다. 풀섶과 돗자리는 이들의 오랜 보금자리였다. 그 장구한 세월을 잠잠히 있다가 20세기 말에 이르러 일시에 아토피 피부병을 일으키기로 합심해서 궐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게 아니면 수만 년 동안 집먼지 진드기에 관용을 베풀어오던 우리 피부가 더는 비자를 내주지 않기로 정책을 바꾸기라도 했단 말인가?
몇 년 후 진드기에 이어 아토피를 일으키는 원흉으로 과자가 지목됐다. 과자에 들어 있는 합성첨가물질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켜 아토피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은 분명 특정 음식 첨가물에 과민반응을 일으켰다. 내 주변의 아이들 가운데도 과자만 먹으면 아토피가 심해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그러나 역시 과자를 피한다고 아토피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언제라도 과자를 다시 먹으면 아토피가 무섭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과자는 아이를 알레르기 체질로 만든 근본 원인이 아니라 알레르기를 촉발하는 알레르겐이다. 알레르겐을 피하는 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아토피의 주범으로 과자를 지목한 것에도 의문이 남는다. 제과업계가 과자에 색소 같은 첨가물을 넣은 것은 아토피가 출현하기 훨씬 전의 일이다. 오히려 20~30년 전에는 지금은 사용이 중지된 타르 색소 같은 더 해로운 첨가물도 사용됐다. 쫀드기와 아폴로는 합성첨가물 범벅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 그런 불량식품을 사먹었던 아이들은 배탈이 나는 경우는 있어도 아토피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왜 요즘 아이들은 예전 아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먹었던 황색 1호나 적색 2호 같은 색소물질에 기겁하고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지금 아이들과 예전 아이들의 몸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집먼지 진드기나 과자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알레르겐이 꽃가루다. 알레르기 현상 중에서 가장 불가해한 것 하나를 꼽으라면 당연히 꽃가루 알레르기가 뽑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꽃가루는 인류의 진화 과정 내내 존재하던 기본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인류가 출현하기 이전인 중생대부터 꽃가루는 존재했다. 구석기 인류도, 신석기 농경민도 꽃가루를 마시며 살았다. 그들 중 누구도 꽃가루에 콧물을 흘리거나 눈이 따가워 비벼대지 않았다. 그런데 왜 최근에 이르러 꽃가루 알레르기가 일반적인 현상이 된 것일까? 왜 갑자기 우리의 코는 수만 년의 침묵을 깨고 갑자기 꽃가루에 과민반응을 하기 시작한 것일까?
본 콘텐츠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위 내용에 대한 저작권 및 법적 책임은 자료제공처 또는 저자에게 있으며, Kakao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글
출처
전체목차
백과사전 본문 인쇄하기 레이어
[Daum백과] 과자와 집먼지 진드기는 죄가 없다 – 청결의 역습, 유진규, 김영사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저자 또는 제공처에 있으며, 이를 무단으로 이용하는 경우 저작권법에 따라 법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